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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5_수요일_06:00pm
모란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B1 Tel. 02_737_0057 www.moranmuseum.org
채움-치유-조화, 박정흠의 첫 번째 이야기 ● 박정흠은 그동안 열심히 제작한 작품들을 모아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개인전으로는 처음이지만「대한민국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등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많은 단체전에도 초대 출품하여온 작가로서의 역량은 이미 인정받아온 조각가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쐐기'와'실꾸리'라는 두 가지 모티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박정흠은 전통을 어떻게 자신의 작품에서 현대적으로 되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것은 곧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갈구해오고 있는 우리 것을 찾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목가구와 목조건물에서 나무와 나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홈을 파내고 쐐기를 박는다. 그러나 그가 작품에 사용하고 있는 재료는 나무가 아닌 화강석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돌이고 '쐐기'역시 기능적인 차원에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재료에 쐐기형상의 또 다른 재료를 결합시키므로 매체간의 조화와 통합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그는 주로 단단한 돌을 파내거나 홈을 파낸 공간에 다른 종류의 돌로 쐐기를 박아 넣는다. 그리고 그동안 물질주의나 재료주의에 치우친다는 이유로 조각에서는 금기의 재료로 여겨왔던 금이나 은, 옥, 광석, 보석, 주석 같은 재료로 틈과 홈을 메우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얼핏 가구나 자기에 사용해오던 입사와 상감기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구사하는 방식이 쐐기를 박는 방식이든 상감기법이든 전통기법에 기원을 두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조형언어는 선택한 주재료에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재료를 조화있게 결합하여 물질간의 조화와 결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공을 초월한 전통과 현재의 융합, 나아가 질과 양이 다른'너'와'나'가 하나 됨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박정흠은 또한 실꾸리, 다듬잇돌, 맷돌과 같은 전통적으로 우리들 가정에서 사용해오던 민속물의 소재를 작품에 도입하거나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오브제로서 작품에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작가가 공들여 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티브들은 지난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인들에게 요구했던 순종과 부지런함과 같은 부덕의 상징체로 사용되어 왔다. ● 박정흠 역시, 과거 여인들이 끊임없이 가사에 종사하며 길쌈과 바느질을 하면서 살아온 그 민초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한편, 그로 인하여 오늘날의 첨단문명사회가 출현하게 만든 선인들의 삶의 밑바닥에 깔린 한과 얼을, 소위 "씻김굿"을 하듯이, 즉 과거의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하듯이 작품제작에 몰두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작업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전통과 현대를 결합시키는 유기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실꾸리의 형상에 금속와이어를 감아 놓은 작업은 과거의 끈질기고 모질게 살아온 우리 민족처럼, 길고 질김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것이 천으로 짜지고 옷으로 지워 입혀졌던 그 실이 현대문명 속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하며, 우리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환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특히 박정흠은 작품제작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다. 손수 돌에 홈을 파내고 그곳에 조형적으로 잘 어울리는 매체를 채움으로서 시각적으로 조화로운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러한 작품은 언뜻 크리스챤으로서의 구도적 기원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조각'이라는 고유한 개념에 천착하고 있다. 조각이라는 예술장르는 덩어리를 다루는 시각예술이고 작가가 손수 형상을 만들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개념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간단한 사인만으로 공장에서 다량 생산된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변신'시킨 이후,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손수작품을 제작했는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적절한 재료를 선택하고, 심혈을 기울여 그 재료에 충실하며 자신의 의식세계를 투사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결코 간과 할 수 없는 과정이다.'포스트 모던'이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면서 작가가 자기만의 독창적인 형상을 창안해 내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차용'하거나 때로는 이미 시장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전시장에 늘어놓은 경우'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물론 현대미술에 아이디어를 실제작품보다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작가가 작품 그 자체에 공들여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 또한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박정흠은 시사적인 문제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북한의 핵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등)들에도 관심을 갖고,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를 작품에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조화와 통합의 사회다. 밝은 색 돌과 어두운 색 돌의 조화, 돌과 쇠의 조화, 돌과 질그릇 파편들과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조화, 물질과 정신의 조화 등, 서로 어울릴 수 없을 뜻하지만 서로 자리를 같이하고 부딪치고 섞이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특히 그는 조형적으로 조화로움을 통해 정신적인 조화를, 패이고, 깨지고, 쪼개진 빈자리에 쐐기나 상감기법으로 채워 줌으로써 새롭고 아름다운 여백을 창출해 냄과 동시에 보다 인간미로 다가서는 위로와 치유를 보여주고자 한다. 결국 박정흠은 조형적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경험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부족함을 채우며 고통과 아픔에 대한 치유, 그리고 버림받고 소외된 우리 것들에 대한 위로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 김이순
Vol.20061116b | 박정흠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