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아트포럼 뉴게이트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109_화요일_06:00pm
아트포럼 뉴게이트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38번지 내자빌딩 1층 Tel. 02_737_9011 www.forumnewgate.co.kr
「Disappearing Babylonia 시리즈」에 부쳐 ● 김성엽은 최근까지「Bird's eye」라는 주제를 통해서, 고공에서 촬영한 사진의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각색하기도 하고 다양한 색 점들로 묘사하기도 하여, 보다 특징적인 화면을 구축해왔다. 이러한 창의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작가는 매우 절제된 미학을 선보여 왔으며, 하나하나의 그림에서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화면들을 창출해왔다. ●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도시문화가 창궐하고 있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그다지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작가의 예술가적인 양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황금만능주의 혹은 물질지향적인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보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이 자신의 예술관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인 소명은 이전의 회화방식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강렬한 사회성을 띄고 등장하게 되는데, 금번에 이어지는「Disappearing Babylonia」시리즈에서 보다 색다른 조형의 원리가 배태된 신작으로 거듭 태어나며, 사라지는 건축물 혹은 과거와 현대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이미지들로 연출되어 드러나고 있다. ● 예로부터, 바빌로니아는 바빌론(Babylon)이라는 말과 혼용되게 사용되어왔으며,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타락한 세속적인 도시를 의미한다. 그것은 신을 따르던 인간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고 난 뒤에는 이상하리만치 급격히 타락하여 신을 부인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멸망하였으며, 엄청난 부귀와 영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려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바빌로니아였다. ● 그리고 그것은 요즈음의 타락한 도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어휘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작가는 휘엉청 밝은 대도시 창문의 현란함과 꺼질 줄 모르는 네온사인의 모습을 점으로 묘사하면서, 참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망각해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신의 자취는 사라져가고, 영적인 가치관은 점차적으로 퇴색되어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묘사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화면구성의 원리 ● 작가는 금번의 작품들을 통해서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거대도시의 이미지를 표출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각색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레 치솟으며 흔적처럼 사그라지는 현대의 바빌로니아의 이미지였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 「Disappearing Babylonia-Time Square, 2006」에서 처럼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같은 복잡하고 화려한 도시를 묘사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기호학적인 대구법을 사용하여 현란한 조명이 드러나는 간판과 암울한 도시의 건물의 거무튀튀한 실루엣의 대조가 두드러지게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 이러한 작품들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겠으나, 작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잡지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하여 여러 유형의 정보를 추적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중에서 선택된 몇 가지의 내용들을 토대로 하여, 보다 새로운 이미지들을 들추어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작품들에 반영되어 드러나는데, 무엇보다도 현대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는 건물들의 다양한 정보를 소화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들에는 여러 가지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일상적인 기하학적인 조형원리들이 사용되기는 하나,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이루어진 묘사의 다양성이 보다 함축적인 풍경화가 되어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엄격한 건축물들이 모티브가 되어 있고 그것을 이룩하는 수많은 점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함수관계를 이룩하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눈에 들어오면서 색다른 조형이 되어 비현실적인 풍경이 되어 있다. ● 김성엽의 회화는 보다 심오한 계산에 의해서 이루어진 회화인데, 특정한 풍경의 일부 혹은 전체의 이미지들을 취합하고 선택하여 그 속에 담긴 다양한 내용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거대한 화면을 구성하는 작가의 감각이 화면을 수직 혹은 수평의 정교한 구도로 확장해 나아가며, 그것이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지도록 보다 사색적으로 연장되어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실재의 환경을 치열하게 드로잉 하여 각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의 산물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추상적인 구조체가 되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상황에서 드러난 모습처럼 보다 독특하게 우리들의 시선을 자극하여, 화면의 구석구석을 치열하게 응시하게 한다.. ● 요철이 강화되고 묘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그것은 마치 감성의 덩어리처럼 정교하게 스케치된 이미지들의 모습을 정확하고 드라이한 점묘의 나열과 만나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미리 계획한 결과에 접근하기 까지 엄밀한 관찰과 작가의 탁월한 감각의 지평을 넘어서, 자신의 내부 속에 간직되어 있는 이상적인 세계관에 준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회화세계이기도 하다.
마티에르 ● 콘크리트의 덩어리와 비견될 만한 강렬한 매스의 현실감을 갖추기 특수한 용해방식을 도입하여 스티로폼을 사용하기도 하고 여기에 철사와 같은 가느다란 조직체를 그 사이사이에 도입하여 마천루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골조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다시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하나의 점에서 출발하다가 그것이 점차적으로 구체화 되어 하나의 오브제 혹은 사물의 구체적인 3차원성을 띄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은 화면에 등장하는 미묘한 일루전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성을 갖게 되어 시각적인 혼란이 일어나게 한다. 그것은 작가의 회화가 2차원에서 3차원에 이르는 일루전과 실재의 사이에 있는 마티에르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비로소 완성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이처럼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시간의 존재와 그 망각의 사이에 자신의 회화가 놓여 있음을 강조하고, 나아가 실재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재질감을 일루전과 함께 놓이게 한다. 작가의 계획에 의해서 단순한 평면에서 강렬한 돌출부를 도입하고 그것과 일루전이 형성되는 점의 집적이 건축적이며 요철이 강렬한 마티에르에 도달하면서부터 회화는 완전히 3차원에 다다르는 현실감에 압도되게 한다.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더 나은 표현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그림자가 형성되는 다양한 조명효과를 연출함으로써 회화의 미묘한 변화와 섬세함을 표출해 내고 있다. ● 색상 ● 그것은 작품 속에서 여러 유형으로 등장하는데, 아파트와 같은 초고층 빌딩, 즉 마천루의 이미지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여러 색상가운데에서도 빛을 드러내는 금색, 오커, 마젠타, 그리니시 그레이 등으로 소화해 내고 있다. 작품의 배경도 여기에 어울리는 엄버 계열이나 검회색 혹은 흑색 등이 채택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붓을 찍듯이 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화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stain color를 도입하여 그것이 캔버스 위에 떨어지거나 흘리는 느낌도 강조하고 있다. ● 찬란한 빛과 점의 공간 ● 마침내 사그라져가는 바빌로니아는 마지막 빛을 발하는데, 그 속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광채 속에서 드러나는 물질의 제국이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찬란한 삶을 비치고 있는 수많은 건물들의 빛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상적으로 발현하는 추상이 되어 빛과 함께 어우러진 초고층의 건물이 되고 있으며, 배경과 더불어 특수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특수하게 찍어 올린 점의 나열 속에서 특수한 분위기와 공간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점의 나열이 아니라 근접하여 바라보면, 중첩과 본능적인 필치가 결합되어 있고, 육중한 매스감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질성과 아우라가 직접적으로 혼합되어 드러나 있다. ● 작가는 점을 인식과 비판의 시각으로 찍고, 그것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일종의 시간성의 간극을 도입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러한 찬란한 도시의 문명이 배경 속으로 사그라져 버린다. 그 이유는 정확한 일루전을 통해서는 현전성을 바라보지만, 점에 의해서 성립된 공간은 사라져서 현실 속에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즉 사라져버렸거나 해체되었거나 혹은 붕괴되어 버린 상황을 드러내기 위해서거나, 허공에서 신기루처럼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표현 하는 방식으로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직접적인 느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느낌과, 시간 속에 저물어 가버린 이미지들이 과거 속의 자취로 등장하기를 희망한다.
지우기 ● 작가는 사실 단순히 건물의 외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근원적으로 설정하고 해체하는 역 앗쌍블라주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캔버스를 원근감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금색, 모래 느낌과 함께 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였던 「Bird's Eye」,「Axiom」의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방식은 얼핏 비쳐졌으나, 보다 강하고 세련되게 해체된 실재의 일루전은 여러 유형의 근원적인 베이스가 설정되면서 오버랩이 이루어진 이미지들로 구성되며, dot와 Style Form의 범벅이 되지만 그것은 명료한 형상성을 지니고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이 흐물흐물하게 보이거나 사라지는 이미지로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사회성 ● 김성엽의 회화는 물질을 사용하되 물질의 세속성을 이탈하고, 물질의 천국을 그리되 그것으로 물질 세계의 허구성을 노출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사그라져 가는 도시의 일면을 표출하면서, 이 시대 문명의 허구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람들은 토지의 효용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초고층 빌딩을 짓기도 하지만, 자신의 기술과 경제력을 뽐내기 위해서 더욱 높은 빌딩을 짓고 있다. 그것은 성서 속의 바벨탑과 같은 것이며, 자만으로 가득한 바빌로니아로 작가의 눈에 비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하여 작가적 양심으로 보다 새로운 창작 의지는 타오르게 된다. ● 실재로 작가는 초고층의 건물을 통해서 건물을 허물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만한 인간의 타락한 마음을 허물어뜨리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현대에 들어와서 편리지향 일변도로 치달리고 있는 초고속의 물질문명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부의 천국이 올바른 가치관 위에 서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 한 작가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의 양식을 이렇게 사회계몽적인 시각에 초점을 맞추어 제작하는 과정은 포스트모던시대 이후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음으로 양으로 우리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술의 힘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될 수 있는 것이며, 보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는 힘을 자아내는 토대가 될 것을 기대한다. ● 작가는 우리시대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과 기술을 신뢰하되 이로 인해서 자만심으로 가득하여 창조의 원리와 신앙을 저버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비판하고자 한다. 작가는 양심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항하고 있는 하나의 횟불처럼 자신의 작품을 유도해 나아가고 있다. ■ 박기웅
Vol.20070109a | 김성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