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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10_금요일_05:00pm
후원_HP Korea
스페이스 바바 서울 강남구 신사동 514-1번지 5층(포토피아 5층) Tel. 02_3442_0096
이 작업에서 주목한 것은 도시 주변부, 주택가 근처의 골목 사이에 자리한 "그곳"이다. '맥주·양주'라는 문구, 창문 하나 없이 단단히 닫힌 입구, 세련되지 않고 자극적인 간판, 출처를 가늠할 수 없는 타이포와 독특한 외양의 "그곳"을 바라보며 느낀 것은 그곳이 사람들의 시선과 출입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일반적인 술집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정체불명의 공간으로 재단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닫았고, 외부의 시선에 의해 닫혀 진 공간인 셈. 이 작업은 개발의 논리 속에 사라지거나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해가는 "그곳"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시각화함으로써, 벽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공간 너머에 대한 추측과 오해, 호기심 그리고 막힌 소통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시선의 단절을 보여주고자 한다. ■ 이호상
매미굴의 여름 ● 인기척이 없는 문 너머로 매캐한 연기가 새나왔다."이모님!"그제야 검은 민소매 웃옷 입은 여인이 한 손에는 큰 솥을, 한 손에는 불씨가 남은 종이뭉치를 쥐고 나타났다. 고약한 냄새에 숨이 찰 법도 한데 여인은 아랑곳 않고 호통을 내지른다. "누구여!!" 말투에 불청객을 향한 경계심과 노여움이 잔뜩 묻었다. 영업시간이 가까운 때 재수 없게 대체 어느 계집이 문을 밀었는가. 하기사 여자 있는 집에 여자가 들면 재수 옴 붙은 격이렸다. 개시하기도 전부터 맥 빠지게 말이다. 사실 우리 사이의 간격은 한 발자국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낯선 여자에게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나는 당신을 처음 본다는 듯 외친다."왜요!"지난 20년 세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 것에는 놀라지도 않을 강단이 생겼어도, 이곳을 찾는 익숙한손님 외에'낯선 사람'은 여전히 불편하고, 껄끄럽다. 별별 사람들이 찾아와 무시로 내뱉었던 어둡고 탁한 속엣 것을 다 받아주고 들어주었어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힐긋거리기나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것을... 세월이 남긴 단단한 굳은살은 어데 손바닥에만 박히는 것이라더냐. 생의 굴곡진 길에 이제 미련도 아쉬움도 없지만, 그 뒤로 따라붙은 한스러움이야 어느 밤 문득 찾아오기 마련이라, 그래도 제 영역 지키려는 최후방어선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겠나. 다 받아줄 수 있지만 그래도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법.
지난 밤 소주잔에 술 한 잔 기울이며 기름때가 틈새마다 가득 끼인 불판을 어루만지듯 고기 한 점 스윽스윽 문질러 권하던 이모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매미 날개 같은 레이스 커튼 밖, 세상이 붉은 색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제 밤이 깊어지면 술 몇 잔은 걸친 사내들이 혼자서, 혹은 두셋이서 이곳의 문을 연다."주로 동네사람들이 오제. 아는 사람들이 많여. 혼자 사는 사람들도 오구. 마누라 있는 놈두 오구. 그런 사람들은 외로우니께 오잖여. 근디 그것을 또 잘 풀고 가야허는디 사실은 못 풀고 가는 거여. 그런 거 같어."기분이 나쁘고, 열이 달아올라 뭣 하면 암데라도 가서 술 한 잔을 먹는데, 회포를 풀라면 큰 맘 먹고 이런 곳엘 온다는 김 씨도 이 동네에 17년을 살았다. 맥주 한 병에 만 원씩은 받고 한번 마시면 술값이 훌쩍 오르는 매미집에서 술을 먹는 건 기실 흔한 일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한 번에 끽 해야5만 원, 10만 원 이제." 하룻밤에 몇 천만 원도 우스워라 하는 세상이지만, 변두리 매미집에는 하루가 고단하고, 일 이만 원이 무서운 그런 사람들이 기분이나 한 번 풀겠다며 찾아온다. 땀 냄새가 배어나는 옷자락, 거뭇거뭇한 소매단을 낚아채 남자의 팔을 틀어잡고 끌어매는 여자의 애처로운 미소. 몇 십 년을 한 이불 덮고 몸 포개고 살아온 마누라 살내음 말고, 어데 가서 또 그렇게 여자의 진한 화장품 냄새를 맡아볼 것이냐. "그렇게 잘 해 줄 수가 엄써. 암만 그라제. 잘해주니께 기분 좋게 돈쓰고 나오는겨." 오리 탕에 소주나 먹고 집에 갈 요량이었던 김 씨 일행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뻗어 나오는 손길에 못이기는 척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매미집인지 정작 그곳의 이모는 알지 못한다.전쟁 통에 미군부대의 탱크 자국을 따라 생겼던 양색시집의 기둥 같던 큰 언니, 매미mommy에서 온 것인지, 한 여름 매암매암 울어재끼는 목소리가 곱고 우렁차다하여 노래하고 술파는 술집 여인을 가리키던 속된 말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건설 현장의 함바はんば집처럼 공사판을 따라 다니며 한 철 장사를 하는 것이 6년 땅 속에 있다 나오는 매미와 비슷해 그리 부르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그 이름이 속절없이 아리땁기만 하다. 세상을 향해 나있는 통로라고는 단 하나. 분명 문이라면 들고 나는 곳이련만 그곳은 열려 있어도 닫혀있어, 막히고 닫힌 채로 사람을 받았다. 간혹 열린 문을 흘깃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얼기설기한 발이나, 날깃거리는 커튼으로 가려져 붉은 빛으로 빛날 뿐이다. 현실의 고단함은 사라지고 낭만만 남은 뻔한 이름을 달고 있는 곳. 이곳은 직사각형 네모난 문 달랑 하나 달린 벽에 창문 하나 없이, 조악하고 제 멋대로 생겨먹은 간판을 달고, 기껏해야 테이블이 두어 개 놓인 밀폐된 곳이다. 간혹 신장개업이라는 종이짝과 함께 번들거리는 코팅지와 꼬마전구 불빛으로 매미집의 허름함을 포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새 것처럼 꾸민다한들 예전 가게의 흔적을 모두 지우지는 못한다. 장사하던 이모가 떠나면 또 다른 여자가 와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고, 그와 함께 매무새를 다시 갖추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하나의 선율을 가지고 이어지는 변주變奏다.
이모는 여름 한 철을 위해 나무아래 굴을 파고 번데기 상태로 몇 년을 버티는 매미처럼 그곳에 버티고 있다. 이모는 20년을 이곳에 살았다.그리고 이 집은 이모가 버틴 나이보다 더 오래도록 그곳에 있었다.이곳저곳 개발되는 도심의 풍경 속에서 사라질 듯 보여도 좀체 밀려나지 않는 곳. 이미 언저리로 밀려나기도 많이 하였지만 어데 여기서 밀려나면 또 갈 데가 없을라고.이제 건물 외벽은 금이 갈 데로 갔다.문 앞에 걸린'여종업원 구함'이라 박힌 아크릴판 명패도 깨진 채 기울어진지 오래다.2층 다락방에서도 손님을 받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던 것이 옛일이라 이제 가게에는 테이블이 달랑 두 개다. 그렇지만 무성하게 집을 덮은 담쟁이넝쿨은 그런 변화는 아랑곳 않고 계속 자란다. 가느다란 넝쿨손은 그 끝마다 작은 징이 박힌 듯 촘촘하게 벽을 붙잡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제가 매달렸다기보다 매미집을 빨아들여 붙들어 매고 있는 형색이다. 핏줄처럼 뻗어 들러붙은 그 손이 어찌나 매운지 일부러 잡아 뜯으려 해도 힘을 꼭 주고 팽팽하게 버틴다. 아, 징한 것!!"그래가지고 그 집이 진즉 넘어질 놈인디 그것 때문에 안 허물어지고 있는 거여. 지금도 보면 금이 이맨치 다 벌어졌지. 넝쿨이 그렇게 조아매고 있기 때문에. 안 허물어진 것이여. 아니면 벌써 허물어졌어."그곳을 지탱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낭만으로만 남은 추억? 충동과 욕망? 먹고 살기 위한 의지?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이든 팔고 사는 자본 논리? 어쩌면 이 모든 것 때문이 아닐까. 낭만과 현실, 그 이질적인 감각 사이에서 매미집은 제 자리를 내놓지 않고 단단히 버틴다. 쐐애애애애앵 길가로 피자배달부의 오토바이가 사나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길가에 있는 비슷비슷한 매미집들이 저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누군가 그곳으로 들어오기를...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들러 제 속내를 털거나, 허풍을 떨기도 하고, 술기운에 취해 악다구니를 떨고 가기도 하고, 오가며 친숙해진 사람에겐 술을 권하기도 하는 - 정작 그 누구도 쉬지는 못하는 곳. 하지만 '갈 데 없는 것들은 꼭 돌아'오는 것을 어찌하랴.■ 전미정
Vol.20061110a | 이호상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