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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8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잘려진 일상'이 열어놓는 미장센 ● "사라진 존재의 사진을 보면 나는 별빛을 본 듯 가슴이 뭉클해진다."(롤랑 바르트, 『밝은 방』) ● 여기 a의 구석, b의 귀퉁이, c의 모서리, d..., e...가 있다. 특정한 장소를 떠올리기엔 도심의 큐브형 빌딩의 내부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구석, 귀퉁이, 모서리이다. 이들과 함께 중심을 비껴가거나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잘려버린 불구의 사물들, 예컨대 반쪽의 의자·전기 줄과 형광등·세워진 캔버스들·책상·책상위의 열려진 가방·깨진 벽거울·문짝 등이 화면을 채운다. 사물마저 잘려지다 보니 재미나게도 화면은 온통 구석, 귀퉁이, 모서리이다. 이들 모티프들은 이경림의 대학원 과정 중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 스튜디오 내부와 그 주변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모두 왜소하기 그지없는 형태로 화가와 그의 작업의 일상을 드러낸다. '터무니없는 낭만적 신화로 덧씌워 놓거나' 신비로운 그 어떤 것으로 치장하지 않은 채 구석, 귀퉁이, 모서리로 '그 곳'과 '그 것'들은 정물화에 가까운 정지의 표정을 풍기고 있다. 따라서 이경림의 그림은 관람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거나 순간적인 강렬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잘려나간 공간과 사물들 때문인지 그 내부구조는 어딘지 모를 어색함으로 불안정하다. 그런데 이토록 사소하고 지극히 우연적이며 다소 개별적이어서 눈길조차 준 적 없는 일상과 사물의 구석들에 시선을 주는 그의 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하고 어떤 의미에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이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아마도 배접한 장지에 모노크롬에 가까운 회색톤의 컬러를 앉히고 콘테나 오일 파스텔을 다시 앉히는 반복적인 작가의 행위가 여러 차례 녹아들면서 만들어 내는 깊은 침묵의 분위기가 이유인 듯하다. 한편 내용적 측면에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을 향한 눈과 그로 인해 진동하는 공간, 그리고 사물들의 떨림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공간과 사물의 구석, 귀퉁이, 모서리들을 바라보는 눈의 주인과 '그 곳'과 '그 것'들을 진동하게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우리의 전통적인 원근법적 시각방식으로 그림을 풀어가는 이경림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눈의 주인인 그는 자신의 시선을 과장되게 높이거나 낮추어 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마치 예기치 않은 스냅사진과도 같이 특정한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잘라내어 따버렸다. 진동하는 사물들은 잘려진 부분 그대로이지만, 관람자는 그림 속 '그 곳'의 잘려진 사물들의 나머지 부분을 상상하고 이어가면서 마치 그의 흔적이 묻어나는 장소와 그 속의 사물의 구석, 귀퉁이, 모서리들을 보는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따라서 이경림은 자신의 그림 속에서는 부분으로 잘라낸 장소와 사물들을 결국 실제의 모습으로부터 격리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과 결합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그는 특정한 장소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의 흔적을 체험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경림은 어떤 특정한 그 무엇을 보여 주고자하기보다는 자신에겐 한때 현실이었고 시간이었던 장소와 그 곳의 사물, 반복적이지만 확장될 수 있는 일상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한 그 흔적을 체험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가 결정한 미장센 앞에 있다. 그것은 이렇게 '잘려진 일상', 이경림의 흔적 체험으로 결말지어진다. 그리고 다시 되뇌어 본다. 롤랑 바르트의 말 "사라진 존재의 사진을 보면 나는 별빛을 본 듯 가슴이 뭉클 해진다"를. ■ 김주원
Vol.20061112d | 이경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