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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21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6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서술적이고 과장된 회화 작업을 해온 이유정의 네 번째 개인전. 이번 전시에는 이전의 작업보다 이야기들의 과도함과 축적, 연속의 특징이 빗어내는 희극성이 더욱 두드러진 일련의 회화 연작들과 바느질 드로잉 설치, 드로잉 등의 작업들이 전시된다. 현대 사회의 물질 과잉과 소비 심리의 문제를 다룬「바벨탑」연작, 연극적 상황을 증폭시켜 짜깁기한「꾸며낸 이야기 연작」, 기억의 불확실성과 연상 작용의 불순함을 들추어내는「토끼의 간」연작, 사적 역사의 기록으로서 바느질의 은유, 꿰맨 드로잉 설치,「셰에라자드의 끝없는 이야기」등을 만날 수 있다. ● 그의 그림에는 화면 속에 짜여진 여러 가지 요소들의 상관관계와 축적을 통해 중첩된 관련 모티프들이 도처에 산재한다. 작가는 연극을 연출하는 연출가처럼 장면을 마련하고 등장인물들을 삽입하고 소시민적 주인공들을 영웅으로 만든다. 가령 그가 만든 달팽이 주인공은 시지프스만큼이나 비극적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파노플리, 욕망의 종합 선물 세트 나날이 우편함을 채우는 광고 전단지에서 읽어낼 수 있는 소비 심리의 공통된 특징은 정통과 럭셔리에 대한 집착이다. 백화점과 대형 매장의 광고 전단지, 아파트 단지 업소 소개책자 등은 새로운 주거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요식 문화와 건강주의들의 보편화되고 저변 확대된 유행 흐름을 날라준다. 작가는 그 중에서도 음식물 광고를 다루는 '찌라시'를 주목한다. 미각 트렌드의 후위 부대라 할 수 있는 찌라시 미감은 메뚜기 떼처럼 빠른 속도로 고급문화를 모방해 그것을 평준화시켜버리고 마는, 바로 어제의 고급문화의 차별주의를 무력하고 식상하게 만드는 도발적인 전복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취향에 월계관을 씌우고 기념비적인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취향을 '속(俗)'에서 '성(聖)'으로 끌어올린다. 그것은 대중문화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는 태도이다. ●「바벨탑」연작은 포식자(捕食者)의 욕구에 비추어 파노플리라는 욕망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광고 형태를 모방하여 건축적으로 시각화한 음식물에 대한 경배이다. 카니발리즘을 방불케 하는 식욕의 퍼레이드는 포식자에게 대상물이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양방향으로 관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제적인 동시에 종속적이다. 사자가 영양을 경배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면 고대 혈거인들이 그린 들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욕망의 형상은 결코 야무지지 못하다. 건축적으로 보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욕망의 부실 공사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태이지만, 깃털 하나의 무게가 더해져 무너지는 한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적재를 감당하리라는 안정적 기대감을 동시에 준다. 그 점에서 바로「바벨탑」은 우리나라 민간 신앙의 돌탑에 가깝다. 스티로폼이나 스펀지에 기대어 표면만을 얄팍하게 덮어 가린 축하용 대형 화환의 우스꽝스러운 과시적 미, 높다란 플라스틱 용기로 포장을 부풀려 용량을 절약하는 과자, 초콜릿 포장, 공작처럼 전면만을 위한 폐백 음식 상품 패키지, 음식 궁합도 무시한 채 게걸스럽게 쌓아 올린 미련한 뷔페 접시 등을 모방한다. 이러한 형상의 표현은 뻔한 사탕발림과 치졸한 경품의 호객에도 안달하는 어린아이들의 유치함처럼 알면서 넘어가는 주술 효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광고 전단지 속의 환영들이 놀랍도록 솔직하고 겸손하게, 그러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속삭이는 속임수에 대한 고백이 기꺼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이미지를 위한 사진이므로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서술성「토끼의 간」,「꾸며낸 이야기」,「바벨탑」연작들을 통해 연속 그림의 형식을 보여준다. 「꾸며낸 이야기」연작은 연극적 상황을 증폭시켜 짜깁기한 연속 그림 형식으로 상관없는 별개의 모티프들을 시각적, 혹은 언어적 연관성을 따르는 연상 작용에 의해 여러 개의 줄기로 이야기를 조합해나가고 릴레이처럼 모티프들을 증식시킨다. 예를 들면「꾸며낸 이야기」는 거짓말을 할 때 말을 더듬는 아이들도 혼자 놀 때는 막히지도 않고 술술 논리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잘도 지어내는 것과 같은 식으로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도록 한다. 그 연결 고리가 논리를 지니면 이야기는 리듬이 끊기고 더디다가 일탈을 하기 시작하면 빠르고 거침없이 진행된다. 이야기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의 연속극이나 연재만화, 광고 시리즈를 닮았다.
그 밖에도 기억의 불확실성과 연상 작용의 불순함을 들추어내는「토끼의 간」연작이 있다.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 입양 프랑스 인(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으로부터 즉석에서 부탁받아 한국어 전래 동화 이야기 중『별주부전』을 기억해내야 했었다. 나중에 궁금하여 줄거리를 살펴본 결과 이야기를 위해 동원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원래 내용과 터무니없이 다른, 황당하기는 하나 심리적인 연상 작용이 개입된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토끼의 간」이야기의 줄거리를 기억해내려 할 때 개입된 이미지들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나 계수나무의 토끼, 모네의 수련정원, 바니걸스, 핀업 걸과 올랭피아, 장기 매매 등의 이미지를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윤리적 잣대였고 이러한 생각들과 혼재한 이미지들의 방해로 뒤죽박죽한 줄거리가 완성된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와 토끼의 오버랩은 주도권의 역전에 따른 당황스런 반응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장기나 인신매매와 관련하여 윤리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이 제공자(토끼)와 중개인(자라) 이전에 수요자(용왕)와 방관자(감상자)가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온 발상이다.
수집 - 연결 축적「셰에라자드(Scheherazade)의 끝없는 이야기」는 약상자 속으로부터 주렁주렁 펼쳐져 나와 이어지는 오브제를 이용한 아상블라주와 바느질 드로잉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엄마가 시집오실 때 외할머니가 지어주신, 이제는 모양을 잃은 명주 치맛자락 위에 수를 놓는다. 이러한 감성의 대물림과 그 기록 행위는 어떠한 공식 문서나 유전적 정보보다 더 선명하게 뿌리의 속성을 느끼게 한다. 이유정에게 그림은 일종의 기록이다. 착잡하고 덧없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작은 성취이자 별다른 힘을 갖지 못한 자가 변변치 못한 삶이나마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다.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를 꾸며내야 하는 셰에라자드같이 화가는 돌림 노래처럼 꼬리를 무는 상념들을 펼쳐놓는다. 그의 작업은 시간의 무상함을 이기기 위해 만들었을 할머니들의 조각보나 뜨개질, 소외된 이들이 시간을 초월하며 남겨놓은 집요한 기록들과 닮아 있다. 그렇게 주절주절 늘어놓는 넋두리들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모노드라마 한 편 같다. 작가는 아플 때마다 열게 되는 약상자처럼 자신의 작업 과정을 고통을 덜기 위한 자기만의 방책으로 여긴다. 그것은 쓰고 버린 자질구레한 소비품들을 모아놓은 잡동사니에 불과하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신전과도 같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늘 소모되고 갉아먹히는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것, 그 안에서 잉여로서의 현대인의 모습을 물질의 풍요와 함께 느끼는 위기감의 과도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가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면서 품고 있는, 그러면서도 그 물건들의 위협(?)으로 고통받는 악순환을 극복하는 일은 철저하게 그것들을 모아서 드러내는 것뿐이다. 오랫동안 모아두었던 소비 시대의 강박적 물건들과 잡동사니들, 예를 들어 자신이 오랫동안 입었던 블라우스의 천 조각,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엄마의 명주 치맛자락, 망가진 액세서리나 구슬, 비즈나 반짝이, 단추, 쓰고 남은 포장지나 선물받은 리본, 쓰고 난 지하철 표나 공연 티켓 등을 이용한다. 마치 무성하게 자라 집을 덮어버릴까 두려운 담쟁이 덩굴처럼 자신의 영역을 위협하는 소비적인 물건들을 모두 그러모아 접합시킨다. ● 서술성과 연속성은 지난 세기 동안 회화의 자율성이라는 강령에 밀려나 있거나 혹은 다른 장르에 넘겨주었던 미덕이었으나 이유정은 이 같은 문제를 회화를 통해 집요하게 고민해왔다. 그가 꾸며내는 황당한 이야기들은 사회적 이슈들과 만나면서 충돌하고 덧칠되어 가며 그만의 사적 신화로 만들어진다. 관람객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할 이러한 사적 신화는 역사의 공유라는 보편적 공감대와 인간 삶의 공통분모를 통해 소통될 수 있을 것이다. ■ 이유정
Vol.20070325f | 이유정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