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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307_수요일_06:00pm
갤러리 온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02_733_8295 www.galleryon.co.kr
열린 공간에 대한 착각 닫힌 공간에 대한 폭로 ● 우리는 낯선 공간에 들어설 때 두려움을 느낀다. 교회에 들어설 때와 클럽에 들어설 때의 행동이 다르듯이 공간마다 그에 맞는 예의와 규범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미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의 방에 들어설 때 노크를 하는 행위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들어간다는 표시이기도 하지만 들어가는 자신에게도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전환할 기회를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간은 그 안의 규칙에 따라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고 조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의 정체성까지 규정짓기도 한다. 요즘은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를 사귀고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니 공간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에게 공간에 대한 정신적인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공간에 대한 공포는 정신병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데 광장공포증(agoraphobia)은 낯선 거리나 백화점,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혼자 나가게 되면 식은 땀을 흘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심하면 급성불안발작을 일으키는 신경강박증이다. 여기서 말하는 광장(廣場)은 꼭 아주 넓은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터널 안이나 정류장 사이의 거리가 먼 노선을 운행하는 전차 속 등 좁고 폐쇄된 장소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런 폐쇄된 장소에 대한 공포증, 폐소공포증(혹은 폐쇄공포증)도 광장공포증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공포는 근대 이후 생활에서의 정신적인 문제와도 연결시킬 수 있지만 공간이 점점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공간은 점점 닫혀가고 있지만 그래도 모든 이들이 정신병에 시달리지 않는 이유는 닫힌 공간이 열려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로 공간이 닫혀있다는 것을 의식 못하고 그 안의 세계가 전부 일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닫혀 있는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착각하는 좋은 예는 백화점이나 놀이동산, 그리고 사이버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 안에 들어서면 바깥 세상과 유리되어, 나름의 시간과 질서가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된다. 보드리아르는 이를 시뮬라크라의 세계라고 하였다. 그곳은 어느 것이 실제이고 어느 것이 모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세상,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의 공간이다. 김천수와 김태동은 이러한 가상의 공간, 닫힌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신진 사진가들이 닫힌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사진작업 방식의 차이만큼이나 상이하다.
김천수의「Motel Tour」는 다음 카페 모텔투어(http://cafe.daum.net/moteltour)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이다. 이 카페는 전국의 모텔을 소개하는 카페로 모텔 내외부의 인테리어, 가격, 위치, 할인 내역 등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카페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회원가입을 하면 연계 모텔의 대실료가 할인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회원들이 게시판에 모텔 투숙 후기를 올리는데 여느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후기와 마찬가지로 사진까지 첨부하며 특정 모텔의 장단점을 세세하게 언급하며 자신의 경험담과 뒤섞어서 올리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특성인 익명성으로 얼굴을 드러내거나 실명을 밝히지는 않지만 사적이고 은밀한 성애의 공간을 간편한 오락으로 전환시키며 가볍고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김천수는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특정한 공간에서의 특수한 규범을 감각적인 색채와 파편적인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작가가 사진으로 둔갑시킨 이미지들은 실상은 이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들을 다운받은 것으로 정통의 사진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은 것들이다. 그는 이를 크롭핑하고 확대하고 색조에 변화를 주는 등 작가 나름의 시선으로 조작하여 개인의 사적인 경험들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며 교묘하게 엮어내고 있다.
초점이 흐려 뭉개져 버린 이미지에는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꿈인 성에 대한 환상과 욕망의 공간을 바로 보지 못하는 관음증적인 시선이 삽입되어 있다. 남의 것을 몰래 들여다보는 떳떳치 못한 시선은 조각난 이미지들의 흐린 초점으로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는다. 관음증의 은밀한 시선은 욕망의 시선이다. 전체 이미지에서 부분만을 떼어낸 조각난 이미지들은 욕망의 시선을 상상의 세계로 들어서게 한다. 왜냐하면 욕망은 현실에서는 언제나 미끄러지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로 도망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편적으로 떨어져나간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김천수의 사진은 바깥세계의 규범에서 해방된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규범으로 감각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듯 보이는 공간은 인터넷 안의 사이트에서만 존재하는 닫혀있는 공간이고 디지털이미지로 재탄생되어 실재하고 있는 사진은 원본 없는 모사일 뿐이다. 특수한 공간 안에서만 행해지는 특수한 규범은 그 안에서 느끼는 자유가 착각이고 우리가 가상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김천수가 비가시성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면 김태동은 가시적인 대상을 비가시적으로 바꾸려 하였다. 김태동의 작업은 공간에 대한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좁고 닫혀있는 공간에 대한 그의 반응은 신경증적일 정도이다. 공간에 대한 공포증은 자신이 어떤 공간 안에 있을 때 생기는 현상인데 그의 경우에는 자신이 바라보기만 하는 상황에서도 답답함을 느낀다. 또한 그가 바라보는 공간 안의 대상은 생물일 경우도 있지만 구슬자판기와 같이 생물체가 아닌 사물일 경우에까지도 해당된다. 그러니 거대한 수족관은 그에게 있어서는 견딜 수 없는 강박관념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하여 김태동은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을 풀어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카메라가 무기인 사진가는 사진기법으로 물고기들을 해방시켜 주는 방법을 택했다. 15분 이상의 장노출로 움직이는 생물들을 수족관 안에서 사라지게 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바다거북조차도 1시간이상 기다리는 그의 집요함에 스스로 사라져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사진에는 대상이 사라진 빈 공간만이 남게 된다.
사진은 대상의 부재를 알리는 증거물이다. 사진은 대상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동시에 그것의 부재를 알리는 흔적으로 남는다. 공간은 그 안에 실재하는 대상과의 역학적인 관계로 규정되어지는데 김태동은 공간 안의 대상을 흔적만 남기고 부재의 상태로 만들면서 공간과 대상과의 견고한 관계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수족간의 대형 물탱크, 그 주위에 꾸며진 어색한 인공자연물들과 어두운 복도와의 대비는 닫혀있는 공간으로서의 수족간과 세상과의 격리감을 보여준다. 물고기가 사라진 수족관은 커다란 물탱크와 거추장스러운 장식들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남겨져 있다. 김태동의 공간에 대한 신경증적인 강박증은 그 공간 안에 특수한 규범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태동이 대상을 공간 안의 규범에서 해방시키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만다. 사라져버린 물고기들은 단지 보이지만 않을 뿐 결국 그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공간에는 그 안에 강제되는 규범이 있다. 절에 가면 불공을 드리고 교회에 가면 기도를 드리듯이 공간에서의 규범은 우리의 행동을 강제하고 사고를 조정한다. 두 사진작가의 사진에도 공간의 규범은 작동되고 있다. 이는 공간이 갖고 있는 권력이고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다양한 공간과 접촉하고 있고 그에 따른 다양한 규범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문제는 공간의 특수한 규범이 그 공간과 현실이 구분 되지 않게 하고 그 안의 규범이 그 공간 안에서만 통용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점이다. 김천수와 김태동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비가시성의 세계와 가시성의 세계를 교차시키면서 공간 안에 작동되는 규범의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사진작업에서 보여지는 닫혀있는 공간에서의 자유로움에 대한 착각, 공간에서 해방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은 공간의 규범을 거슬릴 수 없는 우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가장 큰 공간, 현실의 세상에서도 같은 착각과 같은 한계에 부딪치며 살고 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모사인지 구별할 수 없고 사회와 제도,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은 가상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로 이어진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날 때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 한금현
Vol.20070307c | 김천수_김태동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