먹과 구조로 보아내는 세계

배지민 수묵展   2007_0430 ▶ 2007_0505

배지민_바라보다Ⅰ_장지에 수묵_110×11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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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30_월요일_06:00pm

부산광역시청 제3전시관 부산시 연제구 중앙로 2001번지 Tel. 051_888_2000 www.busan.go.kr

먹과 구조로 보아내는 세계 ● 배지민의 작업은 우선 스케일이랄까 화면을 만드는 대범한 접근에 인상적인 친근감을 갖게 된다. 크다는 것이 때로 거북하지만 그의 경우는 작가됨의 속내를 가늠해 보게 한다. 그리고 먹색이라는 단순한 접근방법과 활달하고 결기 있는 포치, 대상과 재료에 대한 주저 없는 결단 등이 친근감과 함께 신뢰를 갖게 된다. 아마 이런 인상은 그의 작품을 찬찬히 읽거나 애써 해석하려는 노력 없이도 접근 가능하게 해주는, 그로서는 의도치 않은 특징일 수도 있다.

배지민_바라보다Ⅱ_장지에 수묵_110×110cm_2007
배지민_바라보다Ⅲ_장지에 수묵_110×110cm_2007

견고한 교각을 가진 다리 하나가 눈앞에 전개된다. 가로등과 안전 팬스가 잘 정비된 다리 위로 비가 오고 가로등이 밝혀져 있다. 교각 밑으로 물은 검고 흰색으로 흐름을 나타내고 불빛에 반사되는 물결들이 화면 전체를 감싼다. 거대한 다리 하나를 소재로 삼은 평범한 교각 풍경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다리라는 구체적 이름이나 장소성을 제시하기보다 견고함과 유연함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더 강하게 보여주고 그 이미지가 장소성과 물질성을 넘어선다. ● 검은 먹색은 주로 교각을 나타내는 견고한 구조물로, 교각 밑으로 혹은 옆으로 흐르는 물을 표현하거나, 점과 선, 얼룩으로 주위에 산포해 있다. 풍경화로서 면모를 보이는 작품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풍경의 경우, 화면은 사물이 가진 형태와 구조, 인위적인 것이 주를 이룬다. 다리 위의 안전 팬스와 가로등, 그리고 다리의 구조가 부각되고, 교각의 견고함에 우선 눈이 간다. 물의 흐름을 보이는 파도나 물길이 드러나게 표현되고 그 사이로 혹은 그 위로 교각이 짙은 먹색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가로등의 불빛, 비, 그리고 바다(물)가 보인다. 풍경으로서 그의 작품은 비와 물에 대비되는 견고한 교각이라는 두 개의 구조, 체계가 화면을 이끌고 있다. 그 구조물은 주위의 여백에 완강하게 대항한다. 물과 교각이 서로가 자리한 공간을 디민다. 그리고 감성이 묻어나는 색조와 선들이 환기시키는 서정성 역시 공간을 활성화 시킨다. ● 그리고 일련의 다른 작업들에서는 같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물의 움직임이나 가로등의 불빛, 빗살들이 줄어들면서 먹과 얼룩, 선이 주를 이룬다. 구체적인 교각의 모양, 물의 묘사가 줄어들고 검은색으로 처리된 교각과 몇 개의 선이 화면 전체를 이끌어 간다. ● 이쯤 되면 장면은 풍경이기보다 먹색 짙은 선과 흰색의 여백이 대조를 이루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흰색은 검은색으로 그 경계를 삼아 형태를 형성하고, 검은 색은 흰색, 혹은 여백으로 경계를 삼고 형태를 형성한다. 이제 여백은 여백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이 작업들에서는 어느 것이 주체인지 배경인지 애매해진다. 인위적 풍경과 풍경을 싸고 있는 자연의 경계가 흐려지고 풍경이 자리를 비겨나가고 검고 흰 구조가 화면을 차지한다. 공간이 사실이나 구체에서 개념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그 개념적 접근 역시 서정적 감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배지민_바라보다_순지에 수묵_295×417cm_2007
배지민_영도-바라보다_장지에 수묵_147×208cm_2007

배지민의 작업이 크게 나뉘는 지점이면서 일관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 다리와 물이라는 대조는 견고함과 유연함으로 대치되고, 그림자를 통해 물을 대신하거나 그림자를 통해 움직이지 않는 교각을 묘사한다.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구조를 생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품이 묘사적 풍경에서 구조적 논리로 이행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대비적 구조는 작품의 새로운 의미에 주목하게 한다. 요즘 경향으로 올수록 구체적 묘사에서 벗어나 개념적 구조감이 강조된다. 그리고 흑과 백이라는 색상대비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구체나 개념, 어느 쪽이 더 낫다든지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다든지 하는 예단은 아직 조심스럽다. 이것은 단순한 화면 구성이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적 태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상극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대응을 어느 쪽이 더 낫다는 투로 판단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 무의미하다. ● 교각으로 대치되는 돌, 딱딱함, 견고함이 물로 대치되는 부드러움, 형태의 미완, 여백이 함께 한 화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중적인 이행과정이 오가고 있음을 읽게 된다. 그에게서 목격되는 이런 상극적 구조가 긴장이나 대극적 불화가 아니라 하나의 조화로서 우리에게 던져진다. 그 조화 의식을 두고 그림 그리기의 당연한 과정으로 폄하하듯 지나갈 수 없다. 구상에서 추상에로의 이행을 순차적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 역시 중요하지 않다. 두 개의 대비적 상황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는 그 의미들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다. 구체와 개념 사이에서 사물들을 화폭에 옮겨놓는 화면내의 논리와 사물의 변화에 대한 작가적 인식의 폭과 깊이를 가늠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배지민_물어보다_순지에 수묵_384×264cm_2007
배지민_머물다_장지에 수묵_143×205cm_2007

그의 작업이 우리에게 인상적인 것은 단순하고 결기 있는 필치나 먹의 활용이나 크기가 아니라 대비적인 구조에 대한 감수성이다. 정지와 움직임으로 다리와 물의 대비를 보아내고 동과 정의 이원적 세계인식의 정도를 시각적으로 감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로서 그가 단순한 조형성에만 머물지 않기 바라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먹을 쓰는 방법이나 의미가 서양화의 채색과 다르다는 것을 좀더 섬세하게 느끼기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상극이 만나 새로운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접근에 대한 조심스러운 이해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그러나 여전히 거칠게 여겨지는 표현과 단조로운 기법, 그리고 너무 큰 규모에만 관심이 놓여 있는 것, 활달함만 보이는 붓의 운용은 작품을 제작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냉정한 점검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이 섬세한 기교나 기술이라는 것은 아니다. 대상의 섬세함을 읽어낼 수 있을 때라야 크게 잡힌 풍경도 그 섬세함을 드러내게 된다는 이해의 요청이다. 그럴 때 보다 풍부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단조로운 먹색이나 기법을 넘어서는 아취(雅趣)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취는 기교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대한 보다 풍부한 감성의 드러남이다. ■ 강선학

Vol.20070430a | 배지민 수묵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