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uth Sea

박일구 사진展   2007_0421 ▶ 2007_0430

박일구_sinan uido_디지털 C 프린트_50×100cm_2001

초대일시_2007_0421_토요일_06:00pm

갤러리 PICI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2-22번지 Tel. 02_547_9569

바다에 눈을 담근 채 땅을 바라보다 ● 지구의 표면은 우주라고 하는 넓은 대양의 기슭이다. 그 바닷가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우리는 아주 조금이긴 하나 그 큰 바다에 발을 들여놓았다. 분명히 발가락 끝은 물에 담갔다. 어쩌면 복사뼈까지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물은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만 같다. 대양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박일구_wando soando_디지털 C 프린트_60×120cm_2005

이 문장은 잘 알려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책 『코스모스』의 도입부다.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바다를 끌어들인 그의 비유가 매우 자연스럽다. 자고로 비유란 실체가 모호한 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이기 마련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우주의 정서를 빗댈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바다임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요컨대 바다란 우리들 가까이 있는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와 넓이와 깊이가 사고의 폭을 넘어서는 미지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 비유는 적절해 보인다.

박일구_yeonggwang baek su_디지털 C 프린트_60×120cm_2005
박일구_jeju chujado_디지털 C 프린트_50×100cm_2006

일찍이 칼 세이건이 지구라는 우주의 기슭에서 복사뼈를 담근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면, 사진가 박일구는 섬 기슭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우주를 향해서도 그랬듯이, 박일구가 아니어도 인류는 크고 작게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움이란 장애물 앞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육지동물인 인간에게 바다는 일종의 장애물이고, 수수께끼이며, 아직도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경외의 대상이다. 과학이 바다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을지언정 마음속의 바다는 탐사된 적이 없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무관한 달이 우리의 마음속에 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주나 바다가 지금껏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까닭은 오늘의 지식과 정보로도 발가벗길 수 없는 숭고함을 그것들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론은 실제를 건져 올리려는 성긴 그물에 불과했고, 청록이 아니라 회색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신비로운 것은, 예컨대 뉴턴의 만유인력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우주 자체다. 과학 이론은 자연의 위대함이 아닌 인간 욕망의 비대함을 드러내왔을 뿐, 세상은 오래 전부터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끼는 신비함이란 익숙하지 않음의 다른 표현이다.

박일구_tongyeong somaemuldo_디지털 C 프린트_60×120cm_2006
박일구_jeju suwolbong_디지털 C 프린트_60×120cm_2007

칼 세이건은 왜 우주라는 공간을 물로 이뤄진 바다에 비유했을까? 우리는 바다라는 명사를 말하면서 단지 지표를 덮고 있는 방대한 양의 물만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하늘처럼, 바다는 거대한 공간을 환기한다. 해수욕을 위해 찾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끝 간 데 없이 뚫려 있는 그 공간에 잠기러 바다에 간다. 박일구가 아니어도 바다를 찍었던 사진가, 찍고 있는 사진가는 많다. 다만 그의 다른 점은 사전적인 의미의 바다에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눈을 베일 것 같은 수평선이라든가 잔물결 치는 수면, 멀리 다니는 배, 해변과 같은, 우리가 바다 풍경의 일부로 여기는 요소들을 거둬내고 있다. 그는 바다가 아니라 공간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의 사진을 보며 바닷물 위를 떠다닐 일이 아니라 망망한 그 공간 속을 거닐어야 한다. 바다는 우리가 먹고사는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멀찌감치 도망가 있는 세계다. 물과 공기만이 들어차 있는 그 허허롭고 거대한 장소에선 시작과 끝, 원근의 구분이 길을 잃으니 우리의 시선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드럽거나 사라져버린 수평선 앞에서 소실점과 초점 따위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박일구_yeosu hangilam_디지털 C 프린트_50×100cm_2007

그의 사진이 돋우는 흥미의 정점은 표제다. 사물과 인기척이 증발해버린 이미지들의 표제라곤 제주 추자도, 신안 우이도, 여수 금오도 등과 같은 육지와 섬의 이름이 전부다. 바다를 가리키며 섬이라고 말하는 셈이라서 위트마저 느끼게 되는데, 부연하지 않더라도 그가 바다를 바라보던 장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건조한 이미지와 그것을 비트는 표제가 어울리며 반증하는 것은 그의 작업이 사진으로 추상성을 획득해보려는 형식주의도, 관념산수를 의식하는 고급취미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조차 감추지 못하는, 우리 땅에 대한 그의 여전한 사랑이다. ■ 김승현

Vol.20070421b | 박일구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