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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4_화요일_06:00pm
안봉균 초대전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안봉균-시간의 입김아래 소멸되는 문자들 ● 중국 시안에 있는 비림박물관은 오래된 묘석과 비문들이 즐비한 곳이다. 역대의 명필을 새긴 1095개의 비석이 무성한 곳, 서예가들의 필체가 새겨진 비석들이 숲처럼 늘어서있는 곳이다. 몇 해 전 나는 그곳에서 오래된 돌의 피부 위에 인간이 쓰고 깍아낸 문자의 흔적들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네 개인 창힐이 하늘에 드리운 형상을 관찰하고 새와 거북이의 자취를 본떠서 문자의 모양을 정했다는 그 한자들이었다. 오랜 시간의 입김 아래 생긴 균열과 마모 속에 문자들은 희미하게 지워지거나 더러 상실되어버렸지만 남아있는 문자들은 안타깝게 자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역사 속에 살아남은 인간의 사유와 삶을 표상하는 듯 했다. 사실 문자란 그런 것이다. 시간에 저항해서 인간의 눈과 정신 속에 오래도록 저장되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바로 문자다. 문자와 함께 역사가 태어났고, 문자의 도움으로 비로소 사건을 연대순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문학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 문자를 기록하는데 필요한 소재를 서사재료라 하는데 중국의 문자와 서사재료의 최초 형태는 귀갑과 우골에 새겨진 상형문자, 즉 갑골문자다. 갑골이야말로 한정된 내용을 특정 재료위에 기록하는 서사 재료의 전형이다. 문자는 어떤 종류의 필서 재료위에 씌어졌을 때 드디어 문자가 된다. 알다시피 귀갑이나 우골은 은나라의 왕이 정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천제나 조상신으로부터 응답을 얻기 위해 점을 칠 때 쓰던 재료였다. 문자는 하늘의 응답이 기록된 것이다. 그러니까 문자에는 모종의 신비성과 주술성이 내포되었거나 그런 효과가 기대되었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문자가 신의 계시로 만들어진 물건처럼 보였던 것이다. 한편 있는 그대로의 바위나 깍은 바위표면과 석판, 그리고 석조건축물 위의 기념비의 형태로 석각한 역사는 기원전 400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은 후한이 되어서야 비로소 돌에 문장을 새기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장소에 석각(비)을 세운다는 풍조가 있었고 제사의 영원성을 담기 위해 돌이라는 항구적인 소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산 정상에 세워진 석각은 일종의 상징인데 그러니까 그것은 지상의 인간에 대한 철저한 명령과 항구성을 의도해서 세운 것이다. 추상적인 말씀을 대신해 구체적으로 실존하는 문자가 비로소 힘이 되고 권력이 되었던 것이다.
안봉균은 오래된 비석에 새겨진 문자를 고스란히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가짜의 비문을 만드는 셈이다. 어느 날 우연히 '로제타스톤'을 보면서 비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오래 전부터 고고학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레 만난 소재일 것이다. 로제타스톤이라고 알려진 돌기둥은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발견되었다. 텍스트는 그리스어로 쓰여졌지만, 그에 앞서 민중문자와 상형문자로 된 번역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상형문자는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되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중요한 성과를 이루게 한 돌이 바로 로제타스톤이다. 안봉균은 수 천년을 살아남은 비석과 그 표면에 새겨진 문자, 그리고 그 상형문자에 인간이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놀라운 아름다움이 숨어있음에 놀랐던 것이다. ● 그는 마치 오래된 비문과 석각들을 발굴하고 탐구하는 문헌학자 내지는 고고학자처럼 그것들을 환생시켰다. 그러나 그 형상과 내용과 철저하게 자의적으로 재구성 한 허구적인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문자텍스트는 성경, 신문기사나 자신의 전시서문, 시 등에서 끌어들이고 있고 이를 다양하게 배열하고 있다. 그는 그리기와 쓰기가 교묘하게 겹쳐진 그 접점에서 글자를 그리고 시간을 재현하고 돌의 피부를 환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글쓰기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선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타이포그래피와 서예, 마음을 만족시키는 기호와 상징, 즐거움을 주는 게임, 도발심을 불러일으키는 낙서 등이 그것이다. ● 그는 돌의 피부와 구조를 재생하고 다시 그 피부위에 문자를 새기듯이 쓰고 그렸으며 아울러 오래된 시간의 입김과 흔적을 올려놓았다. 돌의 피부에는 시간과 자연의 흔적, 무수한 세월의 기억, 그 누군가의 손길 등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작가는 자신의 손길 아래 부감시켜놓았다. 그것은 분명 평면 위의 이미지이지만 부조적인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 효과가 가득하다. 자연과 인간의 때(時)에 의해 완강한 돌의 피부는 조금씩 닳아서 흐물거리고 그 위에 새겨진 문자 역시 마모되었다. 그것은 가독성을 지니면서도 문득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보였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출몰하는 기이한 기억/망각의 놀이가 진행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손에 의존한 노동집약적인 제작방법을 보여준다. 정밀하게 그려진 환영적인 이미지와 바탕면의 미세한 부조적 마티에르로 인한 물질 자체로서의 이미지가 결합되어서 '실재성을 드러내는 부조적 공간과 환영을 통한 평면적 공간'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형식과 효과를 증폭시켰다.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캔버스에 젯소를 수차례 도포한 후 모델링컴파운드로 글자모양의 마티엘을 준 다음 착색하고 갈아내고 정교하게 그린다. 그러니까 다양한 색감을 4-6회에 걸쳐 바른 후 착색의 각 단계마다 작품을 건조시킨 다음 스프레이를 이용, 표면에 적당한 습기를 주고 고무헤라로 문지르게 되면 이 돌가루가 화면의 표면에서 비벼지면서 밑 색, 즉 채색의 각 단계에서 이미 도포된 여러 가지 색과 불규칙하게 섞이게 되어 깊이감 있고 자연스러운 색채를 내는 것이다. 여기서 고무헤라를 문지르는 행위의 결과가 흔적을 낳고 이 흔적들은 오래된 비석의 표면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 석각은 예술형식으로 꾸며진 가상의 존재, 일종의 연극적 상황이기도 하다. 아울러 화면에 설정된 격자선(그리드)은 마치 발굴현장의 현장성을 연상시키는 장치의 구실을 하는 동시에 '절단과 구획, 그리고 연결과 확장이라는 조형적 효과' 외에 지적인 사고로서의 '분석과 고증'을 의미하며 이는 가상의 세계와 관람자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매개 역할을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지금까지 그의 작업은 항상 '시공의 초월'이란 것을 예술적 형상화의 주된 모티프로 삼아왔다. 그는 고고학자나 인문학자 마냥 이미지를 통해, 작업행위를 통해 시간과 역사의 흔적, 기억과 망각 속에 위치한 인간의 삶과 문화에 대한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해왔다는 생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작업행위는 좁은 의미의 미술행위에 머물지 않고 외연을 넓혀 인문적이고 잠언적인 서술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번 문자 작업은 그런 지향점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편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작업실 공간에서 찍은 사진을 도록 말미에 작가약력과 함께 싣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작업의 현장에서 한시도 벗어나있지 않겠다는 의지 같다. 용인에 있는 그의 작업실 공간에서 그 사진 속 장면을 다시 체험하면서 든 생각이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고된 노동과 수고로운 공정 속에서 지난 시간이 흔적과 이미지를 복원해내고 가상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 박영택
Vol.20061114b | 안봉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