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 밝히는 붓다

김지연 한국화展   2007_0228 ▶ 2007_0306

김지연_色 밝히는 붓다_장지에 채색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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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228_수요일_05: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끝없는 번뇌의 오라(aura) 속에서 ● 빛이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간혹 그 빛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 빛은 깨달음을 얻은 이들에게서 번져나오는 온화한 황금색 원형의 후광으로 그려지거나 무지개빛의 바퀴인 챠크라로 표현되어졌다. 사람들 하나하나를 항상 감싸고 있는 그 빛들은 살아있는 동물과 식물들에서도 발산된다고 한다. 다만 문명의 빛에 익숙해져버린 인간들은 스스로 그 생명의 빛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 모든 생명체들이 발하는 이 신비로운 빛을 고대로부터 '오라(aura)'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기'라는 발산하는 에너지의 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오라는 생명정보 전달물질인 '생광자(biophoton)'라는 단어로 옷을 갈아입고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 오라를 기계로 측정하면 생명체마다 모두 다른 빛깔과 세기를 드러낸다. 화를 내는 사람의 오라는 머리 주변에서 붉게 물들고 이완된 심신상태에서는 녹색 빛깔을 띤다. 우리가 그림 속에서 익히 보아온 성자들의 황금색 후광은 그들의 진솔한 감정상태를 의미한다.

김지연_色 밝히는 붓다_장지에 채색_2007

작가 김지연이 그린 '붓다(Budda)'들을 보면서 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오라를 떠올렸다. 작가는 본디 오라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백팔번뇌하는 붓다의 마음이 후광을 비롯한 색조의 변화로 암시되어 결과적으로 희노애락에 따라 변하는 오라의 현상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그려낸 그림의 색조는 오라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낸 색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림 속의 붓다들은 다름 아닌 기쁨과 슬픔 속에 울고 웃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존재이기 때문에 화면의 색조 역시 다분히 주관적인 감성의 흐름에서 생성되었다. 작가는 스스로 수많은 갈등, 오만함, 기쁨, 그리움, 체념과 같은 감정들에 짓눌려 있는데 이러한 번뇌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108 붓다를 그리면서 감정을 조절하고 정화해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붓다라는 종교적인 아이콘을 이용하지만 결국 그 붓다는 바로 끝없이 번뇌하는 자기의 모습이며 천변만화하는 색채들과 같은 그 번뇌 조차도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작가는 인식한다. 그래서 붓다를 감싸고 있는 색채들은 '모든 세상으로서 색(色)'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김지연_色 밝히는 붓다_장지에 채색_2007

참선할 때 짓는 선정인의 자세를 한 108 붓다 그림들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반복적인 형태의 정면성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불교의 만다라와 같은 종교적 도상의 구성방식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때문에 작업 전체가 일견 매우 단조롭고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단순한 형태의 반복과 다채로운 색의 변화가 어우러지며 일으키는 긴장감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풍경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요소라고 본다. 그리고 좀 더 차분히 보면 반복적인 붓다의 형태들 속에서도 크고 작은 변주들이 진행되고 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붓다들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지만 곳곳에 뒤돌아 앉은 붓다들도 눈에 띈다. 이 뒤돌아 앉은 붓다들의 모습은 정면의 붓다보다 훨씬 흥미로운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의 실루엣들은 어쩌면 붓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은 익명의 현자들이거나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며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배적인 종교적 도상성으로 인해 자칫 경직되어 보일 수 있는 108 붓다의 이미지는 다행히 느슨한 활력을 얻고 있다. ● 그리고 한가지 눈여겨 볼 점은 반복적인 붓다의 형태 주변을 떠도는 글자들이다. 그 글자들은 대체로 불교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인데 그 중에서도 맥도날드의 노란색 로고 M들이 있는 그림은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로고M 아래에는 예상과 달리 맥도날드가 아닌 마가다야(Mrgadaya)라고 쓰여 있다. 마가다야는 부처가 설법한 곳이다. 대중적인 소비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맥도날드의 로고와 부처가 설법한 장소의 이름이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인스턴트 상품처럼 너무나 쉽게 소비되는 세태를 은근히 꼬집는 것일 수도 있고 불자인 작가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문화적 충돌과 고민을 드러내는 방식일 수도 있다. 물론 작가 김지연이 선택한 맥도날드 로고는 이미 다른 작가들에 의해 많이 다루어진 터라 신선함이 조금 부족하지만 작가 김지연의 작업 과정에서 보자면 이러한 대중적인 이미지의 활용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 할 만하다. 왜냐하면 불교회화를 공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보다 현대적이고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대중적인 불화를 그리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계속 시도될 작업의 단초들이 보인다는 점에서 이 첫번째 개인전에 잠재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지연_色 밝히는 붓다_장지에 채색_2007

108 붓다의 변주를 눈여겨 보다가 한걸음 물러서면 연꽃 그림들이 마치 백팔번뇌의 진흙탕에서 피어난 듯 주변에 펼쳐져 있다. 붓다의 또 다른 현현으로서 연꽃은 염화미소(拈華微笑)라는 유명한 일화에 등장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이미지들 중의 하나이지만 전시장 안에서는 다채로운 108붓다의 변화를 더 강하게 대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 그림들을 보면서 백팔번뇌라는 무명(無明) 속에서도 '불성(佛性)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짐작하게 된다. 실제로 작가 김지연은 몇 년전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한동안 절에 머물렀고 그 후 대학원에서는 불교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리고 그는 일주일에 한 번쯤 절에 가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바위에 앉기도 하고 큰 나무를 한참이나 껴안고 있다가 온다고 한다. 경박한 작가들이 많은 세태에 비해 작가 김지연의 행적과 일상이 보여주는 진지함은 한 사람의 어엿한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진실하게 공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 이제 첫 개인전을 여는 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득하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 얼마를 더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방황도 많이 하겠지만 백팔번뇌 속에서 자라나는 화두들을 치열하게 풀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 백종옥

Vol.20070302d | 김지연 한국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