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게 묻다

갤러리 우림 기획展   2007_0418 ▶ 2007_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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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18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_김지은_박미진_박병일_선호준_조인호_하대준

갤러리 우림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27번지 Tel. 02_733_3738 www.artwoolim.com

모름지기 작가란, 어느 누구보다도 직관에 의지해 살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시대정신, 세상의 변화를 다른 이보다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직관적인 그들이 때로는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차마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산다. 그들은 그렇게 산다. 시인이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이들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자신의 내면에 대해 질문하고, 인생에 대해 묻고, 세상을 마음으로 읽어가면서,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사는 것이 너무 슬펐을 것이다. 살아 생전에 작품이 팔리지 않아서 슬프기 보다는, 자신이 표현하는 이미지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 너무 슬펐을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이, 해바라기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가 왜 그렇게 그렸는지 동시대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보다 앞서 살았던 화가들이 세상에서 이해 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질문만 던진 채 죽고 났을 즈음, 철학자, 미술사가, 이론가들은 이들의 작품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이론화하고 규정하였다. 언제나 세상을 몸으로 느끼는 사람은 작가였고, 이들의 작품은 새로운 기법과 이미지로 표현되었으며, 세상의 변화는 그 뒤에 이론으로 정리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흘러왔다. ● 여기, 동시대를 사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있다. 이들 역시 직관적으로, 온 몸으로 세상을 느끼며 이 시대, 이 공간을 살아가는 작가들이다. 젊은 작가인 이들은 아직 다 알지 못한 자신과 알 수 없는 인생과 변화하는 세상을 향해 서로 다른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박병일_무제풍경_화선지에 수묵담채_각 122×122cm_2007
조인호_여정-0606(울릉도)_장지에 수묵_130×190cm_2006 조인호_여정-0614(북한산)_순지에 수묵_160×130cm_2006

박병일과 조인호는 (풍경)에게 묻는다. 박병일은 변화무쌍한 자연물처럼 빠르게 변하는 도시를 그린다. 그가 그리는 도시풍경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풍경이면서도 조금은 낯선 풍경들이다. 작가는 도시에 건물이 하나 둘 지어지듯, 화선지 위에 건물들을 중첩하여 먹으로 그려내는데, 건물로 가득 찬 답답한 도시 공간 사이로 작가는 나무를 심는다. 그가 도시 속에 심은 나무는 다름아닌 여백의 나무, 혹은 공간의 나무인데, 작가는 건물들 사이에 실루엣만 남겨 빈 여백으로 나무를 표현하였다. 작가는 자신과 함께 자라온 도시풍경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느냐고. ● 조인호는 산을 그린다. 작가가 그리는 산수풍경은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곳들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몸으로 다녀온 산과 사진 속에서 눈으로만 본 산이 매우 다름을 깨달은 후, 자신의 본성을 일깨워 준 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가 그린 산수 풍경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산의 일부가 잘려진 채로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데, 그가 그린 풍경은 산으로, 혹은 신체의 일부로, 혹은 다른 존재의 부분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산수풍경을 통해 작가는 산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네 속에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냐고.

박미진_Gaze_장지에 중채_각 125×145cm_2007
김지은_미로군상II_한지에 채색_105×105cm_2007

박미진과 김지은은 (타인)에게 묻는다. 박미진은 작가 주변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표현하였는데, 특히 인물들의 정면이 아닌 측면상을 그렸다. 작가는 개개인의 얼굴엔 자연스레 감출 수 없는 그들의 내면이 투영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인물들의 게이즈(gaze)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관찰자의 시선을 피하듯 아래쪽을 보거나 슬쩍 옆을 보는 화면 속의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네가 정말로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 김지은은 미로를 그린다. 언뜻 이 작품은 선과 점으로 된 추상회화처럼 느껴지지만 그러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이 수많은 사람들과 길의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선과 점, 즉 길과 사람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미로형상을 통해 우리들의 삶 역시 어떤 목표를 향해 길을 찾아가는 길고 긴 미로게임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가는 미로이미지를 통해 이렇게 묻는다. 너는 인생길을 잘 따라가고 있느냐고.

하대준_닭-071_배접지에 수묵, 호분_70×140cm_2007 하대준_두려움-071_배접지에 수묵, 목탄_70×140cm_2007
선호준_바퀴벌레 red_장지에 혼합재료_110×90cm_2007 선호준_바퀴벌레 yellow_장지에 혼합재료_110×90cm_2007

하대준과 선호준은 (자신)에게 묻는다. 하대준은 닭의 형상을 통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가 그린 닭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거나 알고 있었던 닭의 모습, 즉 사육되는 동물로서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기호에 가깝다. 그림 속의 닭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떨군 채 마치 비상할 준비를 하는 커다란 날개를 소유한 새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언제쯤 하늘로 날아 오를 거냐고. ● 선호준은 바퀴벌레를 바퀴(타이어)의 형상으로 그려내는 언어/이미지 유희적 작업을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단순히 유머러스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페이소스(pathos)가 담긴 유희라고 할 수 있는데, 우연히 자신과 만나게 된 바퀴벌레를 통해 작가 자신의 고민, 갈등, 인생의 문제들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발견될 때 마다 잡아도 그 수가 늘어나는 바퀴벌레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라질 것 같던 우리 인생의 문제들도 실상 그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것이다. 바퀴벌레를 통해 작가는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고민들이 쌓이면 무엇이 되느냐고.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관람자인 우리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무엇을 보면서 살고 있느냐고. 당신들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너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 김희경

Vol.20070418e | ( )에게 묻다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