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423_월요일_06:00pm
A&D 갤러리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 389번지 한성대학교 연구관 Tel. 02_760_4271
지금 가고 있어요 ● 움직여야만 가능한 이동이며 이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지 상태다. 다시 말해 멈추기 위해 이동하고 이동하기 위해 멈춘다. 일시 정지다. 신체와 공간에 관한 이동뿐 만이 아니다. 의식의 이동 역시 실천을 위해서는 반드시 의식의 정지 상태가 요구된다. 의식이 또 다른 의식으로 전이되고 상상력은 거대해진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변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기를 통해 이동과 정지의 반복을 재조합한다. 나의 그리기는 조각나고 부풀어진 상상력을 정당화시키는 과정이다.
1만 km를 12cm의 길이로 아기 도요새는 날고 있다. 계절의 움직임에 따른 도요새의 결말은 이동 중간 혹은 도착지에서의 죽음이다. 도요새는 한 지역에서 머무르지 않고 겨울에는 월동지로 이동하기 위해 알래스카에서 호주 뉴질랜드 남쪽까지 논스톱 비행을 한다. 또 다시 번식지인 동북부, 캄카차 반도, 시베리아, 알래스카까지 8천~1만 2천 km를 매년 두 번씩 이동한다. 이동 중 중간 기착기가 봄이 되는 한국의 서해안 갯벌에서 3~4주 동안 쉬면서 먹이를 충분히 먹어 체지방을 늘리고 또 다시 번식지로 이동한다. ● 도요새는 동북부 서해안으로 가고 있고 나도 지금 가고 있다.
여기 집이 있다. 다시 일시 정착된 이 곳, 벌레와 곤충들이 산다. 좀 벌레, 조심성이 많다. 모래벼룩, 암컷은 다른 동물의 살갗을 파고 들어가 알을 낳는다. 송장벌레, 모든 죽은 벌레와 죽은 동물을 먹는다. 군대 개미, 오래 머물지 않고 집을 짓지 않는다. 침 개미, 물리면 매우 아프다. 긴뿔집게벌레, 낮에는 숨어 지내다가 밤에 나와 다른 곤충들을 잡아먹는다. 공격을 받으면 배에 있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뿜어낸다. 마다가스카르바퀴, 배에 있는 숨구멍으로 '쉿' 하는 소리를 내서 적을 위협한다. 함정거미, 먹이의 움직임이 느껴질 때까지 굴속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먹이가 지나가면 갑자기 튀어나와 먹이를 움켜쥐고 굴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검은과부거미, 수컷은 물지 않는다. 서성거미, 먹이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거미줄을 친다. 초록스라소니거미, 거미줄을 치지 않고 잎에서 잎으로 뛰어다니며 먹이를 쫓는다. 벨벳진드기, 곤충의 알을 먹으며 혼자 산다. 전갈, 독침을 먹이에 찔러 넣고 죽인 다음에 먹는다.
또 다시 이동한 곳, 목련이 산다. 깻잎과 선인장을 키운다. 게와 낙지가 산다. 물과 침, 술, 때가 이동한다. ● 이제부턴 꿈속이다. 꿈인지 모르고 꿈을 꾸고 꿈에서 나올 수 없다. 꿈인걸 알고 꿈을 꾸고 꿈에서 깨기 싫어 꿈이 계속되길 바란다. 혹은 꿈속인 걸 안도하다. 상상을 한다. 꿈에서 깬다. 다시 상상을 한다. 음.
뉴욕에서 온 택배를 받는다. 상자를 열어본다. 바이크다. 시속 1000km. 논스톱 주행이다. 골목길 코너에서 바이크는 고무처럼 휜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콘택트렌즈를 끼운다. 콘택트렌즈 케이스를 연다. 낙하산 만한 연질 에폭시로 만든 콘택트렌즈다. 렌즈를 밀어 넣고 약속장소로 간다. 뛴다. 쉣, 눈이 터져버린다. 어쨌거나 렌즈를 끼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븅-이제부터는 바닥에 닳을 수 없는 발, 가지가지 색종이를 붙인 뱀이 운동화를 갉아먹는다. 새로 산 핑크 나이키를 색종이 뱀이 다 - 갉아 먹어버린다. 수도승이 있는 성당이다. 잘린 목이 걸려있는 나무, 그 아래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폭폭한 샌드위치는 콘택트렌즈가 되어 다시 눈으로 들어간다. 아침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벨 소리는 검은 머리카락, 손가락에 박힌다. 파란색이 보인다. 서서히 움직인다. 문을 열고 그 곳으로 들어간다. ■ 전연선
Vol.20070427e | 전연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