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중심을 꿈꾸다

이승수 조각   2007_0314 ▶ 2007_0320

이승수_자연과인간의공존_동, 스테인리스 스틸_200×250×120cm_2005

초대일시_2007_0314_수요일_05:00pm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Tel. 724_6316

비어있는 중심을 꿈꾸다 ● 이승수의 작업은 영혼의 심층을 들어 올리되 고귀함이나 내면성에 갇혀있지 않고 구체적인 물리적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의식의 세계는 만질 수 있고, 마모되고, 채워있고, 비어있으며, 변형되고, 울퉁불퉁한 표면을 지닌 사물들의 세계에 개입하고, 사물의 세계를 추동하고 사물의 세계로 대체된다. 그러나 이 해녀와 아버지, 아이, 물고기, 돌, 물로 '드러난 세계'는 그 자체로 고정되지 않고, 다시금 해녀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아이의 마음, 물고기의 마음, 돌의 마음, 물의 마음 같은 '숨은 세계'라는 다른 차원을 느끼게 한다. 얼핏 보기에 매우 정적(靜的)인 듯한 그의 작품에서는 해녀나 아버지, 아이나 물고기, 돌이라는 하나하나의 개체들이 모든 생명에 활동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로서의 포괄적인 영성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끊임없는 소통을 이루어내고 있어서 숨은 세계의 동적(動的) 흐름을 감지하게 된다.

이승수_섬_동, 현무암, 스테인리스 스틸_45×30×52cm_2007
이승수_숨비소리_동, 현무암_38×24×30cm_2006

사물들의 세계는 동(銅)을 주재료로 이루어진다. 흙으로 만들어진 형태를 석고로 떠내고 그 석고틀에다 동선을 녹인 동 물을 부어 얼굴과 손, 형태의 일부를 만들거나, 동판을 두들기는 단조기법을 통해 아버지의 옷, 해녀들의 몸, 물고기의 몸을 만든다. 동판작업 뿐만 아니라 동선을 잇대는 동봉작업으로 만들어진 그물망이 허공을 둘러 형태의 외피를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전시 보다 동봉작업의 비율이 높아져 생략과 은유가 깊어졌다. 동봉으로 이루어진 그물을 통해 의미전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되기도 한다. 겉과 속을 은유적으로 갈라주는 동선(銅線)으로 이루어지는 부분과 불투명한 덩어리로 자리잡은 부분은 동(銅)의 재료적 특성에 기대어 사물들의 세계를 지각하게 해준다. ● 여러 겹 동판으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양복에서는 오랫동안 짊어진 생활의 무게가 겹겹이 틈새없이 전해지고, 동 뼈대로 이루어진 남자 상반신에서는 가슴으로 칼바람이 부는데 그 허전함을 다스리느라 안간 힘을 쓰는 아버지의 엇갈림이 동판으로 만든 넥타이의 날카로운 불투명함과 뼈대 안에서 허허롭게 노는 부드러운 동 물고기의 대비로 드러난다. 이처럼 재료를 다루는 기술적 측면이 작가를 외부 세계로 확장시키는데 막힘이 없다. 이 외부세계는 비단 아이나 아버지처럼 사람에 그치지 않고, 종(種)이 다른 물고기, 해초에 이르고 심지어 돌이나 바람, 바닷물에 이른다. 작가가 소통하는 세계는 행복한 일원론의 세계이다. 작가는 모든 대치되는 덕목들의 적대적 관계가 사라지는 세계, 서로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조화됨을 꿈꾼다. 이 소망을 위해 작가는 기술을 통해 생각의 대상들을 실존의 대상으로 육화한다.

이승수_숨비소리_동, 현무암_47×17×40cm_2006
이승수_Who are you?_동_100×50×170cm_2007

이승수의 작업은 외재화 형식을 생산하는 기술적인 측면 못지않게, 의미를 내재화하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독특함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얼핏 보기에 아무런 초월성도 없고, 현실 재현적인 듯하다. 현대 미술이 복잡성-중첩, 덧대기, 비틀기, 건너뛰기, 잘라내기를 통한-의 형식으로 의미 파괴에 매달리는 것과 달리 그의 작업은 고전적이고 투명하다. 그러나 그 투명성은 의도된 것으로서 그렇게 단순한 전략은 아니다. 작가의 관심은 형태를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전통적이고 보존되어 있는 안전한 형태 안에 그 형태의 특질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 물질이 통과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해녀의 형태 안에 물고기와 바닷물이 통과하고, 아이의 형태 안에 숱한 변화의 가능성과 미지의 두려움이 통과한다. 이렇게 이승수의 작업은 단순성 밑에 복잡한 의미의 미궁을 숨기고 있고, 작품의 투명성은 깊이를 감추고 있다. 의미를 숨긴 단순성과 깊이를 숨긴 투명성이 일반적인 구상 조각과 차이를 보여준다. ● 일반적으로 구상(具像) 작가들이 현실과 생활을 표현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가능한 한 여러 현실표현을 고집함으로써 비판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고서도 사회적 연관성을 획득하는 방식이고, 둘째는 미술과 생활의 연관성을 단절시킴으로써 환상적 접근을 시도하는 방식, 그리고 셋째는 묘사나 표현의 정확도에 구애되지 않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세 가지 구상적 방식 모두 실재에 대한 상징이나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해치지 않고서도 감상적인 차원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미망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대한 고려, 즉 전제에 대한 질문이 배제됨으로써 안전하게 보장된 소통은 단지 표면적인 의미에 머무르게 되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구상적 작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표면적인 의미가 두 번째의 의미를 숨기고 있고, 다시 세 번째의 의미를 숨기고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승수의 구상적 작업은 일반적인 구상 작업과 달리 하나의 해녀가, 하나의 아버지가, 하나의 물고기가 지니고 있는 표면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계속 연쇄적으로 미끌어지면서 감추어진 의미를 드러내는 탁월함을 지니고 있다.

이승수_봄을 기다리는 지원이_동, 스테인리스 스틸_60×30×140cm_2007
이승수_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다._동, 스테인리스 스틸_250×200cm_2007

이승수는 전통적인 형태가 지닌 표면적인 의미를 지속적으로 상징화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가이다. 아울러 실재에 대한 부정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반복에 의해 실재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다. 예술성과 대중성, 양자를 확보하고 있는 드물게 행복한 작가인 셈이다. 그의 작업이 사회에서 타자로 밀려난 여성인 해녀, 외적(外的) 자연인 바다, 그리고 인간 자신 내부에서 배척되어 온 자연으로서의 몸을 대신해서 그들의 고뇌와 사랑, 그리고 세계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목소리, 중심을 비우는 꿈은 아닐까? ■ 임정희

Vol.20070316b | 이승수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