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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15_목요일_06:00pm
주최_아트포럼 뉴게이트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디지털식 아날로그 대화법이번에 갖게 될 아트포럼뉴게이트 초대개인전에서 이도수는 관객의 참여를 이용한 「금고속의 명함」이란 타이틀의 퍼포먼스 영상작업을 선보이게 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관객들은 방명록 대신 탁자 위에 준비된 10여 종류의 직함이 서로 다른 명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직함들은 100여 년 뒤에나 있을 법한 것들로서 예를 들면 '전국부채질연합회장', '한국추락예보원', '자동차운전인간문화재', '지존사(박사 다음의 학위)' 등등이다. '전국 부채질 연합회 회장'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전체 대기기온 상승 때문에 부채질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일컫는 것이며, '한국추락예보원'은 하도 많은 비행물체 때문에 수시로 추락사고가 나서 그것을 미리 예보하는 예보원을 말하고, '자동차 운전 인간문화재'는 자동으로 운전되는 자동차 때문에 사람들이 운전법을 모두 잊어버리므로 운전 할 줄 아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지존사'는 흔한 박사 다음으로 높은 학위다.
관객들은 마음에 드는 명함을 골라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전시장 가운데에 있는 사각의 금고(이 금고의 사면 벽에는 작가 이도수의 명함이 빼곡이 붙어있다) 속에 넣는다. 이 금고 한쪽 옆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금고 속에 내장된 프로젝터의 영상이 벽에 투사된다. 벽에는 작가가 거리에서 행인들로부터 명함을 받는, 이전에 촬영해 편집한 장면과 전시장에서 금고 안에 명함을 넣는 실시간 장면이 3-5초 간격으로 반복, 투사된다. 명함을 요구받았을 때 보여준 행인들의 다양한 반응이 재미있다. 당황한 표정에서 의아해 하며 설명을 듣는 표정, 놀라는 동작, 재미있어 하는 표정 등이 돋보이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개미소굴」은 어떤 식으로든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풍자가 깃든 작품이다. 전시장 한 곳에 박스가 놓여있고 박스 위에는 둥근 스크린이 부착돼 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스크린을 향해 박스 속에 내장된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투사된다. 개미들이 열심히 터널을 뚫는 중이다. 미로와 같은 개미굴을 뚫는 장면이 투사되는 가운데 비닐풍선 위에는 관객들이 붙여놓은 명함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인간으로 상징되는 명함을 개미들이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명함에 대한 생각은 이러합니다. 명함은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인사하며 주고받는 작은 종잇조각입니다. 그 가로 9Cm 세로 5Cm의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인연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그 중요한 인연의 통로를 여러분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저 같은 경우만 해도 휴대폰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저장해 두고 명함은 어디다 뒀는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점차 많이 만나가면서 명함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명함철에 잘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명함을 준 사람 한명 한명과의 인연이 그 어떤 재물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여겨 금고 속에 넣어봤습니다. 물론 그냥 이메일로 발송하면 되는 것을 굳이 편지로 안 보내도 되듯이 누가 훔쳐가지도 않는 명함을 굳이 금고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메일로 보내면 될 것을 편지로 직접 받으면 감동을 느끼듯이 휴대폰에 저장하면 될 것을 금고 속에 저장하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 언뜻 보면 뉴미디어 작업을 하는 작가답지 않게 아날로그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발상이지만, 물질보다는 사람을, 그리고 편리함보다는 인연의 향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물질만능주의와 기술문명의 폐해를 지적한 작품이다.
이도수는 인간성보다는 금력이, 평화로운 공존과 인간적 유대보다는 편리함이, 인간보다는 기계에 대한 숭배가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에 대해 온건한 사유로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의 사고는 아날로그적이나 이의 표출방식은 디지털적이다. 그는 따뜻한 온탕(아날로그)과 차가운 냉탕(디지털) 사이를 오가는 한 사람의 때밀이다. 그의 손에는 때수건이 들려있다. 그는 이 두 문명(아날로그/디지털)의 교차로에 서서 말 걸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잘 알려진 표현을 빌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말 걸기인 것이다. ■ 윤진섭
Vol.20070320a | 이도수 크로마키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