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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201_금요일_06:00pm
갤러리 쿤스트독, 미술연구소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02_722_8897 www.kunstdoc.com
노주환의 단어조각(word sculpture): 실재의 미학(Aesthetics of the Real) ● 작가 노주환은 언어와 조각이 만나는 지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조각의 가능성에서 출발한 그의 노정은 건축과 영상 그리고 활자이미지에 담기며 확장된다. 그의 조각과 언어에 대한 끈질긴 추진력이 지금에 와서는 단어조각(world sculpture)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단어조각은 현대미술문맥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여 얻어진 것으로 언어가 시각예술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1969년 최초로 베니스에서 언어를 테마로 하는 전시가 개최되어 언어는 미술작품의 주요한 테마로 등장하게 되었고, 현재는 세계 여러 곳에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단어조각이 함께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 노주환의 단어조각은 반(反)서사적이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들고 건축과 조각의 간극을 왕래하는 그의 조각에는 현대미술과 한글 조각(Hangul Sculpture)이 어떠한 방식으로 만나는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반영된다. 무거운 납으로 만들어진 활자체들은 육중한 건물들의 무리를 형성하고 서울시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단어가 가지는 시각적 요소 그 자체가 작품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반서사적이다. 이러한 반서사성을 통하여 한국미술과 현대미술, 전통과 현대, 형태조각과 단어입체는 상호 작용한다. 또한 활판인쇄술의 방식을 따라 배열된 그의 활자들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는 우리의 관습을 뒤집는다. 이렇게 활자를 차용한 그의 글자들은 본연의 형태를 띠면서도 정상적인 언어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시각적 요소들로 환원된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서울시를 구성하는 건축물들은 읽을 수도 있으며 만질 수도 있는 대상이 되며, 이러한 맥락에서 건물의 실제적 기능 또한 상실된다. 종로구에 있는 건물들이 다양한 높이와 형태로 시민들의 눈을 자극하는 만큼이나, 그의 작품의 기본단위가 되고 있는 활자들이 가진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딱딱하고 은은함, 차가움과 유연함, 오목과 볼록의 느낌에서도 우리는 입체의 환영을 보게 된다. 이렇게 압도적인 미적경험 속에 있는 관객은 노주환의 작품이 시각적인지 촉각적인지, 건축인지 조각인지, 입체인지 평면인지, 아니면 사물인지 예술작품인지를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쿤스트독KunstDoc에서 전시되는 노주환의 단어조각 특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인쇄글자와 입체성: 글자의 형태가 단어의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나열방식과 배치방식으로 인하여 의미의 구조가 파편화 되며 문장해석이 불가능해진다. 단어의 알레고리가 시각세계의 약호가 된다. 글자는 읽을 수 있는 동시에 관찰 가능한 대상이 되며 단어는 기호가 되고 기호는 작품을 지시한다. 결국 활자와 단어의 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미적 감상의 주체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현대미술문맥에서 구리, 동, 철, 돌, 종이로 제작된 책 조각(Book Sculpture)이 등장하여 출판된 책의 시간적인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다면, 이번에 선 보일 노주환의 책 작품은 평면에서는 촉각의 세계가 드러나고 입체는 책의 형태에서 읽혀져 차이가 있다. 책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일회성이라는 예술의 특징을 살려낸 북아트(Book-Art) 그리고 인공적인 방식으로만 제작 가능한 대형 돌 조각, 나아가서는 사진의 이미지가 텍스트와 조합하여 생성된 텍스트사진이나 혹은 평면성에 단어가 삽입된 70-90년도의 네러티브적인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둘째, 인쇄글자와 건축: 노주환의 기둥조각은 육중한 무게감에 비하여 세밀한 관찰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고대 로마시대에 제작된 돌기둥(Column of Trajan, A.D. 106-13)이나 혹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고딕성당에 세워진 조각 기둥을 연상시키지만, 과거의 작품들이 신화와 성서의 내용을 각인하여 내러티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노주환의 작품에서 단어는 약호화 되며 건축이 조각의 영역에 수렴된 결과 그 반서사성이 강조된다. 한국과 서양이 기둥이라는 형태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이야기 전달의 지시체가 건축적인 요소로 번역되어 내용의 시작과 끝이 사라져 건축형태의 표면으로 스며든다. 건축가가 바라본 서울시와 조각가가 해석한 시울시의 지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다르게 말하면 유기적인 서울시가 조각으로 번역되어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비유기적인 관계로 변하여 단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만 상호간 서로 만날 뿐이다. 관찰자의 도보를 유도한 칼 앙드레와 대지를 조형적인 언어로 번역한 대지미술, 도시공간을 재해석한 수많은 현대작품들과 노주환 작품의 차이는 바로 건축의 약호화에서 비롯되는 비유기성에 있다. 바닥에 촘촘히 수놓은 입체언어는 서울시의 건축과 지형을 그려낸다. 이렇듯 사각의 공간에서 단어의 의미론은 형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보는 즐거움과 찾아가는 행보가 함께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노주환의 실재의 미학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준다. 하나는 단어와 조각이 조우하여 생겨난 작품의 존재방식을 인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그 존재방식의 정당성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과제이다. 따라서 관객은 수많은 상상력을 유발하여 스스로 작품의 범위를 찾아야 하고, 그 범위에서 한국현대미술과 서양미술이 서로 융합하는 지점을 탐구하여야 한다. 단어조각은 비유기적인 특성으로 유기적인 작품과는 다르게 미적경험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관객은 형태와 단어조각을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노주환의 단어조각은 관객에게 '실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할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사유가 함께하는 실재의 미학이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확인되는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김승호
Vol.20061207e | 노주환展 / NOHJUHWAN / 盧主煥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