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 Storage

방명주 사진展   2006_1109 ▶ 2006_1126 / 월요일 휴관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15×15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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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109_목요일_05:00pm

책임기획_이은주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금산갤러리에서 열렸던 방명주의 『마리오네트』展(2004년)을 보면서 작가의 두 가지 관심사를 엿볼 수 있었다. 하나는 '판테온' 연작에서 보여진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었고, 또 하나는 '판타스마' 연작에서 일부 보여졌던 투명하고 연약한 자연적 물체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거대한 대형마트의 쇼핑카트나 중앙냉방을 조절하는 대형건물의 냉각탑을 근접 촬영한 것이었고, 후자는 주로 미역이나 천사채, 콩깍지와 같이 미시적이고 생태적인 물질을 알약과 같은 인공적 이미지와 함께 다룬 것이었다. 이후 갤러리 쌈지에서 열렸던 『부뚜막꽃』展(2005년)에서는 밥알의 질감과 투명도, 형태 등에 몰입함으로써 작가의 관심이 자연적 물체에 더욱 집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판테온' 연작에서 확연하게 읽혀졌던 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 연유하고 있는 것일까? 갤러리 쌈지의 전시를 보면서 못내 궁금했던 점이었다. 그만큼 이전의 '판테온' 연작에서 보여졌던 인공적 시스템에 대한 그의 관심은 '판타스마' 연작이나 '부뚜막꽃'에 나타난 자연물에 대한 관심과 동일한 밀도와 무게중심을 갖춘 것으로 보였었기 때문이다. 이번 브레인 팩토리의『스토리지』展(2006년)은 내심 품고 있던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방명주가 지속적으로 안고 있던 인공물과 자연물이라는 두 가지 문맥은 '냉장고'라는 주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된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고 있다.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37×42cm_2006

'스토리지'는 현대문명의 필수품인 냉장고의 기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그 크기가 부의 척도가 될 만큼 냉장고는 현대사회가 낳은 하나의 물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가정집들을 방문하여 작가가 포착한 냉장고들의 안쪽에는 마트에서 구입한 각종 가공식품, 장기보존을 위해 냉동시킨 음식물, 밀폐용기에 담긴 반찬 및 과일 등 소비사회의 삶의 패턴들을 반영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있다. 물건들이 보관되고 저장되며 정렬된 방식은 자르고 분류하고 위치시키는 구조적 시스템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능에 따라 분류되는 서랍들, 규격화된 칸 안에서 일정한 질서로 놓여진 음식들은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생활과도 같이 거대한 자본 시스템에 의해서 조작된 일상을 느끼게 한다. 이 작업들에서 냉장고의 시스템이 보여주는 차갑고 균질한 상태는 '판테온' 연작들에서 드러났던 것과 같은 기계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방명주의 시선은 가공적이고 기계적인 냉장고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내부에 놓여진 물질들에 좀더 밀착하고 있다. 냉장고 내부의 질서나 체계를 채집하는 유형학적인 태도를 넘어서, 그 안에 놓여진 자연물들의 존재상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60×240cm_2006_부분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60×240cm_2006

기계적 구조 안에 놓여진 자연물들의 위치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방명주는 객관적인 관점으로 찍은 냉장고 내부 풍경의 일부분을 다시 확대하여 인화한다. 객관적 표면으로부터 개별적인 물질로 향하는 그 시선의 이동은 마치 시스템의 표면으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속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시선이 다가가는 곳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과일의 싱싱한 표면, 플라스틱 패키지 안에 담긴 숨쉬는 듯한 김치, 진공 유리병 안에 꽉 채워진 저장식품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 일종의 생태적 반동을 보여주고 있다. 에로틱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물컹하고 부드러우며 즙이 많은 음식물들이 밀폐된 냉장고 안에 놓여진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적 존재에 가해지는 제도적 억압과 통제에 대한 환유이다. 이와 같은 근작들의 맥락에서 바라보자면, '부뚜막꽃'에 나타났던 밥알들의 이미지는 그 감각적인 물성, 형태, 다량성, 사회적 함의를 통해서 생산과 생식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원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명주의 작업은 결국 감각적이고 생태적인 존재가 그것을 통제하는 외적 장치와 만나서 조작되며 변형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각 15×15cm_2006

일상의 표면 안쪽에 도사리는 제도적 억압과 자연적 삶 사이의 긴장상태야말로 방명주의 작업이 천착하고 있는 지점이다. 부분 확대된 냉장고 안의 몇몇 음식물들은 싱싱하게 보존되기 위해 냉장고에 들어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관리당하는 존재로서 감옥에 갇힌 운명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마지막 생기를 품어내고 있는 듯 절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연적인 부패를 통제하는 현대적인 위생학, 노화를 지연시키는 각종 첨단기술들. 그의 작업이 전유하고 있는 일상적 공간들은 이러한 현대문명의 관리체계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자연적 삶을 대변한다. 피임약이나 콘돔과 같은 소재가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했던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방명주의 작업이 콩, 밥알처럼 주로 일상과 관계있는 음식물이면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이기도 한 물질들을 종종 다루어왔다는 점과, 대부분 부엌, 마트와도 같이 여성의 성역할과 연관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방명주의 근작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상적 공간을 둘러싼 시스템이 자연적 힘을 통제하고 있는 상태, 특별히 여성이 가진 생식적인 에너지를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그의 작업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에 대해 적지 않은 단서들을 남겨주고 있다. ■ 이은주

방명주_스토리지 Storage_디지털 프린트_각 15×15cm_2006

Storage ● 지난 여름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냉장고에 관심을 가졌다. 문을 열면 불이 켜지는 새하얀 공간에 매료될 수 있었던 까닭은 삶의 신선도를 측정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차가운 공간에는 따스한 가족들의 사랑도 담겨있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약속들도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 무언가 허전할 때 습관적으로 열어보는 냉장고. 꼭 먹거리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그럴듯한 보상이 어느 한구석에 숨어있지나 않을까에 대한 미련이기도 하다. ● 사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피사체의 입장에서는 이미 예고된 죽음을 애써 감추기 위한 마지막 도피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뻔한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부패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그곳의 온도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아주 느린 저장이라는 무감각의 응고된 시간이 흐른다. 냉장고의 안과 밖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이론보다도 더 많은 속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사진은 보이는 것만 찍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무더운 여름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면서 내 사진기보다 더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 렌즈가 냉장고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 어쩌면 『스토리지』展은 냉장고가 아니라 삶과 사진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속살을 들킨 것처럼 쑥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 방명주

Vol.20061109f | 방명주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