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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29_수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8_0738 www.artlink.co.kr
촉각적인 시각 ● 곡선은 화면 내부에서 늘 움직이듯 흐르고 있다. 작가 오미현은 이러한 선들의 움직임을 '무형상의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형상이 없으면서도 있는 '선'들은 서로 엉켜 식물의 가지나 줄기, 뿌리를 표현하듯 보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세포의 모습과 닮아, 평소에 익숙하게 보아오는 이미지이면서도 그렇지 않는 애매함을 제시하기도 한다.
원래 판화가 그렇지만, 특히 콜라그래프는 프로따주의 경우처럼, 그녀의 작품에서는 '찍기'의 의미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모판을 직접 만들며, 이것을 옮겨와 찍는 프린트 행위 속에서, 판화의 이중적인 논리를 강조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찍기'는 죠세프 보이스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며, 그것을 본질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또한 형태를 내부화시키는(in-formation) 의미로서, 자유로운 존재로 제시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형성되는 조각의 과정은 작가의 판을 찍는 행위와 연관되기도 한다. 콜라그래프 판이 갖는 조각+회화의 성격은 판의 이중적인 존재론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콜라그래프는 모판을 직접 만들어 찍기 위한, 즉 촉각적인 공간을 시각화하기 위한 조각으로서 보여주기 위한 부조이다. 이 부조를 찍어 평면으로 제시하는 의미는 결과적으로 모판은 없어지고, 남은 판이 존재하는 '무-유'의 형상성, 즉 동양적인 인식의 과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 의해 지시하는 '촉각적-시각적인' 이미지는 다양한 주름에 의해서 확대된다. 주름은 반복된 선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단절된 공간 속에 제시되어, 이러한 흐름이 화면과 화면 사이에 떨어진 이미지의 분절을 보여주며, 이것은 마치 단속적 공간에 있는 모나드처럼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촉각은 '접촉'과 '만지기'를 형상화하는 것으로서, 원초적인 '신체적'이고, '적극적인 접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심리적인 측면과 개인과 사물을 사로잡는 '과정'으로 보여진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이러한 질문은 에로스, 생을 위한 충동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촉은 사물에 대한 감정 이입처럼, 공격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으며 묵직하게 눌려오는 초기의 작품에서 형성된 이미지에서 그러한 의미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초기 작품 연작에서 보여지는 '식물'과도 같고 얽힌 털과 같은 형상은 이러한 '터치'와 촉각적인 공간을 더욱 강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복잡함은 터치의 의미가 사랑과 공격이라는 데 기초하고 있으며 작가의 현재 작품에서 보여지는 동그란 수정란과 비슷한 공간 속에서, '생명'의 조형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여러 이미지에서 관통하는 '복잡함'을 갖는 작가의 형상성은 가스파 (P. Caspar)의 말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복잡함'이라는 것은 곧 존재의 기관, 조직의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내부의 생물학적인 삶의 진화를 말하는 것이다. 작가의 형상성은 이러한 생명을 형상화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그러한 측면에서 작가의 작품이 더욱 창조적인 형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 강태성
Vol.20061130e | 오미현 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