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욱의 다채로운 철 조각들

손현욱 조각展   2007_0319 ▶ 2007_0324

손현욱_오려진 악어_철에 채색_120×50×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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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19_월요일_06:00pm

부산 시청 제1 전시관 부산시 연제구 중앙로 2001번지 Tel. 051_888_2000 www.busan.go.kr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상호작용 - 손현욱의 다채로운 철 조각들 ● 입체를 다루는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결정 중의 하나는 작품의 볼륨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우선 작품의 외피를 닫힌 구조로 마무리할 것인가 혹은 열린 구조로 둘 것이냐에 대한 선택이 있다. 이 결정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고, 더불어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세계도 다르게 펼쳐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닫힌 구조는 자칫 단순해 보이거나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중후함, 깊이감 등이 느껴지는 반면, 열린 구조는 표현의 가능성이 좀더 다양하고 관객의 시선을 끌기가 유리하지만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또한 닫힌 구조 안에서도 속을 채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느낌 차이가 판이하게 드러난다. 채울 경우 밀도는 배가되지만, 이동이나 비용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비우게 되면 이동성이나 비용절감부분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반면, 어쩔 수 없이 밀도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손현욱_za za zoo_철에 채색_120×120×190cm
손현욱_母子상-낮잠_철에 채색_2미터이내 가변설치

이러한 시소게임의 과정을 살짝 비켜가는 재치를 손현욱의 조각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조각은 기본적으로 닫힌 공간을 표방하지만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열린 구조를 지향하여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장점들을 추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육면체, 원기둥과 같은 단순 입방체의 순수 추상과 구상사이의 중간 지점에 서서 반추상 조각을 제작한다. 직접적인 표현은 자제하면서도 기학학적 추상의 무미건조함은 살짝 비켜가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말하자면 손현욱의 조각은 경계지대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손현욱_낙타부부_철에 채색_각 150×40×110cm
손현욱_짝지를 찾아서_철에 채색_80×30×70cm

그렇다면 작가가 애초부터 전략적으로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공존을 시도했던 것일까. 그의 초기 작품을 살펴보면 그러한 의문들이 풀리면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초기작업이라 할 수 있는 학부시절의 작업들은 의레 대부분의 조각과 학생들이 그러하듯 거친 철재 조각들로 채워진다. 또한 타이틀로 제시된 단어들도 '진보', '新기마', '+ = -'처럼 진지한 고민이 들어가 있는 듯 하면서도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막연하게나마 거대담론을 거론하고 싶고 자신의 성취 욕망을 드러내고픈 젊은 시절의 객기가 다분히 묻어난다. 한 편,「정박」,「방과 후」처럼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의 편린들을 담고 있는 작품도 등장하고,「도시인」,「위기의 남자」같은 도시생활의 경쟁에 지친 현대인의 모습을 아이러니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지금도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는 2002년 비엔날레 출품작「자연으로 돌아가다」도 이 시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성향과 더불어 2003년 이후부터는 기하학적 반 추상 작품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전의 진중함과는 사뭇 다른 조형세계를 표방하고 있어서 그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그 전환의 사유가 전략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에 충실한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입방체인 장롱의 문을 열면 그 애초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게 바뀌듯이, 육면체나 원기둥에서 표면을 오려내면 전혀 다른 형태로 변신되는 과정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얻었던 것 같다. 마치 사각 박스의 기본형태에서 오려낸 부분을 펼치면 개의 형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낙타의 모습이 담기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조각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포착된다. 즉, 닫힌 구조의 입방체가 공간이 열린 새로운 조각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의 조각에서 열린 부분을 다시 닫으면 거의 정확하게 미니멀한 입방체로 되돌릴 수 있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열림은 다시 닫힘을 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開閉의 상호작용"이 그가 가진 조각의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손현욱_lobster_철에 채색_60×60×150cm
손현욱_kingcrab_철에 채색_190×100×100cm

주목해야할 또 다른 변화는 그가 여전히 철이라는 재료에 집착하면서도 이전과는 뚜렷하게 차이 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작업이 무겁고 차가운 녹 쓴 철의 마티에르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면 최근 작업은 가벼우면서도 다채로운 색을 입은 매끄럽게 가공된 철로 뭇 관람객들의 시선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시대적 트랜드가 가벼움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처럼 그의 작품이 가진 화려한 색채 역시 무겁지 않은 시각적 즐거움을 안겨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소재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막연하게 진중했던 이전의 내용대신 동물, 인형 등을 다룬 반추상적 성향에서부터「고전적 설계를 위한 구조」,「대립적 공존을 위한 구조」,「배부른 오후」와 같은 기하학적 추상성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작업의 향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전망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한다. 아직 상아탑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2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과감하게 첫 개인전을 준비한 작가에게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겠지만, 조각에 있어서 공간에 대한 고민, 특히 開閉의 개념이 좀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깊어진다면 주목해 볼 여지가 충분히 있는 작업들이라 평할 만하다. 특히 많은 작가들이 다루기 힘들어서 회피하는 철을 고집하면서도 원래의 무거움, 냉정함, 차가움을 화려하면서도 재미나고 가벼우면서도 발랄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재치가 돋보인다. ■ 안규식

Vol.20070319a | 손현욱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