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D-MULTIPLICATION

최현정 개인展   2007_0302 ▶ 2007_0312

최현정_Multiplication_캔버스에 에폭시_130.3×130.3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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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02_금요일_06:00pm

스페이스 함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37-2번지 렉서스빌딩 3층 Tel. 02_3475_9126 www.lexusprime.com

한없이 투명한 이미지의 공허함. 그 속의 진실을 찾아서 ● 학부시절, 최현정은 자신의 지난 작업들을 촬영하여 투명한 필름지에 출력한 후 FRP에 넣어 굳혀 보았다. 작품이미지들은 동그랗고 납작한 작은 플라스틱 접시 형태의 '타임캡슐' 안에 밀봉되어 작업실 한쪽 구석에 쌓여가고 있었다. 이 조각들이 어느 날부턴가 캔버스 위로 자리를 옮기면서, 작가는 새로운 작업방향의 실마리를 잡는다. 투명한 FRP속의 작품이미지는 세포이미지로 변하였고, FRP에 몸을 담그고 원형오브제 형태로 질서정연하게 캔버스에 줄지어 붙어 있던 이미지들은, 다양한 재료실험 끝에 에폭시 속으로 옮겨 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작업들은 바로 에폭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물들이다.

최현정_Multiplication_캔버스에 에폭시_130.3×130.3cm_2006
최현정_Multiplication_캔버스에 에폭시_162.1×112.1cm_2007

작가가 뛰어난 가공성과 강력한 접착성을 자랑하는 에폭시를 이용하면서부터, 개개의 원형 틀에 갇혀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이미지들은 넓게 열린 캔버스 화면에 방사되었다. 작가는 붉은색, 보라색, 연두색, 푸른색 세포이미지들을 나비, 잠자리를 대신하여 표본상자 속에 박제라도 하는 양, 캔버스 위에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였다. 규칙과 질서, 반복에 대한 작가 자신의 강박적인 집착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미지를 배치하는 방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이전 FRP 작업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부분은 화면에 깊이감이 생겼다는 점이다. 즉, X와 Y축으로만 이루어져있던 화면에 Z축이 생기면서, 기본적으로 2차원 평면의 정면성을 가지고 있으되 동시에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어찌 보면 홀로그램과도 비슷하다. 에폭시 층이 올라갈수록 그 층에 담기는 이미지의 크기는 작아져 전체 이미지는 마치 타원형 섬이나 산의 등고선지도 같은 모습이 된다. 캔버스를 바닥에 놓은 채 수평적으로 내려다보며 작업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이후 벽면에 수직적으로 디스플레이하였을지라도 지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그것이 화면의 깊이감을 배가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최현정_Multiplication_캔버스에 에폭시_112.1×162.1cm_2007
최현정_Multiplication_캔버스에 에폭시_112.1×162.1cm_2007

에폭시 속에 반복적으로 파묻혀 들어가는 이미지는 세포에서 차용한 것이다. 얼핏 예쁜 색 덩어리처럼 보이는 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세포이미지의 데이터를 모아 복제, 변이, 재구성, 증식시켜 실재하지 않는 세포덩어리로 형상화한다. 가상의 세포이미지 속에 인류역사를 기록, 저장하고 있는 DNA가 있을 리 없고,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세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속성 역시 전혀 없다. 다만 공허한 이미지로 분열하며 증식해나가는 '형식'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실재가 아님을 강변한다. 천년만년 썩지 않을 뿐 아니라 강력한 접착력을 자랑하는 에폭시 안에 세포 실재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담았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이미지의 역할이 중요해지다 못해 과도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 세상에 영원히 남겨질 것은 실재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실재를 에폭시에 영원히, 소중하게 보관한다는 명분으로 '박제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무한 소비해도 좋은 허상을 '보관'하는 것이다. 21세기형 화석이 아닐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정말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최현정_Multiplication_설치_캔버스에 에폭시_2007
최현정_Multiplication_설치_캔버스에 에폭시_2007

유기체적 생명체의 상징인 세포를 문명의 상징물인 에폭시에 가두었으나, 진실은 '생명의 그림자'를 '문명의 허상'속에 넣은 셈이니 정성을 다해 이 작업을 하는 작가의 숨결만이 층층이 쌓인 에폭시 사이에 스며들었을 것이고, 역으로 에폭시의 독가스가 공기 속에 녹아들어 작가의 호흡기를 타고 들어가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을지 모른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작들과 기다림의 시간을 집어 삼키며, 지저분하고, 거칠고, 집요하고, 무섭기까지 한 작업과정 속에서 어쩌면 영원히 썩지 않아 골칫덩어리인 '공해'유발물질이자 '쓰레기'일 수 있는 수지덩어리는 반짝이고 화려한 색채의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 이외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것은 바로 작업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담긴 작가의 순수한 노동과 시간이다. 고통스러운 노동의 시간과도 같은 그 작업과정은 이미지에 가려져 쉽게 만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길이다. 그 길에서 나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물과 공간,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그 만남들을 통해 나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 결국 영원히 썩지 않을 상자 안에 작가가 담고자 한 것은 작가 자신을 비롯하여, 이미지로만 떠돌고 있는 관계들의 실재를 찾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그 방법 역시 가상의 '세포이미지' 이면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을 터 그 상자에 담겨 저장되고 전해져 역사가 되고 화석이 되지 않을까. ■ 김지연

Vol.20070309c | 최현정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