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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14_수요일_06:00pm
난달 2007-6 창작지원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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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물결의 무형규칙성에 내재한 결기潔己 ● 물은 세상을 흡입하면서도 동화되지 않은 고집불통의 맑고 순수한 지극히 자연적인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 절대적인 숙명은 인간에게 숭고함 존재이상의 대상체이며 만물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융화제의 이름으로 새로운 형상물을 만들어낸다. 만물의 결합조건은 개별적인 물성이 서로 만나 용해성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물은 신체조직을 생성하고 형성해 나아가는 융화제로 피와 동일하며 혈관의 수로는 생명을 온전하게 유지해주는 거대한 조직체의 엉켜있는 보호막과 같다.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 상태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모태에서 자라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물에 잠겨있는 수중생활을 접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인간이 물과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사실적 지각은 물이 지니는 감수성에 대한 친숙한 감성을 종용하고 있으며 세상과 조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반대로 반사하기도 한다. 생명을 연장하고 유지함에 있어 하루에 마시는 물은 무의식적으로 섭취해야만 하는 운명과 우연히 강이나 물의 흐름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적 평온을 찾게 되는 이러한 정황이 물과의 인과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적인 면을 보아도 인간에게 물은 중요한 대상체임은 틀림없다. 물의 흐름은 세상의 모든 조건에 의해 순차적으로 움직이고 흘려가며 세상을 조용히 받아들여 자신을 융화시키는 가치중립적 자세로 개별성을 하나의 집단성으로 만들어 간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강은 우리 안에 있고, 바다는 우리의 둘레를 싼다."라고 말했다. 이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강물의 수로는 인생의 거친 여파인 흔적의 여정이며 바다에 이르게 되면 여정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어 하나로 모여지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자신은 소멸하게 되고 아무것도 남겨있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강과 바다는 우주의 원초적인 리듬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며 원초적인 리듬은 인간의 리듬감을 역설하는 것이다. 물성의 시작이 인간의 시작을 의미하며 중립성의 특유성 때문에 연결되어지는 각각의 작은 세상과 그 세상을 포괄하는 광범위적인 세계로 구분시켜 볼 수 있다. 강과 바다는 물성이 만들어내는 각기 다른 세상이지만 양쪽의 공간을 구분 지어 인간의 제한적인 작은 우주세계와 자연의 광범위적 우주세계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물의 흐름은 자신내부의 우주를 자연 품속인 우주로 이어주고 있는 수로로 여겨지게 된다. 황정미는 "물성의 가치중립"을 화두로 삼고 자신내부에 깊숙이 숨겨둔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대상으로 조형세계에 유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흐르는 선적인 리듬의 물결"은 외형적으로 규칙성이 없어 보이지만 무형규칙성을 새로운 규칙으로 삼아 혼돈의 양상을 타파하고 있다. 우유빛깔의 선적인 움직임과 색채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화면 전반에 신비스러운 기운으로 삶의 어두운 면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물 속에 가두어 밖과 안, 어둠과 밝음, 순수함과 더러움의 간격을 물의 흡입성에 결부시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물결이지만 그 존재조차도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상계 산물의 일부분인 것이다. 선의 동적인 물결은 인력이 가해진 힘과 바람 그리고 빛의 산란 등의 요인들로 인해 항상 동일해 보이지만 매번 같지 않는 변화무쌍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면모들을 조건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맞추어 버리는 것 같은 일시적인 효과를 보여주지만 어느 정점에 이르러서는 물결의 내부에서 뭉개지며 사라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된다. 물의 융화력이 자신의 외적 삶과 내적인 세계로 분리시키는 유연하면서 강한 성질을 지닌 시공간의 경계 막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순수한 성질의 막을 통해 원초적인 힘을 빌려 자신을 융화시키고 있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힘을 화음의 리듬감이 조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시점으로 보고 인물과 물이 하나의 물결로 완성되고 있다. 또한 「투명하면서도 유연한 리듬감을 내재한 선적인 물결들의 무형규칙성」은 중요한 화면의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한 관점의 초점으로 맞추어진다.
그녀의 작품은 파스텔 톤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함의 부드러운 자연스러움과 우유빛깔의 밝고 맑은 색채감은 물성의 동질감을 내기 위함이며, 이러한 조건은 인간과 물의 조우가 원초적인 굴레 안에서 시작과 끝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아의 순수한 생명체가 아닌 세속적인 삶에 찌든 인간의 모습은 현대인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순차적으로 정화시키고자 하는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조용히 내미는 대안의 하나이다. 하나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흐르는 색채의 흐름은 생명의 생동감으로 전환되고 있다. 물의 맑은 움직임은 이제 인간의 몸과 하나가 되는 도입단계의 융화상태를 포착해내며 물과 몸의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세우고 고유의 리듬감이 가미된 물결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이는 세속적인 생각보다는 순수한 물에 의존하여 내적 세계로 이동하는 자유 분방하는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물결의 느림과 빠른 속도의 한계까지 뛰어넘는 불안정한 상태는 시간의 흐름을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물은 이제 세상의 모든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오직 정지된 흐름 속에서 중간 간극의 평온을 찾고자 할 뿐이다.
"따뜻한 빛의 결기潔己"는 빛에 반사된 물결을 통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있다. 거친 물결을 피하고 파장이 적은 선을 사용하여 친숙한 형상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며, 더불어 물결의 가장자리에는 빛의 산란은 따사로움까지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또한 빛의 반사에 의해 생성된 물결의 선적인 움직임은 보다 순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빛을 이용한 작업은 2002년 전작 '투명인간' 시리즈를 보면 빛이 굴절도에 의해 보이지 않는 인체의 시각적인 환영을 그려내고 있으며, 설치작업에서도 '생사'의 작품을 살펴보면 인체형상의 파라핀에 불을 일으켜 자신이 빛과 함께 소멸하는 장면이나 '물들이기'의 작업에서 보면 스펨트럼을 연상시키는 긴 천에 색을 물들이고 그 뒤로 빛을 비추어 색과 빛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는 따뜻한 빛을 등장시켜 자신을 부정하여 공간과 하나가 되는 의미에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전작에서 제시하고 있는 빛의 순수성을 이제는 물결과 함께 새롭게 이야기구조가 짜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빛에 의해 그려지는 몽환적인 요소는 현실과 단절된 관계를 보여주는 여지를 남겨두기 시작한다. 몸을 물의 내부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두꺼운 얼음 밑으로 인간이 부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물결의 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한 같은 동유체가 되는 찬란한 순간으로 승화되고 있다. 물결선의 아름다움은 자신에게 정화의 채찍질로 삼아 보다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으며, 마치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단면적인 색채는 자신의 근원지에 도달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 속에 비추어지는 잔상은 진실에 대한 왜곡에 대한 물음이 시작되고 있으며 이러한 유연한 왜곡은 새롭게 생성되는 진실을 가중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로 보인다. 서로 다른 양면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분리되어 있지만 이를 이어주는 것 또한 물결의 이중적인 성격으로 가치 중립적 흐름(시공간)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간결함 속에 녹아 있는 여운"은 매우 강한 에세이적인 성격을 가진다. 물 속에서 유유히 떠나고 있는 몸의 일부분은 마치 자신이 미지의 힘에 밀려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어떠한 물음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물결에 흐려 보내고 있는 것은 개인의 실체적인 존재의 의미를 부정하고 간결한 물결과 하나가 되길 원하는 에세이를 써내러 가고 있는 것이다. 화면구조에서의 하나 같이 모든 형상을 그대로 표출해내지 않고 손, 발, 머리, 몸통 등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부분적인 해체로 인해 보다 강렬한 이야기로 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하나하나 들쳐보면 먼저 얼굴은 수면을 취하고 있는 듯 눈을 감고 있는데 이는 가장 편안한 곳에 자신이 부유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력을 갖게 해주기 위한 의도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몸통의 클로즈업은 옷깃부분에 물의 선적인 움직임과 함께 운동감 있게 그려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물결의 기운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손과 발은 사실적인 표현을 자재하고 물과 더불어 내재하고 있는 유연적인 생명력을 가미시킨다. 이러한 작은 부분을 크게 확대시키는 작업은 자신이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부분의 기억까지 인식하고 절제하는 여운의 미를 살리는 감성적인 에세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릇 모든 이미지를 분산시키고 인식의 지각력을 파괴하여 중심을 없애는 물결의 잔상은 원초적인 심상의 공간 틀 세계로 인도하고 있으며, 자신을 버리고 타자를 받아들여 채우는 미덕을 잊지 않고 항상 순수한 불멸의 결정체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물성의 가치중립적 자세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만물의 중립으로 보고 스스로 융화될 수 있는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절체절명의 운명적인 대상이 되어버린 물의 유연한 특수성은 그녀만의 조형세계에서 새로운 조건의 단서가 되고 있는 것이며 더불어 앞으로 다양한 유연성을 지닌 물상의 색상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 조동석
Vol.20070318b | 황정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