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 문화공장-당인리 화력발전소를 위한 제안   쌈지스페이스 외부기획展   2006_1222 ▶ 2007_0110

Dang-in-ri Art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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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222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Han Sung-Punderland Ahn Woo-Sung 안우성_Diann Bauer 다이안 바우어 Veronique Chance 베로니크 찬스_Chung Jae-Heon 정재헌 Han Jung-Lim + Seo Seung-Mo + Choi Hwan-Ho 한정림 + 서승모 + 최환호 Han Sungpil 한성필_Suhasini Kejriwal 수하시니 케주리얼_Kim Hyung-Gwan 김형관 Kim Taek-Soo 김택수_Kwon Dae-Hoon권대훈_Lee Chung-Kee 이충기_Mit 밋 Sadie Murdoch 새이디 머독_Nuts Society 너츠 소사이어티_Giacomo Picca 자코모 피카 Francisco Valdes 프란시스코 발데스

TEXTS Choi Hwan-Ho 최환호_Jung Hyun 정현_Hong Bora 홍보라_Lee Hye-Yoon 이혜윤 Lee Young-Bum 이영범_Lui Jehong 류제홍_Johannes Maier 요하네스 마이어 Suhail Malik 수하일 말릭_Park Sam-Chul 박삼철_Toeihgam Srisubut 토이암 스리슈붓

전시기획 홍영인 Hong Young-In(아티스트)과 유석연Yoo Suk-Yeon(건축가)

부대행사 작가와의 대화 I : 2006_1223 Johannes Maier(런던) 14:00 mit 그룹 대표 Sabine Hagmann(쮜리히) 15:00 Round Table 16:00~18:00 - 작가와의 대화 II : 2006_0106 Round Table (국내 작가 및 비평가) 14:00~18:00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British Council_쌈지스페이스_Pro Helvetia_대한항공_아트센터 나비

쌈지스페이스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Tel. 02_3142_1695

전시 당인리 문화공장"은 아티스트 홍영인과 건축가 유석연이 공동 기획하는 국제전시이다. 이 전시는 이들의 공동 작업 Art Ventilation Tower(예술환기(換氣)를 위한 굴뚝) 프로젝트 (2005)에 이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2부 행사로, 이번에는 국내외의 아티스트, 건축가, 이론가들의 작품 및 글들을 포함시키는 복합장르형식의 전시이다. 이 전시는 전시명에서 보여지듯, 개념적으로 당인리 화력발전소 개발을 위한 기획안 을 표방한다. 서울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문화발전소'로 개발키로 했던 방안이 정부에 의해 2005년 초반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번복되는 시점을 약 30여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이에 직, 간접적인 영감을 받아 제작되 작업들, 글들이 쌈지 스페이스 전관에 전시된다. 문화예술과 사회, 권력의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를 다양한 시각과 해석, 질문으로 전개해 보는 이번 전시는, 시기, 장소, 문화 특정적인 이슈가 국제교류를 통한 폭넓은 생산의 장을 열 수 있기를 의도한다.

권대훈_Illusion Face_혼합매체_45×45×15cm_2004
이충기_클리나멘_영상작업의 일부, 포토 몽타주_2006

예술은 기능의 반대에 놓여있다. 예술의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며 굳이 덧붙이자면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은 무기능이며, 그 자체로서 전복적인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본다는 것이 시간을 뒤집는 행위이며, 미래를 내다본다는 행위 역시 시공간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현재 일어나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또한 지금을 벗어나는 행위일 것이다. 철저히 무기능을 가지고 있음이 또한 가장 거대한 전복이지 않겠는가. 모든 사회가 지닌 절대적 질서, 가치체계가 형성하는 권력의 장, 그 구조에서 예술행위는 들뢰즈식 표현으로 탈주선 을 그리는 탈영토화 인 것이다. ● 공공미술이 되짚어야 할 것들은 바로 이 부분이다.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예술작품이 장소에 개입되면서 그 장소는 하나의 정체성을 생성하게 된다. 그것은 과거를 되살리는 것일 수 도 있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할지도 모르며, 그 곳에 온 사람들의 상상의 영토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미술은 도시를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아름다움이란 매혹적이지만 추상적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개념에 많은 것을 양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질문을 던져보아야만 한다. 아서 단토의 에세이 중 혼란과 예술에서 그는 랭보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한다: 어느 저녁, 내 무릎 위에 아름다움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움이 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움을 능멸했다. 랭보는 아름다움을 적대시했다. 절대적인 모던을 외친 랭보.그것은 끊임없는 뒤집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단토는 이어서 뒤샹, 드 쿠닝과 라우쉔버그를 나열하면서 위험한 아우라가 예술표현의 야릇한 장을 떠돌아다닌다고 덧붙였다. 틀림없이 예술이 도시에 개입되는 것은 극단적인 둘 사이에 놓여있을 것이다. 하나는 도시의 문맥을 연결해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로 문맥의 파괴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통과 단절이 일어나는 곳은 단토에 의하면 일종의 연극화가 이루어지는 장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에 의하면, 가장 예술적인 예술이란, 아주 원시적인 제의행위와 유사하며, 모든 제의행위가 그렇듯이 일종의 과정을 연극적으로 거쳐야 함을 의미한다. 예술은 바로 이 틈에서 생성되며 존재한다. 그 장소를 이질적으로 변형시키고, 시간과 공간을 전복시키면서 말이다. 나는 이 짧은 글을 공공미술은 - 어쩌면 공공 예술이라 명명해야 할 것 같다 - 생성의 틈 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다. 틈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자 비어져있는 공간, 존재하면서 비어있는,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이동하는 자리로서의 틈 말이다. ● 예술은 질문이다. 들뢰즈는 철학만큼 예술 역시 생각한다라고 예술의 위치를 정의 내렸다. 나는 공공미술과 예술작품이 쉬지 않고 도시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공미술이 장소에 접근하는 태도이며 예술가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진정성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공간이 없는 아토피아 상태에 놓인 우리들의 위치에 대한 고민도 동반되어야 한다. 예술의 위치가 정치의 반대에서 사회의 질서를 전복하면서 이상향과 이질적 세계의 교차로에 서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의 적극적 태도, 작품의 설명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체험하는 만남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며 동시에 그 경험은 예술작품을 통해 공간이 생성되는 시간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공간은 이미 우리의 존재와 함께 하고있다. 그것은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와 함께 있는 개념이자 실존의 대상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술작품을 경험하는 동안 일종의 공간이 생성됨을, 다시 말해 일종의 틈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미한 이론이 아닌 스스로 공간을 발견하는 것, 바로 그 틈과 같은 시간은 스스로 인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부분 발췌) ■ 정현

Sadie Murdoch 새이디 머독_Eileen Gray_DVD_00:08:00_2004
Veronique Chance베로니크 챤스_Prop. No 1_디지털프린트_72"×44" (180×110cm)_2006

힘은 지배한다. 정의상, 힘은 한 그룹을 지배관계에 따라 다른 그룹의 희망과 요구에 따르도록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힘은 또한 원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힘은 기계적,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영적인 것을 막론하고 모든 주체의 움직임과 에너지를 작동하거나 유지하는 것에 대한 용어이다. 모든 힘은 예외 없이 행동과 저항, 동작과 정지, 동력과 마찰을 구성된다. 또, 몇몇 상황에서는 힘을 이해할 수도 있다. ● 그러한 두 가지에는 당인리 발전소(Power Station)에 대한 제안과 특별히 관련 점이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명칭에서 우리는 힘이 어떤 식으로 곧장 이 문맥에서 이해되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힘(power)은 연료, 즉 자연자원이다. 생산과 소비를 위한 힘이며 에너지로서의 힘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일상 생활을 형성하는 힘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힘의 둘째 의미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는 곧 정치적 힘을 뜻한다. 이 힘은 권위, 통제, 공동체 조직, 국민, 국가로서의 힘이다. 여기서 힘은 압제나 억압을 뜻한다고 볼 필요는 없다. 민주 자유 사회의 조직에서는 개인이나 집단의 자유를 허용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용인된 힘을 뜻한다. 게다가 어느 수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법의 힘은 절대 권력에 대한 방어력, 세계인의 인권이라는 용어로 현재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법적 권리를 통한 개인의 힘을 방어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 그러나 힘의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바뀌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에너지로서의 힘은 정치 권력과 단단히 얽혀 있다.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대규모 산업과 부의 창출 과정은 차치하고 대다수 시민의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서의 힘의 규모로 말미암아, 에너지 동력의 생산과 관련 산업을 대기업이나 국영 기업체에서 맡게 된다. 비교적 최근 확산된 디지털 통신과 이미지 기술로 사회 활동 전반에 걸쳐 현대 생활은 끊임없이 계속 공급되는 전기라는 형태의 에너지 힘에 더욱 크게 의존하고 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현대 생활의 이러한 두 가지 조건에 따라 에너지 힘의 문제를 정치 권력 문제에 연계해 놓는다. 그리고 전반적인 산업 현대화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이 에너지-정치 매듭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과 전 세계의 환경이나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경제성 있는 대체 연료 자원 없이는, 석유와 가스 같은 전통적 연료 자원의 고갈로 인한 문제는, 이러한 자원에 대하여 전 세계적으로 증가일로에 있는 수요 문제와 겹쳐 기존 에너지 자원을 둘러싸고 기업과 함께 벌이는 국가간 경쟁을 최근 연방 내의 주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에서 목도한 것처럼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할 전망이다. ● 이러한 매듭을 풀거나 변화를 주는 일에는 비판적 예술도 무력할 뿐이다. 이 매듭과 관련한 국영기업체의 투자와 시설의 규모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예술에 대한 투자는 미약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은 현재 예술가의 권익을 유지하면서 국가와 국제 경제 질서를 상징하는 데 무력해 보인다는 점이다.(부분 발췌) ■ Suhail Malik

전시장 전경_(왼쪽부터) 한성필/ 김형관
전시장 전경_(왼쪽부터) 한정림+서승모+최환호, Nuts Society너츠 소사이어티
전시장 전경_(왼쪽부터) Suhasini Kejriwal 수하시니 케주리얼/ Diann Bauer다이안 바우어 Sadie Murdoch 새이디 머독/ Diann Bauer다이안 바우어

문화적인 상징과 사회적 신화가 생겨나려면 조그만 이야깃거리와 파편적 이미지들이 서로 결합하여 등치를 불려나가야 한다. 이야기가 이미지로 바뀌고, 이미지가 이야기로 변환되면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면 일정 규모의 문화코드가 생겨나는 것이다. 큰 이념을 시각적 상징물로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비유법이 알레고리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시각적 상징으로 응축되고 다른 상징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이념으로 성장하려면 상이한 것들을 붙여가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당인리발전소를 내 몸의 경험으로 읽으려면 알레고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 당인리발전소는 서울에서 낯선 존재다. 물론 동대문과 영등포 주변에도 발전소가 있었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당인리발전소와 연관되는 것을 나는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멀리 소외된 당인리발전소와 나는 어떻게 연관을 맺을 수 있을까. 당인리발전소에 대한 나의 지식과 이미지는 내 몸 속 이미지(body-images)를 불러 들였다.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이미지는 외부 세계와 내부 몸 사이를 '작용-반작용'(action-reaction)으로 왕복운동하는 것인가 보다!... ● 나는 내 발바닥에 티눈이 자라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마찰과 압력이 무리하게 가해지면서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원형의 굳은살에 이윽고 검은 점들이 나타났는데, 이놈들은 굳은살 서식지에 씨를 파종한 듯 했다. 그리곤 그 중 한 놈이 뿔처럼 길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숙주가 된 것이 분명했다. 두려워서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헌데 이 마귀 같은 놈이 서식지의 영양분을 다 흡수했는지 원형의 굳은 살점이 발바닥과 겉돌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검고 길게 자라난 뿔을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그놈은 굳은살과 함께 발바닥에서 쑥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빠져나간 자리엔 큰 구멍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살이 돋아났다. 정말 다행이었다... ● 당인리발전소는 닳고 달은 곳이다. 이곳에 가해진 마찰과 압력은 이미 상상을 초월한다. 발전소 지하공간에 가본 사람이면 전자기파에 10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발전소 부지는 티눈의 원형 서식지처럼 굳어버린 이물질이다. 이 서식지는 증설을 하면서 굴뚝들을 증식시켰지만, 이제 영양분을 다 빨아먹고 스스로 내파하고 있다. 지금 당인리 서식지는 한강과 신촌대학가-홍대문화지구와 겉도는 폐쇄회로와 같다. 마지막 일격은 티눈의 뿔과 같은 굴뚝을 잡아 뽑기만 하면 된다. 문화공지가 생길 것이고 문화의 새살이 쑥쑥 돋아날 것이다. (부분발췌) ■ 류제홍

문의_홍영인([email protected]) 유석연([email protected])

Vol.20070104a | 당인리 문화공장-당인리 화력발전소를 위한 제안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