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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20_금요일_06: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www.songeun.or.kr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라 하던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곧 작가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나는 박혜신의 작품을 대하고 이모저모 살펴보면서 또 하나의 그녀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도 술 한 잔씩 주고받고서야 나눌 수 있는 솔직하고 깊은 대화 말이다.
나는 박혜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해석의 단초로서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네 가지의 상징적 코드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선회하는 나선의 형상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선형의 무늬를 통해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둘째는 육면체의 공간이다.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육면체의 공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세 번째는 작품의 주제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인물의 형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그 인물들은 작품의 주제로 보기에는 미완의 형상으로 남겨져 의아하다. 마지막으로 박혜신이 선택한 제작기법이다. 일반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전통 칠화기법은 그녀의 작품에서 어떠한 의미일까. 이러한 상징코드를 하나씩 이해해가는 과정은 작가 박혜신이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주는 과정이었다.
먼저 선회하는 나선형의 무늬는 작가가 작품을 하는 직접적인 모티브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제의 배경이거나 혹은 주제 인물의 표현요소로 다양하게 등장하는 나선의 형상. 마치 잡념에 빠졌을 때 아무 의미 없이 종이에 끼적이는 낙서와 같은 모습이다. 여기서 박혜신의 이전 작품은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2년 전 그녀는 개인전을 통해 "108념念"이라는 전시명으로 일련의 원형 추상연작을 선보인 바 있다. 108가지 번뇌에 빗대어 표현하였던 삶의 무수한 사념들. 바로 그것이 그녀의 작업 모티브인 것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무수한 감정과 생각들, 그녀는 작품에서 이를 반복적인 나선의 형상으로 시각화 하였다. ● 나선의 형상과 더불어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크고 작은 육면체. 이것은 바로 그녀 자신 혹은 자신이 벗고자하는 틀을 상징한다. 작가는 갖가지의 고민과 사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사각의 틀로 형상화 하여 화폭에 담음으로써 자신을 객관적인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즉 자신이 버리지 못하는 집착 혹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으로부터 탈착하여 멀리서 관조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불어 바로 이러한 자기 성찰의 단계에서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의미가 있다.
박혜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녀의 가족들이다. 작품의 주제부로써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면의 가족들은 편안히 기대어 앉거나 누워 쉬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텅 비거나 채워지지 않은 미완의 형태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녀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족이지만 그 이면에 그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의미한다. 항상 곁에 있어 의지가 되는 가족이지만, 그녀에게는 그들과는 별개로 자신만이 극복해야할 삶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는 칠화기법을 선택하였다. 칠화는 옻나무의 액을 이용하여 다른 재료들과 혼합해 사용하는 작업기법이다. 작업 내내 적정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료를 고착시킬 수 없으며, 바탕재에서 작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수회의 붓질과 공을 들여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제작기법이다. 이렇게 정성껏 오랜 숙련기간을 필요로 하는 칠화기법은 끈기와 인내심이 없이는 결코 완성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기수양의 기법이다. 마치 티벳 밀교의 자기수양 회화처럼 박혜신도 칠화기법의 까다로운 절차를 하나하나 수행해 가며 자신을 비우고 관조하며 이를 승화해 가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더욱이 그것이 작품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 감동은 배가 된다. 젊은 작가로써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어눌한 어조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도 솔직하게 보이는 박혜신의 작품은 세련되지 않아도 풋풋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 고홍규
Vol.20070429f | 박혜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