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쌓기

고정남_이종호_이상영展   2007_0418 ▶ 2007_0501

고정남_실크로드(일본집영사문고_1983)_24×20"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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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www.gallerylux.net

'리플리'가 쓴 '믿거나 말거나'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5달러짜리 쇠 한 덩이로 말의 편자를 만들면 50달러에 팔 수 있고, 바늘을 만들면 5천 달러어치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시계를 만들면 5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반도체를 만들면 250만 달러어치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같은 재료라도 사용하기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 이번 전시 "내공쌓기" 는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3명의 작가가 각자의 의식 속에 혼재되어있는 것, 다시 말해 쇠 한 덩이 같은 가공되지 않은 작품의 원재료를 가공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 고정남은 전남대학교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 동경종합사진전문학교와 동경공예대학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작가로서 이번 작업은 한국의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방식 즉, 책이라는 오브제를 미니멀리즘적 시각으로 다시 읽고 표현하였다. ● 이종호는 중국 북경 중앙미술학원 판화과에서 다큐사진을 한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작가로서 이번 작업은 인터넷 웹상으로 돌아다니는 꽃을 대상을 삼았는데 여러 장을 겹쳐 합성하는 방식으로 꽃을 재해석 하는 작업을 하였다. ● 이상영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작가로서 현대적인 외관을 한 주택들과 땅과 나무 자연이 어우러지는, 이른바 근대적 삶의 공간과 전통적 삶의 공간의 접점이 만나는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 고정남, 이종호, 이상영 등 세 명의 작가가 촬영한 사물과 자연풍경은 각자의 감정, 품격, 세상을 보는 마음을 내비치기 위해 대상을 빌려온 것 같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디까지 변화하고 확장되어 갈런지 가늠할 수 는 없지만 또 한 번의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고정남_박정희 대통령(미문출판사_1977)_40×30"_2006

벤야민의 아케이드와 현대성의 내공 ● 내공쌓기는 낯설다. 낯설음을 벤야민식으로 표현한다면 환각적 부자연스러움이다. 내공쌓기에 나선 고정남, 이상영, 이종호의 사진들은 그래서 낯설면서 환각적이다. 그들의 사진은 이런저런 시공간에서 이미 지각된 이미지들이다. 직접 본 사진들도 있겠지만 지각된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이미지가 역사, 도시, 테크놀로지 속에서 이미 집단적 기억(collecting memories)으로 자리하는 무의식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 역사, 도시, 테크놀로지의 문제를 말하는데 발터 벤야민은 피할 수 없다. 세 작가들의 사진은 벤야민에 걸쳐 있다 또 그의 (아케이드Arcade)에 걸쳐 있다. 파사젠베르크로 총칭되는 벤야민의 아케이드는 과거 영화로웠던 소공동 반도 아케이드처럼 화려해서 슬픈 곳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면서도 싫은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저마다 다른 층위 즉, 전시관으로서 역사적, 도시적, 기술적 층위가 있다. ● 벤야민은 아케이드의 역사관(고정남의 사진이 전시중) 에서 이렇게 외친다. "이곳은 과거의 환영과 현혹적 공간입니다. 가짜 역사인 신화가 진짜 역사처럼 환영을 창조하는 고고학적 공간입니다. 여러분은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가짜 신화가 어느덧 구원의 진짜 신화가 되어 고고학적 가치로 이곳에 모셔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랬다. 분명 신화는 부단히 지난 시간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벤야민의 말처럼 오늘의 신화는 조금 다른 신화다. 한마디로 영화와 몰락의 신화다. 역사관에 이렇게 쓰여 있다. "과거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현재 속에서 계속됩니다." ● 고정남의 사진은 이렇게 우리 역사의 핸드'북'이었거나, 페이지가 날아가고 이미지의 가장자리가 나풀거릴 때 비로소 돌아보게 되는 지난 역사의 학습서이다. 그의 사진은 벤야민의 말처럼 "여전히 잔존해 있는 지난 시간의 폐허를 거꾸로 읽기" 위해 핸드북처럼 진열한다.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이미지는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니다. 모두 역사 텍스트이다. 돌이켜보면 순간적이고, 돌이켜보면 암울했던 시대의 아이콘이며,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집단적 기억으로 남아 있는 지난 시간의 유물들이다. 아케이드 역사관 입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어떤 경우라도 신화로 보지 마세요. 모두가 직접 경험했던 지난 시대의 역사입니다." ● 또 다른 아케이드의 도시관(이상영의 사진이 전시중)은 반듯하다. 벤야민은 도시관에서 이렇게 외친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들 버리고 한 순간 거세될 것들입니다. 도시의 주변은 이런 것들로 넘치지요. 모든 것은 영원함과 새로움 없음의 고향입니다. 보세요. 판타스틱하지 않습니까?" 그렇다. 판타스틱. 좀 더 정확하게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다. 환등적 환각이고, 스쳐 가는 덧없음이고, 가벼운 일회성을 뜻한다. 새로운 삶의 질서. 그 지루한 반복동일성은 끝이 없는 유예이고 숙명이다. 도시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삶의 모든 것들이 포장되어 있습니다. 택배로 받으시면 간편하게 재배치될 수 있는 물품들입니다. 포인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이상영_레인보우하우스_30×40"_2007
이상영_레인보우하우스_30×40"_2007

이상영의 사진은 도시 외곽의 판타스틱한 풍경이다. 다분히 스펙터클하고, 또 다분히 파노라마적이며, 꽤나 유형적인 것들이다. 그녀는 도시적 삶의 유형성을 포착하여 우리에게 돌려준다. 벤야민의 목소리로 말한다면 "어정쩡한 지루함에 우울하고 싸구려 키치 같고 애잔하다." 그렇다. 이상영의 사진은 반복동일성, 유형적 구조물, 현대 도시의 신화적 장소라는 점에서 우울하고, 현대 도시가 꾸는 꿈이기에 애잔하다. 아케이드 도시관 입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을 여유 있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당신의 만족이 우리의 만족입니다." ● 또 다른 아케이드의 테크놀로지관(이종호의 사진이 전시중)은 요란하다. 끊임없이 보강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충분히 충격적이다. 테크놀로지관 입구에서 벤야민은 이렇게 외친다. "환각과 환영을 두려워 마세요.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미래이고 유토피아입니다. 관능의 시선은 전적으로 당신 것입니다. 포르노에서 공중부양까지, 마음껏 육체 없는 환희를 누리세요. 이곳이 삶의 원천입니다. 빛과 색을 보세요. 모니터, 스크린, 이미지 파라다이스로 가는 블랙홀입니다. 당장 클릭하세요!" ● 맞다. 우리 시대 환영과 환각은 테크놀로지이며, 테크놀로지의 매력은 빛, 색, 에너지에 있다. 모니터와 스크린은 1200만, 1400만, 아마 2000만 픽셀로 꿈같은 환영과 환각의 공간을 창조한다. 환상은 상상이 아니다. 테크놀로지관에 이렇게 쓰여 있다. "꿈의 주체는 당신입니다. 당신의 꿈을 위해 테크놀로지는 잠들지 않습니다."

이종호_In The City-Flowers_16×16"_2006
이종호_In The City-Flowers_16×16"_2006

이종호의 사진은 몽타주이다. 몽타주는 가장 환각적인 기법이다. 그 옛날 사진이 그랬고, 영화가 그랬고, 지금의 디지털 포토샵이 그러하다. 환영은 고정된 초점 없음이며, 환각은 이성의 마비다. 사이키델릭 조명은 유혹적이다. 나이트 클럽 사이키델릭은 여전히 블루스를 유혹하지 않은가. 물신성은 무엇보다 시각적 촉각성이다. 테크놀로지관 출구에 이렇게 쓰여 있다. "장사가 안 되시나요? 가게가 달라 보이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밝은 빛으로, 판타스틱한 색으로 매장을 꾸며보세요. 욕망은 도발입니다. 지금 세팅하세요." ● 진정한 내공. 혹은 파괴적 내공쌓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현대성의 내공은 결국 물신이고, 욕망이고, 마지막은 파괴와 몰락이다. 반대로 인간성의 내공은 절제이고, 성찰이고, 재인식이다. 고정남, 이상영, 이종호 세 사람의 내공쌓기는 그 점에서 지난 세기 벤야민이 파리 아케이드에서 쌓았던 시대의 내공이다. 현대성의 신화, 도시의 꿈, 그리고 테크놀로지는 우리 시대의 내공쌓기의 초석이다. ● 삶은 여전히 어제와 오늘을 관통한다. 또 사라지는 것과 새로운 것을 관통한다. 현대적 삶은 초현실이다. 초현실주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정남, 이상영, 이종호, 이들 세 사람은 초현실을 탐색하는 산책자들이다. 깨어 있는 '산책자'들이며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보는 내공 깊은 '수집가'들이다. 이번 전시의 의의 및 기획의 당위성은 총체적으로 여기에 있다. 벤야민의 말로 끝을 맺는다. "도시보다 초현실적인 얼굴은 없다." ■ 진동선

Vol.20070420c | 내공쌓기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