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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412_목요일_04:00pm
참여작가 권오상_김상균_김종구_김창겸_박윤영_양만기_유영호_이광호 이배경_이호진_정주영_정재철_한기창
국립현대미술관 제7전시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_2188_6000 www.moca.go.kr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창동 및 고양 두 곳에 운영하고 있는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가 5주년을 맞이하여, 대표작가 13인의 전시로 구성된『공통경계(Con·terminal)』展을 개최한다. 2002년 시각 예술가를 대상으로 안정적인 작업공간을 제공하며,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미술창작스튜디오는 현재까지 국내외 미술작가 150여 명을 배출하며 명실 공히 국제적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성장하였다. 이번 전시『공통경계』에서는 창동 및 고양스튜디오를 거쳐 간 국내 장기 입주작가 90여 명 중 선정된 13명의 젊고 패기 넘치는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선보인다. ●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미디어 등 현대미술의 제 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 출신 작가들로 구성된 이번 『공통경계』전은 지난 5년간 창작의 토양으로서 미술창작스튜디오가 우리나라 시각 예술 분야의 창작 여건 신장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는 아시아, 유럽 등지의 여러 작가지원공간과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추진하여 우리작가들의 작업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역할 해왔다. 이러한 국제적인 창작 환경 속의 다양한 작가들은 각각의 예술 영역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동시에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과 자유를 지향하는 삶'이란 공통분모로 '공통 경계'를 이루고 있다. ●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가 배출한 국제적으로 촉망받는 작가 13인이 펼치는 이번 전시에는 지난 5년 사이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열정을 바쳐 작업한 이들의 작업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할 예정으로, 한국의 창작스튜디오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동시대 조각가의 작업실 안이 궁금하다면 권오상의 이번 전시『더 스컬프쳐8』에 멈춰서길 바란다. 작품을 만드는 도구드릴, 사진용 전구와 대형 카메라, 대형필름, 작품 에스키스에서부터 개인 취향이 묻어나는 CD, 오토바이 헬멧, 차와 음료통, 과일, 화장품, 심지어 여자용 구두나 핸드백, 블라우스까지 그의 작업실 안 사소한 정물들이 조각용 좌대와 한 몸이 되어 놓여있다. 내밀한 사적 공간을 들춰볼 수 있는 관음증(voyeurism)적 시선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권오상의『더 스컬프쳐8』는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작으로, '조각' 장르의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온 작가의 새로운 선언(manifesto)이다. 권오상은 1998년 사진조각 시리즈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과 2003년 평면조각 "더 플랫(The Flat)" 연작을 위시하여, '가벼운 조각'의 개념으로부터 착안한 작업들로 사진과 조각의 경계 장르에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여 왔으며, 지난 2006년 "더 컬프쳐(The Sculpture)"라는 연작을 발표하며 자신의 '21세기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킨 바 있다. ● 지점토 위에 아크릴 채색으로 만들어진 각종 공산품의 정물들,『더 스컬프쳐8』는 실제 작가의 작업실 풍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컴퓨터기기와 아이팟 mp3, 모토로라 핸드폰 등 현대라는 시대적 풍경이 밀집되어 있다. 콘센트와 전선이 복잡한 물건들과 엉켜있는 좌대는 실제와 같은 비율로 제작되어 사실성이 부각되나, 세부적으로는 오히려 극사실적 묘사를 거부한 채 허구적 실체로 존재하며, 점토의 재질이 강조된 '조각품'으로서 지위를 갖는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배치된 듯 한 각종의 정물들은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도 정물화의 구도로 보이도록 한 치밀한 작가의 의도가 포착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이나 도시공간을 탐구하고 재구성하는 작가 김상균은 건축 재료의 밑거름인 시멘트를 이용하여 크고 작은 건축 구조물들을 조형적으로 나열한다. ● 서울 및 도시근교를 오가다 외형적으로 이색적인 건물 등을 촬영한 후, 컴퓨터로 상호 간판 등을 제거, 건물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이를 토대로 건물의 외형 구조를 설계하고 건물의 골조가 될 철근 및 일종의 거푸집형태에 시멘트를 붇는 일련의 공정을 통해 탄생된 각각의 건축 모형들은 개별적 작품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건축모형들과 더불어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로 도시적 풍경을 연출한다. ● 그가 조성한 회색도시는 우리의 도시풍경과 확연히 거리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 일터를 오가는 직장인들로 들썩이는 거리, 출처를 알 수 없는 이국적 건축양식의 무분별한 차용, 그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네온사인 불빛 등 어지럽게 얽혀있는 광경이 아닌 그저 적막한 회색공간에 텅 비어진 건물 사이로 인기척 하나 없는 공허함을 작가 김상균은「인공낙원」이라 명명하였다. 김상균의 기능성이 배제된 '인공낙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정체성이 혼미한 도시공간과 그 속에서 무엇인가 결핍된 체 묵인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 김종구는 20세기 기간산업의 대표 물질이라 할 수 있는 대형'통쇠'를 수십일 간 갈아서 그 고유의 물성을 제거하는 기나긴 노동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 그러한 행위의 부산물인 흩어진 쇳가루 분진을 다시모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반성적 행위와 과정을 담담히 표현한다. 전시장 한 면에 전시된 대형 '쇳가루그림'은 전시실을 가로지르는 깎여진 통쇠로 부터 깎여져 내린 쇳가루로 수평상태에서 그린 이후, 수직상태로 세워 설치한 작품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린 쇳가루들이 만든 흔적을 통해 작가의 노동행위에 대한 인내의 시간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05년 고양스튜디오에서 그는 뉴욕의 PS1 레시던스 프로그램의 보고전인「백기를 들었어요」를 개최하여 작가 자신의 지속적인 테마 물음인「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을 잴 수 있을까?」의 답변을 백기를 든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시사한 바 있다. 이렇듯 김종구는 행위를 통한 조각적 근원의 물음을 조각전공에서의 경계를 넘어 회화, 미디어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직접적인 표현방법을 행위를 통해 탐구한다.
김창겸은 1990년대 후반부터 영상 미디어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로, 실재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자아 성찰적 영상 설치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방해-영상(Thwarting-Vision)」은 테이블 위 TV, 트로피, 돼지 저금통, 사과 등과 같은 거실의 일상적 정물들이 석고로 캐스팅되어, 그 위에 동영상을 투사함으로서 실재감을 갖게 된다. 관객은 영상 속 인물들에 의해 점차 생명력을 갖게 되는 오브제들 앞에서 무형의 실체와 그 안에 결합되는 내러티브를 통해 실제처럼 작품 속으로 몰입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동영상 화면이 페이드아웃 되면서 석고 오브제는 실재감을 상실하고 어둠 속에서 하얀 형태로 드러나며, 허상과 현실, 예술 작품과 일상,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전복과 교차를 순식간에 경험하게 된다. ● 김창겸의 작업에서 실재와 이미지와의 관계는 단순한 관계 이상의 상호 간섭 또는 상호 침투로 나타나며, 마침내 그 구분이 무의미하기에까지 이르러 무엇이 실재이고 또한 무엇이 이미지인가를 묻게 만든다. 영상 매체에 대한 그의 관심 자체는 이미 실재보다는 이미지 가 더 힘을 발휘하는 현시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수반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지속적으로 실재와 영상 이미지가 초래하는 어떤 혼동과 경계로 관객을 초대하며, 거기서 실재는 이미지에 의해 장식되고 포장되지만 결국 창백한 석고 덩어리에 불과 한 것이다. 진정한 실재는 없으며, 대신 실재는 이미지를 그리고 이미지는 실재를 참조할 뿐이다. 그는 한편, 「모택동(몬로, 이소룡) 사진 위에 자화상 그리기」와「Trans Selfportrait」과 같은 평면 작업들을 통해 유명인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오버랩 시켜 특유의 위트와 생기를 부여하며, 후기 자본주의 시대 이미지가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쉽게 권력구조를 형성하는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박윤영은 톡톡 튀는 팝(pop)적인 감성으로 기존의 동양화 규범들에 도전하며 동시대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작가는 본인이 제작한 한자식 영어표기법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픽토그램'과 로고(logo)를 산수화로 옮겨 그리는 '로고 산수' 작업을 전형적인 동양화의 형식을 빌어 위트 있게 풀어 왔다. 그 외에도 픽션과 허구 사이의 내러티브를 다큐멘터리 영상, 설치, 페인팅 등으로 제작하여 연극적 세트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는「픽톤 파라다이스 Pickton Paradise」와「몽유생리도 Sleeping Beauty Pad」등 지난 5년간의 작업들을 총체적으로 선보인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픽톤 파라다이스」는 병풍, 비디오, 족자, 접근금지 테이트 등으로 구성된 픽션과 허구를 오가는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사건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호기심과 그로 인한 경험 등이 뒤섞여, 기이한 세계를 연출해내고 있다. ● 2003년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밴쿠버의 한 평화로운 마을에서 돼지농장을 하던 로버트 윌리엄 픽톤이 64명 이상의 여자들을 죽여 돼지 사료로 썼다는 전말의 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작가는 사건의 현장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찾아가 시체들이 나왔다는 구덩이를 촬영하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수집된 정보들은「병풍생리도Sanitary Pad Folding Screen」제발(題跋)에 픽토그램 형식으로 픽톤의 끔찍한 행위를 기호 이미지로 그려 넣었고, 족자 형태의「픽튼 파라다이스Pikton Paradise」에는 픽톤이 여자를 죽여 돼지에게 먹이 는 내용을 역시 기호로 담았으며, 비디오 작업「아름다운 브리티시 콜럼비아Beautiful British Columbia」를 통해 영상자료들을 선보인다. ● 2007년 현재까지 풀리지 않은 이 미궁 속 사건의 시간 속으로 빠져든 관객들을 작가는 또다시 역사 속 다른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작가의 꿈 속.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은 안평대군이 그의 꿈을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의 일화에서 착안한 작품「몽유생리도」는 텔레비전의 '생리대 광고' 문구가 주축을 이루며, 마치 작가가 꿈을 꾼 것처럼 뒤섞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 글로 쓰고, 그 글을 바탕으로 '몽유생리도'를 그린 것이다. 관객은 '작가의 꿈' 속 미로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컴퓨터, 영상, 애니메이션, 사운드, 평면과 입체 등 멀티미디어 장르를 다루고 있는 양만기의 작업은 다양한 사물과 이미지를 채집하고 집적하는 형태로 종종 드러나며, 이로 인해 '데이터베이스 페인팅'이라 일컬어진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사물이나 대상이 지닌 양면성, 주체와 객체간의 소통의 문제, 다큐멘터리가 가진 다의성에 대한 것으로, 주로 인간과 디지털의 '관계'를 형상화한 인터렉티브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 이번 전시에 설치되는 작품「Chocolate Mosaic World」는 80개의 M&N 초콜릿 모양의 틀 안에 각각의 LCD모니터를 설치해 벽면에 배치하여, 달콤한 초콜릿 속에 이라크 전 등의 CNN이 쏟아내는 과대포장 된 이미지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이미지 안의 세상과 이미지 바깥세상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소통과 관계성', '집단과 개인', '부분과 전체'라고 하는 커다란 카테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문자세대에서 영상세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이 겪게 되는 가치의 위기와 새로운 차원의 소외뿐만이 아니라 시뮬라크르(simulacre)시대에 '주체에서 기획으로 옮겨지는 인간의 실존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상징적 표현요소로서 초콜릿 (사회 현실에 대한 이상화)과 그 속에 내장된 영상과 함께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지속되는 음향과 광선 이미지가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매 순간 변하는 작가 의식의 전환과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가상과 현실', 네트워크(network)를 통한 '상호작용과 이미지의 조작 가능성' 등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며, '디지털은 곧 가상 이미지'라는 선입견에 도전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적 패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가 기업체를 만든다면 기업의 이념과 성격, 조직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미술의 특수성을 일반적 사회 시스템에 대입하여 새로운 형태의 가치 척도를 제시해 온 작가 유영호는 'Infinity Cooperation - 무한협력 회사'라는 무자본의 아이디어 기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이는 예술가가 만들고 운영하는 예술가 기업을 지칭하며, 이 기업을 만들어 가는 작가와 작가, 작가와 사회와의 협력, 그리고 이 기업 조직에서 발현되는 창조적 아이디어들을 상징한다. 또한, 현재까지는 생산시설이나 판매망이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기업이지만, 다가올 미래엔 유형의 기업 형태를 갖고자 하며, 또한 경직된 조직구조를 갖지 않는 기업이념을 지향한다. 유영호는 과거 독일에서「hoch2」라는 상점을 열어 작가의 창조된 레이블이 부여된 1000개의 빈 박스나, 작가의 작품의 내부를 통과한 물을 판매한 가게 등 일반 소비자가 소비의 의지로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상품을 생산하고 이를 판매함으로서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미술가와 미술, 생산과 소비 그리고 유통방식에 대한 유머러스한 전복을 제시해왔다. ● 이번 협력 프로젝트에서는 재활용 가능한 모든 물건이나 아이디어들을 이용하여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함의의 문맥을 유쾌하게 풀어가고 있는 작가 윤정원의 브랜드「smile planet」의 런칭쇼와 더불어 매장을 열어 지속 성장이 가능한 모델로서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한다.「smile planet」은 '세상에는 쓸모 없이 창조된 것은 없으며 모든 생산품은 아름답다'라는 모토 하에 의상, 액세서리, 생활소품,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 가능한 사회적 생산물들을 재활용하고 이를 생산하는 '아트 패션 생활' 브랜드이다. 작가적 영감과 에너지를 부여받은 하나하나의 생산물은 저마다 고유한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때로는 사용이 가능한 미술 작품-오브제로 기능하며, 필요에 따라 대량생산도 가능한 아이디어 스케치들이다. ●「smile planet」의 성공은, 생산과 소비의 과잉시대에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들-물질자원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원, 사회적, 인간적인 자원 및 아이디어 등-의 가치를 발견하고 재창조하며, 이를 문화적 소비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잉여이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려 노력하는 데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smile planet」이 창조하고자 하는 새로운 트렌드이다.
구상회화의 재현(Representation)과 시선의 문제를 독특한 화법으로 풀어온 작가 이광호는 2005~2006년 창동스튜디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Inter-View in Changdong」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초상화 형식으로 제작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오브제 설치와 인터뷰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하며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한 극사실적 인물묘사와 그들과의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작업세계는 이제 개인적 차원의 소통과 반성의 시점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외부로 확장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인「Memory」는 작가 이광호의 시각에서 작곡가 윤이상을 재조명하고 기리는 의미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과 연루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가려진 예술적 성취와 삶의 가치를 여러 관점에서 재평가하며,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또한 작곡가 윤이상의 평생 반려자였던 이수자 여사를 비롯해, 그를 기억하는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통영과 베를린을 잇는 윤이상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작가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내면화 한 작품들로, 주제에 접근하는 방업방식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Memory'는 2002년 5월 심양의 한 식당에서 작가가 부인 이수자 여사와의 첫 만남의 우연적인 상황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은 작가 이광호의 눈으로 보는 풍경이면서 동시에 윤이상의 영혼이 바라보는 풍경일 수도 있다. 또한, 베를린 자택의 평소 윤이상이 앉아 있던 소파와 공허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그린 'Vacancy'와 같은 작업을 통해 그의 부재와 기억 속의 실재를 오가며 나눈 감성적 교감을 드러내고 있다. ● 이와 더불어, 작가는 윤이상의 삶과 관련된 주변사물들을 대상화하여 그린다. 'My Letter'시리즈는 5, 60년대 윤이상의 유럽 유학시절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던 그림엽서를 재현한 그림으로, 가족에 대한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어 윤이상의 인간적인 면모를 상상할 수 있다. ● 이로써, 관객은 개인의 실존적 고립을 예술작품을 통해 승화하고 이념, 계급, 민족을 초월해 인류 대화합의 전주곡을 울려 퍼지게 했던 한 평화주의 음악가와 그에 대한 찬사와 감사를 전하는 후대의 한 미술작가의 진정한 예술적 만남을 목격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기억'과 함께 존재한다. 현재 위치하고 있는 시공간의 자아와 무의식 속에 자리한 또 다른 이중자아가 교차하며 관객은 이배경의 인터랙티브 설치 작업「섬 (island)」으로 빠져들게 된다. 두 개의 실시간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두 개의 다른 공간을 관객의 몸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통로'로 만드는 이 설치 작업은 센서에 의해 감지된 관람객의 신체가 화면 위에 뚫린 형태로 나타나며, 동시에 그 뚫린 몸 안에는 지구 반대 편 어느 거리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 신체 통로를 따라 관객은 개인적 경험에 의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꿈꾸고 있는 그 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 이배경 작업의 주된 골자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러나 단순히 수학적으로 계산되거나 객관적인 판단의 좌표로서의 시공간이 아닌, '내면화된 시간'으로 이미 개인의 경험이 포함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담겨져 있는 시간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또 다른 인터랙티브 작업「교집합 (interaction)」은 마치 관객이 작가의 두뇌 속을 경험하듯 작가로서의 정체성, 작업에 대한 고민, 아이디어, 일기와 같은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관객이 화면 앞에 섰을 때 관객의 형태가 단어와 문장으로 가시화 된다. 이로써 작가와 관객이 작품 안에서 소통하며, 서로의 내적 시간과 의식을 공유하게 되며, 그로 인해 시공간에 대한 그의 개념적인 이해가 건조한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서 시청각적으로 구현됨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사색적이고 여운을 갖게 하는 감성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3개월 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시 스튜디오에서 교환입주를 참여한 작가 이호진은 독일에서 제작한 작품과 고양스튜디오 입주기간의 근작 및 신작으로 구성한 출품작들은 자본주의 속의 빈부격차, 물질 만능주의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등의 뒤섞인 삶의 현상 등을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인 '독백'으로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준다. ● 작가 자신의 삶이 평범한 순간들과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 양쪽 모두에 있어서 순응하고 또는 부정함으로써 작가가 가지고 있는 '삶속의 퍼즐'을 껴 맞추듯 묘사함과 동시에 작가의 경험에 대한 물질적 기호로써 대상물(엎어진 술병, 총, 아파트형상의 건축물, 사람 등)들이 이입됨을 볼 수 있다. ● 이러한 시지각적 내용들의 혼합방식은 보이는 장면에 따라 우리의 의식 속에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매 시간 변하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일 수도 있고,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현상들이 뒤얽혀 있는 경계 속에서 자신들의 삶에 취해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영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부분이나 구체적인 산의 풍경을 모티프로 그림을 그려온 작가로 그의 작품은 재현을 넘어선 심상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로 김홍도의 진경산수화를 모티프로 하여 부분을 확대해 그리며 원본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후 정선의 진경산수화로 대상을 옮겨 '진경'을 관념적으로 해석, 그 의미의 자기화 과정을 거쳐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실경을 직접 그리게 된다. 이는 작가가 김홍도와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모티브로 하기 90년대 중반 이전, 실경을 그리던 그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그가 해석하는 실경의 범주는 무한대의 시공간과 공감각적 인식의 세계로 확대되었다. 즉, 인식의 전환에 따라 대상의 관점이 다양하게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인왕산」,「불암산」,「북한산」연작은 그의 최근전시 '활경(活景)'의 제목에서 연상되듯 바로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 자신이 항상 마주하고 있는 서울 주변의 산들을 거닐며 날마다 새롭게 달라지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오일물감과 넓은 평붓으로 맑게 겹쳐진 시원하고 신중하며 부드럽고 단호한 붓질들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그가 그리는 산이 멀리서 바라보는 외형의 묘사가 아닌 바위의 형태로 '속'의 부분을 확대한 대형 이미지로 드러낸 것은 자연의 응축된 힘을 쏟아내는 듯하다. 이 산 그림들은 옛 화가들이 그랬듯이, 원형적 현존성을 미적으로 추구해 가는 과정의 산물이며, 작가의 직관과 감성에 의존한 실존적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정재철은 고양스튜디오 입주를 기점으로 약 1년 6개월 동안「실크로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폐 현수막의 수집과 세탁, 포장, 퍼포먼스, 현지(중국 ,파키스탄, 인도 등) 전달 및 확인을 위한 2회의 실크로드여행 그리고 다큐멘터리 전시로 구성되었다. ● 소비·산업사회의 홍보 기초수단인 현수막은 그 광고 방식과 내용에 있어 현재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기록하고 있는 사물이며 정보전달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디자인과 재료의 훼손 정도에 상관없이 곧바로 폐기된다. 이러한 폐현수막을 서울과 경기의 구청들에서 수집하여 실크로드상의 지역주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현재와 달리 과거에 무역통로로서 상업적 번영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렸던 그들이 우리나라의 폐현수막을 실제 필요에 의해 사용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전달했던 것이다. ● 일정기간(약6개월)이 지난 후, 다시 그 지역을 방문하여 폐현수막의 사용 형태를 확인한다. 그 방법은 사진, 비디오, 녹취 등의 기록수집이 되었으며, 결과들을 한국에 돌아와 전시한다. 이것은 현수막이 지닌 생산과 소비의 매개적 역할과 문화적 속성을 타 문화권에 옮겨 놓음으로써 문화의 점이와 중첩을 확인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실크로드의 역사성을 현재의 삶 속에서 살펴본다는데 의미가 있다.
한기창은 X선 필름을 재료로 하는 독특한 작업을 해온 작가로, 2002년 이후 '뢴트겐의 정원' 연작을 통해 라이트 박스에 X선 사진을 오려 붙이는 새로운 방식의 회화와 설치작업을 재현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작업에서 변형된 신체의 일부를 포함해, 손가락과 척추가 바스러지거나 쇠가 박힌,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X선 사진들은 라이트 박스에 얹혀 아름다운 꽃이나 나무, 식물의 줄기로 환생하며,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된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일필사의도 ( 一筆寫意圖 )」는 캔버스 목판에 의료용 봉합재료인 스킨 스테이플이라는 스테인리스 재료를 수없이 되풀이 박으면서 만들어지는 드로잉으로, 일종의 모노크롬 산수풍경을 이룬다. 차가운 금속성의 의료용 스테이플 집합 위로 실제 풍경이 영상으로 투사되어, 낱알의 금속조각들이 각각의 빛을 발하며 비로소 한 폭의 눈부신 디지털 산수화가 완성된다. ● X선 사진이나 의료용 스킨 스테이플을 매개체로 신체적 외상과 고통의 흔적을 자연의 모티브와 접합시켜 일종의 치유의 과정으로 진행해 온 이전의 작업들로부터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해 온 작가는 현대인, 현대적 도시풍경을 민화의 부분을 차용하여, 화조, 목란, 사슴, 거북 등의 전통문양과 함께 구성,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상상적 풍경을 창조해내었다. 시트지와 라인테이프, 아크릴, 라이트 박스 등을 재료로 새로운 형식의 동시대 민화를 재현한 「이중적 공간놀이」와 「내외적 풍경」은 한 화면 내에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표상들로서 한국 동시대 문화의 현주소를 제고하며, 독특한 한국적 감성과 미학을 작가의 언어로 표출해내고 있다. ■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창동&고양
Vol.20070413a | 공통경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