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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1_수요일_03:00pm
서울보증보험 갤러리 서울 종로구 연지동 136-74번지 Tel. 02_763_8964
소중한 인연 ●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였던 티벳(TIBET). 그 곳은 내게는 하늘아래 지상(地上)에서 마음의 고향 이었다. 불교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어느 날 뒷산 언덕에 올라 해가 지는 황혼의 장엄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그때 해가지는 서산(西山)너머 아득히 먼 곳에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상상하였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다는 극락세계로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져 갔었다. 훗날 어른이 되어 그곳이 바로 티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 곳이 지도상으로 티벳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다만 어린 시절 언덕위에서 황혼이 지는 서산 너머 저 멀리 동경의 외줄기 길을 따라 끝없이 가면 아침에 다다르는 그 나라가 바로 티벳이라는 믿음이 성장하면서 그렇게 저절로 싹텄다. 이러했던 터인지라 진작부터 사진가인 나는 티벳 촬영을 꿈꾸어 왔었다. 오랜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실로 오랜만의 실현이었다. 그로부터 티벳 본토를 여러 차례 그리고 히말라야산맥을 중심으로 한 티벳 불교문화권 대여섯 나라들을 집중적으로 두루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해마다 한 차례이상 계속해서 사진인 들과 혹은 관광단을 따라 티벳의 숨결이 꿈꾸는 곳이면 어디든지 샅샅이 찾아다니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참으로 여러 사람과 더불어 함께 부대끼어 어렵고 힘든 오지 (奧地)여행을 감행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벳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은 그야말로 어느 곳이나 지세(地勢)가 험난해서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제 돈쓰고 사서 고생하는 고행(苦行)의 길이다. 사람은 함께 고난을 겪어 보아야 비로써 그 인간됨을 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오지여행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참으로 여러 차례 실감했다. 평소에 사람이 편안할 때는 누구나 다 같이 겉으로 무난하게 보인다. 그러나 일단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사람됨이 송두리째 까발려지고 만다. 그래서 자연히 실망도 하고 감정적인 충돌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까닭에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처음에 서로 간에 몰랐던 사람들이 힘든 여행을 통해 오히려 인간적인 인연이 깊게 맺어지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하겠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런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경우가 있었다.
그때 우리 일행은 모두 8명 이었다. 여행기간은 14일간, 여행코스는 네팔로 가서 비행기로 티벳의 수도 라싸로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육로를 따라 네팔로 되돌아오는 여정(旅程)이었다. 그런데 이때 우리의 여행계획은 여러 날 동안 뜻하지 아니한 심한 날씨의 변덕으로 4일간이나 더 지연되었고 따라서 일정도 중간에 완전히 재조정을 해야만 했다. 이렇듯 그때 티벳 여행은 네팔서 티벳으로 입국하는 처음부터 날씨로 인한 비행기 사정으로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티벳 라싸로부터 육로로 네팔 카투만두까지의 여정도 중간에 도로가 유실(流失)되는 바람에 중간지점 그 너머까지 갔다가 할 수없이 중도에 라싸로 발길을 되돌려야만했다. 이러한 여행 스케줄의 빈번한 차질로 여행경비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초과했고 비행기 사정도 처음 네팔에서 티벳으로 입국할 때나 티벳에서 네팔로 출국할 때까지 두 번다 정기노선의 결항과 연착으로 인해 불편하고 속상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것뿐인가. 여행도 빈번한 폭우로 변변히 관광다운 관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빗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가 많았다. 사정이 이렇게 자꾸만 꼬이고 어긋나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기상조건은 악화되고 이에 따라 여행스케줄은 자꾸만 어긋나니까 날이 갈수록 일행들의 신경은 더욱 더 예민해지지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이 여행은 그동안 티벳과 그 영향권 국가들의 여행을 모두 통틀어 한 두번 있었던 잊지 못할 고통스러운 기억의 하나이다. 그 때 티벳 여행은 여행사가 모집한 관광 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전 후 사정을 잊었지만 그 여행사는 자기네 가이드가 없이 우리 일행 중에 모일간지의 여행담당 여기자에게 그 일을 대신 위임했었다. 그래서 우리일행은 그 여기자의 안내를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관광사의 정식 가이드가 따라붙지 아니하니 여행길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간에 의견이 얼마나 분분하였겠나)'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꼭대기에 올라간다'고, 가이드가 없으니 우리일행은 저마다가 사공이 되었다. 이러한 여행팀인데다가 불가피한 기후의 악조건으로 걸핏하면 여행스케줄이 어긋나서 문제가 생기니 자연히 일행들 간에 주장도 많고 의견충돌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행 중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불평을 하지 않는 한사람이 있었다. 그저 묵묵히 항상 벙어리처럼 그냥 일행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만 가는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일행 간에 심각할 만큼 의견대립의 소용돌이가 쳐도 그저 한사코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는 주장이 강한 의견에 순순히 무조건 따라만 다녔다. 이 침묵의 사나이는 여행길에 올라 하루가고 이틀이 가는 동안 내 눈에 차츰 차츰 뜨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그저 침묵만 하고있는 게 아니라 뒤에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속이 깊은 마음을 그에게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표가 나지 않게 일행간에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문제까지 뒤에서 묵묵히 능동적으로 협조하고 유연하게 대처하였다. 이렇듯이 고생스러운 여행길에 자기 몸 하나 추스르는데도 힘겨운 상황에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시종일관(始終一貫) 남들을 세심하게 챙기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는 갑작스러운 개인사정으로 황급하게 여행을 출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여행준비를 미처 못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사람을 특히 꼼꼼히 챙겨주었다. 먼저 자신이 준비해온 미국 달러나 중국 돈으로 환전해주었다. 그리고 반찬이나 먹을거리는 몰론 그밖에 감기약이나 소화제 또는 지사제까지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발적으로 아주 소소한 불편사항까지도 일일이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곁에서 유심히 이를 지켜보는 나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동시에 그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에 은근히 호감이 갔다.
여행스케줄이 반쯤 지나갔을 때는 그와 나는 이미 인간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서로 간에 대화의 시간도 날로 길어져갔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여행목적이 다 같았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단순한 여행가가 아니다. 실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점에서 우리 둘은 그 목적이 똑같았다. 좀 더 마음 문을 열고 진지하게 여행목적을 솔직히 실토하면 또한 그저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유구한 문화의 역사적인 판도와 맥(脈)을 찾아 나선 역사탐방이며 정신적인 순례(巡禮)의 길이기도 하다. 그와 나는 이점에서도 생각이 똑 같았다. 그러므로 우리 둘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호기심의 충동에 따라 이 나라나 저 나라들을 산발적으로 관광하지 않고 일정한 문화적 탐방목표를 갖고 체계적으로 착착 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티벳과 티벳 문화권만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었고 그는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화의 교류와 확산을 사진적으로 답사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직업상 나는 전문적인 사진가이고 그는 종사하는 본업이 따로 있고 그밖에 여가로 사진을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나 그는 서로 간에 카메라를 메고 나라밖으로 여행을 나서는 문화의식은 서로가 똑같다는 점에서 아주 진지하게 대화가 오고갔다. 이렇듯이 남다른 공통점의 상호간의 확인은 그와 나 사이를 인간적으로나 사진 적으로 아주 가깝게 맺어지게 했다. 이제까지 내가 만난 그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신경철씨이다. 티벳 여행길이 유달리 힘들었고 어려운 일도 많아 함께 고생을 헤쳐 나아갔던 그 사람 신경철씨. 이제 다 지나간 그때 그 고생스럽던 그 경험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신경철 씨와 나와의 그때 만남은 다시금 소중한 인연으로 되새겨 진다. ■ 육명심
Vol.20061114d | 신경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