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관훈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129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1층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갑충(甲蟲), 그 천형(天刑)의 고뇌 ● '아! 눈을 뜨고싶지 않다. 갑충(甲蟲)으로 변한 내모습.'나는 오늘의 소흘한 내모습으로 인해 내일 갑충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강박감속에 스스로를 지독히 학대하듯 오늘도 창작질에 목을 맨다. 쉬 우리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현실안주라는 갑옷'의 존재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 굴레를 이탈해야만 한다는 원초적 욕구에 시달리는 불쌍한 영혼. 이는 쟁이들의 숙명(宿命)이요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천형(天刑)인 것이다. ● 現代人들은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 덕에 過去人들에 비하여 많은 외부의 위험들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자연재해, 질병 등 문명의 利器가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불행하다고들 한다. 아니 외롭고 소외 되었다고들 한다. 이는 바로 정신적인 역량이 결핍되었기 때문이리라. 물질적 풍요에 수반되는 부작용. 편안한 일상생활속에서 문득 문득 드는 공허감,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해하는 심리적 불안정등으로 인하여 많은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강박증(强迫症)에 시달리고 있다.
가벼운 강박증은 평소에 누구나 경험하는 우리에게 낯선 현상이 아니다. 가령 문단속을 했던가 하고 몇 번이고 둘러본다든지, 하루에도 여러번 약속 메모를 뒤적이는 일도 일종의 강박증이다. 강박증이 심각해지면 두가지 형태로 분화되는데, 외부에 대해 공격성을 보이거나 자기 스스로를 가두는 폐쇄성향을 띠는 것이다. 이는 외부로 표출되는 외형에 따른 구분일 뿐 그 基底에는 무언가에 대한 강한 執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여린 정신을 추스리고 일순간이나마 정신적 결핍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인은 자신만의 집착행위 하나를 창출해낸다. 가치의 高低를 막론하고 거기 몰두하는 한순간이나마 안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대급부가 따르는 법, 집착은 또다른 집착으로 이어지고 스스로 허상에 얽매이는 自家撞着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 우리가 만든 허상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억누르지만 그 妄想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망상으로부터의 離脫 그 이후의 불안감이 더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정신가치가 저평가되고 고도의 물질가치가 끊임없이 창조되는 현대사회에서 과연 우리가 가슴속에 간직한 그것은 '執着的 妄想'일까 아니면 '진실추구의 열정'일까? 참된 진실을 찾는 과정속에서 無念, 無想, 無所有를 강조하지만 이 또한 집착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은 아닐까? 멈출 수 없는 作品에 대한 열정은 일견 집착적 망상에 빠진 내 모습이려니 한다. Obseession.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갑충(甲蟲)'. 갑충으로의 원치않는 변신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갑충을 바라보는 주위의 냉소로부터의 소외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갑충'은 현대인들이 불시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환경속에 유폐된 소시민정신'을 상징한다. 갑충이 되지 않으려는 가학적인 몸부림은 '원초적인 예술혼'을 쏟아내려는 '쟁이'의 자존심이 되어 갑충의 등위에 올라앉은 두꺼운 껍질처럼 오늘도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 김양희
김양희의 판화-욕망,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존재론적 자의식 ● 중세기사도 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로서 연애시라는 것이 있다. 이는 중세 기사들의 연애감정과 더불어 일종의 매너로 자리 잡은 궁정풍의 사랑이라는 관습에 대해 알게 해준다. 궁정풍의 사랑은 기사가 백작부인이나 공작부인 등의 기혼여성을 애인으로 가정하는 행위나 매너를 말하며, 그리고 연애시는 이렇듯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부터 비롯되는 상실감이나 아픔 등의 심리적 좌절감을 문학적 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런 연애시나 궁정풍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관습은 특이한 심리적 경향성에 대해 말해준다. 즉 기사는 그 사랑이 처음부터 취할 수 없는 사랑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유래한 심리적 좌절감을 기꺼이 감수하고 심지어는 이를 즐기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 프로이드는 이로부터 인간 일반의 보편심리를 발견한다. 인간은 삶을 의미 있게 해줄 만한 허구적 대상을 가정하고 그 대상을 욕망하지만, 허나 그 욕망이 실현 불가능한 욕망임을 익히 잘 알고 있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존재인 것이다. 심지어 그는 우연한 계기로 해서 그 욕망을 실현할 만하면 즉시 다른 대상에게로 그 욕망을 옮겨가기조차 한다. 주지하는 바처럼 프로이드는 인간을 욕망하는 동물로 정의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욕망이란 실현할 수 없는 허구적 대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욕망이 바로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기에 기꺼이 그 욕망의 노예가 되고자 한다. 이처럼 욕망은 단순히 상대적인 결핍이나 환경적인 소산인 것을 넘어서, 인간실존의 보편적인 조건으로 자리한다. 즉 욕망은 인간이 결여와 결핍에 바탕을 둔 존재임을 말해주며, 그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에다가 기꺼이 자신을 투신하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존재임을 증언해준다.
obsession, 김양희의 판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이 말은 망상, 열중, 사로잡힘, 강박관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작가가 현대인과 인간 일반의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정신병리학적인 현상에 대해 경도돼 있음을 말해준다. 허구적 욕망에로의 맹목적 투신으로도 볼 수 있는 이 현상은 인간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서(어쩌면 견디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허구적인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불합리한 삶의 조건에 대해 말해준다. ● 이는 그 이면에서 일종의 물신주의(페티시즘)로 나타난 시대적 환경과, 아노미로 나타난 심리적 현상에 대한 인식에 연계돼 있다. 여기서 물신주의는 본래의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정신이나 관념, 그리고 가치관과도 같은 비물질적인 삶의 조건들마저 물질인 양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왜곡된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사실은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보편화된 심리적 현상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에 의해 제시된 아노미는 일종의 정신적인 공황상태, 정신적인 패닉상태를 말한다. 즉 걷잡을 수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물질문명을 정신문명이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괴리감이 생기고, 그 사이공간에 공허와 권태가 자리하게 된다. 풍요로운 생활이 불러들인 일종의 정신적인 부적응현상으로도 볼 수 있는 아노미 현상 그 자체는 전형적인 자본주의형 질병이며 현대적 질병이다. 페티시즘과 아노미의 이러한 현상이 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심리적 지층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니까 페티시즘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속에서 의식마저도 물질화돼버린 현대인의 왜곡된 삶의 태도를 말해주며, 아노미 현상은 풍요로운 삶에 연유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허구적 욕망을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왜곡된 심리현상을 증언해준다. ● 욕망을 주제로 한 김양희의 판화는 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인의 왜곡된 의식구조와(정신적인 가치마저 물질화시키는) 왜곡된 심리현상(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허구적 욕망을 만들어내는)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고도로 물질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질에 대한 단순한 반성에 머물지 않고, 인간 실존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삶의 조건에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김양희는 그 욕망이라는 주제의식을 석판화로 형상화한다. 주지하다시피 석판화는 판에 드로잉된 재료의 질감을 거의 그대로 되살려주는 판법으로서, 가장 회화적인 판화이다. 더불어 물과 기름의 반발작용으로 생기는 미세한 얼룩효과가 회화적 질감과 어우러져서 풍부한 화면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직접 그린 이미지와는 다르게, 프레스에 의한 압력의 과정이 석판화만의 독특한 표면질감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 이렇듯 석판화의 풍부한 표면질감을 바탕으로 해서 추상과 구상이 어우러져 있다. 석판화 특유의 미세 얼룩효과와 어우러진 형상들은 그 실체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기보다는 암시적이고 불분명하다. 그 자체 고정된 실체로서보다는 일종의 현재진행형의 변태적인 형상을 연상시킨다. 가장자리에 섬세한 털 혹은 감각촉수가 촘촘한 비정형의 유기체나 원형질 세포처럼 느껴지는 형상들이 있는가 하면, 해마와 같은 친근한 소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하트가 변형된 듯한 형태를 비롯한 온갖 비정형의 형상들이 날개라도 달린 양 공간을 부유하고 있는데, 이때 공간이 마치 물 속 같기도 하고, 작가의 내면이 투사된 심리적 공간 같기도 하다. 이런 미세 형상들과 더불어서 카멜레온과 식물 이미지가 비교적 그 뚜렷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하트 모양의 형상은 핵의 구조를 내장한 개화한 꽃잎 형상을, 그리고 식충식물의 공격적인 형상을, 더불어 여성의 성기 형상을 상기시킨다. 사실 여성 성기의 도상학은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페미니즘에서의 핵심적인 아이콘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더 이상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개화한 꽃잎과 여성의 성기 형상을 결합시키는 예들이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물속 풍경을 연상시키는 화면과 어우러져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강화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물은 의미론적으로 생명을 주관하는 여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인식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가의 이미지에 반영돼 있는 것이다(물은 무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 그리고 원형세포와 같은 비정형의 형상들로부터도 느껴지는 바이지만, 특히 꽃잎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이고, 공격적으로조차 보인다. 이로써 작가는 친근하면서도 이질적인 이중적 이미지를 통해 생명의 본능을 드러내고자 한 것 같다. 이때 그 이미지가 이질적으로 와 닿는 것은 아마도 그 본능이 자기보호와 자기방어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양희의 일련의 판화들에 나타난 이미지는 이처럼 단순히 실재하는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암시적이다. 일종의 무의식과 욕망의 실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무의식 자체는 억압된 욕망이 지층화된 것으로서, 작가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억압된 욕망의 편린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이는 카멜레온의 상징적 의미와도 통하는데, 알려진 바처럼 카멜레온은 욕망의 분신이다. 상황논리에 맞춰 자유자재로 그 태를 바꾸는 변신의 귀재이다. 카멜레온의 이러한 특성은 그 자체 유기체의 보호본능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꾀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암시하기도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욕망의 다중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욕망으로써 작가는 현대인의 삶의 질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생물학적 변태로써 여성의 성적 정체성과 만나게 해준다. ■ 고충환
Vol.20061126c | 김양희 판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