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Elimination

홍승희 회화展   2007_0314 ▶ 2007_0320

홍승희_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각 72.2×60.6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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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14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홍승희 작품의 중심어는 자아의 소거(지우기)와 실존, 현상, 근원 탐구이다. 소거의 개념은 현상학적 접근이 가능하다. 여기서 감춘다거나 드러나는 소거는 자아의 해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자아를 통한 사물의 본질 탐구라는 작가의 조형적, 개념적 접근이며, 삶을 이야기하는 이미지 철학에 가깝다. 마치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탐구와 같이 그의 주제는 자연과 인간 세계에 대한 근원이나 본질 탐구와 연관성을 갖는다. 작가의 의도된, 또는 우연의 행위까지 포함된 회화의 결과로 '흔적'은 그려지고 지워지는 반복된다. 이는 시각적 효과와 조형적 구성을 넘어 자아의 '소거'를 의미한다. 그의 추상 회화는 자신의 세계(le monde)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주체화와 모든 근원을 캔버스에 담고자하는 노력이 지우기의 '흔적'이다. ● 현대 추상표현 화가들은 이러한 현상학적 지각 세계를 거침없이 드러내고자 하였다. 작가의 직접적인 행위는 속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홍승희의 작업은 이들과 같은 출발과 결과를 보여주나, 그 과정이나 개념은 다르다. 그는 무엇보다 직접적 드러냄보다 그리는 것을 지워나가는 소거를 통해 흔적의 의미를 중시한다. 이는 절대를 향한 미의 탐구와 같이 인간의 실존적 탐구와 같은 맥락이다. 20세기 인간은 삶의 의미에서 실존과 초월,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며 자아를 탐구하는데, 홍승희 경우 이들과 같은 개념미술로 이해할 수 있다.

홍승희_Vital Power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07

생명의 순환과 생명성이라는 현상학적 탐구가 추상회화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이러한 의문에 홍승희 자신 역시 그 동안 많은 조형적 실험을 통한 접근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그는 현재와 같은 동일한 주제로 출발하면서 다양한 조형변화를 갖는다. 1990년대 초반 그는 사각 면이나 직선, 곡선 등 조형적 구성이 강조되는 추상화를 제작한다. 현재와 같은 사물의 근원이나 삶의 본질 문제보다 추상적 형태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90년대 후반「흔적」과「생명력」연작으로 오늘날 같은 '지우는'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추상회화는 힘있는 붓 터치(필력)가 강조되고, 중첩된 색의 반점 등 무언가 의미 있는'흔적'을 남기고 또 지워나가는「생명력」과「근원-흔적」시리즈를 남긴다. ● 자연의 계절 변화를 상징하듯 그의 연작에 나타난 색채는 순환적 상징의 단색조로 바뀌고 숲이나 풀잎과 같은 대자연 풍경처럼 넓은 화폭을 사용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자연을 그리워하듯 우리는 자연이 지니는 생명력을 느낄 때, 새로운 에너지를 경험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진실 된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자유로운 붓질"작가노트,1995)이라고 기록한다. 한지 파편의 콜라주와 겹쳐진 붓 터치의 흔적, 이는 인간의 갈등이며, 자연의 순리를 담고자하는 작가의 의도된 무의식적 표현이다.

홍승희_Arche-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07

작가는 자신을 감추는 지우기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회화가 갖는 가장 본질적 물음은 절대적 가치의 추구이다. 내면의 지시에 따라 작가는 가시적 세계를 감추고, 비가시적 세계를 향한 '순수'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신체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행위의 본바탕으로 신체는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평면에 펼쳐 놓는다. 계절 변화와 같은 색채나 물질을 통한 형태는 사물을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또 그리면서 다시 지우고 또 지워나가는 행위를 통해 신체가 사라지듯, 자아는 소거되며 '비워진 상태'라는 작가의 마음이 남을 뿐이다. 자아의 소거는 실존을 탐구하는 초월적 세계의 모색이다. 비유적 인간의 삶, 현상들이 지워지고 흔적만이 평면에 남는다. ● 홍승희의 행위(제스트)는 결코 격렬하거나 과격하지 않다. 정중동의 움직임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감지한다. 작고 큰 붓 터치는 겹쳐지면서 힘을 응축시킨다. 붓 터치와 나이프로 밀어낸 행위의 흔적들, 이러한 행위의 흔적이야말로 순수한 지각 상태의 현상을 표출한다. 행위의 반복으로 작가는 자아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지워나가면서 자아를 감추고 있다. 자연과 삶의 본질을 그의 흔적은 독백처럼 담아내며, 물질을 통한 생명을 그려낸다. ● 물질과 생명의 문제는 현대 시각예술의 커다란 과제였다. 물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물질에 정신을 담는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화가들은 물질을 통한 자연의 모방에서 벗어나 순수, 그 자체를 물질에 담고자 한다. 물질은 곧 형태이며 색채가 된다. 재현에서 벗어난 추상은 물질뿐만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해방, 또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든다. 조형 예술가들은 물질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획득한다. 색의 반점과 색면들, 그리고 반복된 붓 터치들이 화면에 가득 차면서 물질은 비 물질로 변하고 대상의 부재가 선언된다. 이는 자유이며 곧, 작가의 내면이다.

홍승희_Self-Eliminiation_캔버스에 혼합재료_227×150cm_2007

홍승희의 흔적은 반복이며, 독특한 시간의 구조를 갖는다. 우리의 삶과 상상력에서 벗어난 그의 흔적은 중심을 잃고 있다. 어디에 시간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호하다. 물리적 시간이 아닌 근원의 시간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를 암시하는 것이 과거의 지워진 흔적과 남겨진 현재, 그리고 다시 과거가 된 현재의 흔적을 통한 미래를 보는「근원-흔적,2006~7」연작에 보여주는 시간/구조의 해석이다. ● 그의 작품은 자연과 삶의 근원 탐구가 과거와 현재, 미래의 풍경이 교차되거나 중복되면서 수없이 반복된 행위의 흔적이 강조된다. 비록 혼란은 가중되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자아를 향한 현상학적 접근으로 복잡한 시간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닌 주관적 시간구조이다.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삶의 흐름을 시간으로 표현하는 회화적 표현이다. 그의 작품은 일정한 방향이나 도표처럼 읽을 수 있는 진행 과정은 없다. 마치 물이 흐르듯, 아니면 화살이 날아가듯 방향과 음영의 구조를 가질 뿐이다.

홍승희_Arche-Trace_캔버스에 혼합재료_181.8×227.3cm_2006

그의「근원-흔적」은 물리적 시간의 중복이나 반복된 행위보다 의미의 시간구조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현재를 중심으로 지나간 과거와 앞으로 올 미래를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간은 자아의 벗어남이며,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하는 열린 시간이다. 지워진 흔적을 통해, 또는 남겨진 소거의 흔적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자 보여준다. 결국 흔적이라는 생명의 표현은 음영의 시간구조를 통해 사라진 실체를 정신적으로 복원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근원-흔적」연작은 시간과 존재, 자아의 비어냄을 통한 가득함을 시각화시키는 작업으로 해석된다.

홍승희_Self-Eliminiation_캔버스에 혼합재료_227×130cm_2007

홍승희의 추상표현 회화는 자아의 '소거(지우기)'를 통한 자연의 본질과 삶의 다양한 현상을 접근하여 근원을 모색하려는 작업이다. 이는 신체의 개입과 물성의 실험으로 생명성을 표현하려한다. 아울러 독특한 입체적 음영의 시간 구조는 실체를 지워나가는 '흔적'을 탄생시키며, 주체의 소거를 통한 '현전의 장'으로 환상과 또 다른 지각 세계까지 확장시킨다. 이는 작가의 말처럼 캔버스에 지워진 흔적을 통해 "그 무언가가 여기에 재현되어 영구적으로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실재가 아닌 부재를 통한 '지우기' 노력이 성과를 얻는 느낌이다.

홍승희_Vital Power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320cm_2006

이제 우리는 그의 흔적에서 자아의 소거를 통한 자아 확인, 신체와 물질에서 해방된 정신, 그리고 자유, 더 나아가 물리적 시간을 초월한 시각적 표현의 시간구조로 음영의 세계를 통한 자연과 삶의 다양한 현상을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채우는 것이 아닌 비워나가려는 작가의 근원에 대한 모색을 주목할 수 있다. 아울러 앞으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 머뭇거리지 않는 또 다른 '현존의 장'으로「근원-흔적」이후를 기대해 본다. 자연과 삶의 부정적 시각이 아닌 긍정적 시각으로 있음의 흔적을 보여주고, 주체의 소멸과 다른 또 다른 '근원'으로「흔적」연작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유재길

Vol.20070322b | 홍승희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