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오민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110_금요일_06:00pm
후원_(재)인천문화재단
혜원 갤러리 인천시 남구 주안4동 453-18번지 혜원빌딩 Tel. 032_422_8862
오민수의 첫 개인전에 부치는, ...蛇足 ● 한강을 가로지르는 전철 안에서 보는 바깥의 경치와 풍광은 아름답다. 그러나 안구를 1mm만 움직여 전철내부를 보면 사람들, 그것도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은 건조하다. 생존하기 위한 삶에서 풍기는 지친 내음과 욕망들. 그러나 그 시선이 지금의 우리들처럼 메마른 기성세대가 아닌 청소년이나 풋풋한 청년의 그것이라면 아마도 좀 더 다른 정서나 삶에 대한 희망적인 관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에게 보이는 똑 같은 상황이나 장면이라도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 정서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다. 오민수의 작업도 이런 평범한 일상적 장면으로 구성된다. 주로 지하철(전철)내부의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모습과 무미건조한 장면들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리기와 새로운 매체나 재료의 결합이란 방식을 통해 시각미술의 재미 또한 동시에 제공한다. ● 이는 현재 오민수의 작업이 그 내용을 특정한 주제로 이끌어 가는 것보다는, 포괄적인 시각형식과 상황설정을 통하여 다양한 표현과 실험의 가능성에 대한 방법적 접근으로 읽히게 한다. 이 지점에서 오민수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 형식적 특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먹(墨)이라는 전통적인 질료와 수묵의 맛을 살린 페인팅이다. 그가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점에서 먹의 장점을 자신의 작업에서 활용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두 번째로는 LCD 도광판이라는 비교적 첨단 재료를 활용한 이미지의 나타남과 사라짐의 일종의 몽타쥬 기법이다. 그러니까 화면에 장치된 센서에 의해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자동적으로 점멸하는 화면에 의해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인데, 관객참여를 그 바탕에 깔고 있는 형식이다. 세 번째로는 소재들의 등장방식이 스트레이트사진들처럼 가볍게 포착한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중에서도 전철이라는 공간을 주무대로 설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이 세 가지를 결합하거나 분절하여 각각의 작품을 구성하면서 스쳐가는 일상에서의 짧은 사건, 만남, 시각적 현상 등을 복합적인 이미지로 결합하여 제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민수의 작업의 태도 혹은 입장이다. 그 재미는 수묵의 특성을 중요시 여기면서도 거의 동양화에서 일탈한 화면구성과 새로운 재료(LCD 도광판)에 의해 몽타쥬화 되고 고정되지 않는 화면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공존, 수묵(사람)/사진(배경)의 질료/형식의, 간극이 큰 작업과정이 불러일으키는 의문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이른바 장르간의 크로스 오버나 이질적인(언밸런스) 어법들의 결합과 같은 일종의 충격효과를 노리는 형식실험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대인의 실존과 같은 내용을 드러내는 점에서 작가의 입장은 매우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의도를 띈다. 이 이질적인 형식의 간극은 작품의 내용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경과 완전히 분리되었다가 결합하는 등장인물들의 단절감은 수묵과 점멸하는 LCD의 결합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진다. 고독, 소외, 무관심, 그리고 스쳐가는 짧은 순간의 만남이 빚어내는 속도의 허무감 등. 도대체 통일될 것 같지 않는 방식 같은데 나름대로 모던한 결합을 이루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작가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질료들의 특성을 충돌시키거나 버무려서 종국에는 삶에 대한 그의 느낌, 혹은 깨달음을 드러낸다. 분절된 시간의 덧없는 사라짐과 반복, 지속하는 삶과 단편적인 일상의 차이에서의 허무와 삶에의 의지의 동시 수용, 거기에서 부딪히는 시대와 삶에 대한 반성과 인식들... 수묵은 이 때 매우 적절한 서정성을 담보하는 매재가 된다. 아마도 오민수가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파격적으로 일탈하면서도 여전히 수묵을 중요한 질료로 구사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이 수묵의 장점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위에서 언급했듯 오민수가 먹의 서정성과 여타 다른 LCD/스냅사진의 중성적인 분위기를 결합하며 포괄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의 형식이나 재료일지라도 버리지 않으며 새로운 것과 결합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는 다소 방만한 작가의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20대의 작가만이 시도할 수 있는 의욕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보다 명쾌하게 개념화되고 집중되는 단일한 발성보다는, 자신의 몸과 피부와 지식에 붙어있는 것들을 넘나들며 혼성적으로 꼴라주하고 몽타쥬하며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작업행위, 이는 기성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의 젊은 의욕이자 도전이라 할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민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가 구사하는 조형요소들의 절제와 그 결과로 더 커지는 섬세한 긴장감에 관한 것이다. 특히 수묵을 구사 할 때는 수묵이 작업의 배경이나 설명이 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응축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표현으로 길어 올려지는 매재가 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다른 혼합매체 또한 그 자체로 최상의 언어로 변주되어 드러나야 한다. 어떤 작업이든지 작가가 생각하는 많은 것 - 표현에의 욕심, 내용의 충실성, 질료의 능숙한 구사 등 - 만큼이나 적확한 표현에 이르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날 선 긴장감이 일차적임을 다시금 되새길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특히나 다양한 실험을 시도할 때 더욱 이런 점은 더욱 필요하다. 오민수의 이 번 첫 개인전이 앞으로의 작업에 반성적 촉매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 蛇足을 붙여본다. ■ 김진하
Vol.20061110e | 오민수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