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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게으름과 무력감 ● 사진이라는 매체를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십수 년이 지났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기 시작한지는 한 7년 정도. 석 대의 카메라가 내 손을 거쳤고 넉 대째 카메라를 쓰고 있다. 회화를 전공한 내가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처음 가진 카메라는 7만 원짜리 자동 카메라였고, 그 카메라가 고장이 나자 산 게 니콘 FM2였다. 사실 카메라를 산 것도 사진 작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림과 자료들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기 위해서였다. 렌즈도 달랑 표준 렌즈 하나였고 사진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컴퓨터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결국 디지털 사진을 다루게 되고 말았다. ● 디지털 카메라도 없이 스캐너와 컴퓨터를 이용해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던 십 수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는 동안 디지털 사진은 이제 거의 필름 카메라를 밀어내버렸다. 물론 이 쌍둥이 매체는 우열이 아니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어리둥절 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 이제 디지털 카메라는 국민적 필수품이 되었다. 누구나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한다. 인터넷을 뒤지면 엄청난 디지털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프로에 근접한 아마추어들의 사진도 부지기수다. 거기서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가 내공이다. 기술적 수준에서 그 내공은 대단하다. 디카의 모든 것에 관해 거의 전문가에 가깝다. 렌즈와 카메라를 개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처음 출시된 디카의 약점들을 놀랍게 잡아낸다. 줄무늬 벤딩 노이즈, 좌녹우적 현상, 냉장고 현상 등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가며 출시된 디카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특히 우리나라 유저들이 최고인 듯하다. 나도 새 카메라를 살 때마다 꼼꼼히 글들을 읽어본다.
겪어보니 사진이라는 매체 역시 다른 시각 매체와 마찬가지로 핵심적인 것은 시선의 문제였다. 그 시선이란 시력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즉 세계에 대한 해석과 통찰력의 문제였다. ● 인간의 시각은 가장 복잡하고 발달이 느린 감각 기관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어린 음악천재, 수학 천재, 시적 천재는 있어도 나이 어린 미술 천재는 없다. 있더라도 그럴 듯한 의미 있는 작품을 생산하려면 적어도 스물 중반은 넘어야 한다. 심지어 영화도 마찬가지다. 시각적인 것을 다루니까. ● 시각적 정보들을 다른 시각, 다른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는 일은 새로운 개념과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통찰은 순식간에 온다. 그걸 영감이라 불러도 좋다. 그렇게 온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깊이 있게 하는 힘은 개념 혹은 사고의 힘이다. 창조성 혹은 독창적인 어떤 것은 거기서부터 일 것이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순간의 영감은 그냥 지나가고 만다. 요는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늘 훈련하고 있다가 타석에 들어선 타자처럼 방망이를 휘둘러 공의 중심을 맞혀야 한다. 땅! 하고 맞아 뻗어가는 공은 잘 맞으면 홈런이 되기도 하고 운 좋으면 텍사스 히트가 될 것이다. ● 나는?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이 없다. 요는 재능이 부족한 것이다. 그게 억울하지는 않다. 이제 그럴 때도 지났고 타석에 들어서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한 대타 요원이다. ● 행복한 대타 요원으로 디카를 들고 어떻게 작업을 했나 뒤돌아보니 가방을 메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린 것뿐이다. 그것도 일부러 찍을 거리를 찾아서 헤맨 것이 아니라 거의 사는 곳 근처에서 뭔가를 찾아 찍어 만들었다. 어느 때는 친구들과 놀러간 곳에서, 어느 때는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혹은 길을 잘 못 들어 작업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 그러니까 내가 찍고 만든 사진들은 거의 걷기의 속도로 바라본 세상이다. 작업들을 다시 살펴보고, 쓴 글들을 보니 내가 본 세상은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혹 겉보기에 아름답더라도 그 안쪽은 누추했다. 결국 그 누추함이 과연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가가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물론 그 누추함을 어떻게 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보고, 찍고, 만들고 불평할 뿐이다. ●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내 작업들은 결국 구경꾼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계에 관한 불평과 무력감의 표현인 셈이다. 그리고 혹시나 내 작업 속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사진 자체의 힘이다. 사진 속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이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자 무서움일 것이다. ● 이 책이 나오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고 의뢰를 받은 것은 여러해 전이었지만 내 게으름과 다른 사정들 때문에 이제야 책이 나오게 되었다. 어쨌든 이 책이 사진과 이미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읽어서 재미있고, 읽고 나면 뭔가 얻는 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 강홍구
목차 ● 도망자를 위하여_도망자 환영속에서_자화상 개복숭아 나무의 기억_해수욕장 남자의 등_전쟁공포_행복한 우리 집_사과와 몽둥이의 법칙_나는 누구인가 혹은 영화배우 ● 그린벨트에서_최초의 디카 그리고 세한도_고사관수도 썩은 물을 보다_귤이 있는 풍경_하동 사진의 기억_유토피아의 변방 오쇠리, 소멸된 마을에서_북한산의 봄 ● 놀이는 즐겁다_여의도 벚꽃 놀이, 축제_뒤풀이 혹은 이미지는 어떻게 읽히나_섬과 섬과 섬_부산, 광안리 다리_할머니가 있는 풍경 ● 풍경의 뒤쪽_생선이 있는 풍경_드라마 세트 I 백일몽_드라마 세트 II 파편/멜랑콜리_청계천 할머니의 뒷모습 ● 사람이 살았던 집_사람이 살았던 집_미키네 집_수련자 혹은 태산압정
작가소개 ● 강홍구_1956년 웬만한 지도에는 형태도 없는 전남 신안의 한 작은 섬 어의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없어진 목포교대를 졸업하고 완도에서 6년 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할 만했으나 학교를 둘러싼 시스템에 절망한 나머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미술 근처로 도망갔다. 졸업한 뒤 역시 도망의 일환으로 같은 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먹고 살기 위하여 학원 강사, 과외 선생, 야학 교사 등등을 전전했다. 어쩌다 『미술관 밖 미술 이야기 1, 2 - 그림 속으로 난 길, 원작 없는 그림들』이라는 대중적 미술 소개서를 썼고, 또 내친김에 사는 데 보탬이 될까해서 『앤디 워홀』,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 등의 책도 썼다. 화가, 혹은 예술가로서는 자칭 B급 예술가로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만들기를 하고 있으며 로댕 갤러리를 비롯한 몇 군데서 개인전을 했고, 여러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렇듯이 작품을 파는 것이 별로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강사를 하면서 온갖 잡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Vol.20061102f | 디카를 들고 어슬렁 / 지은이_강홍구 / 마로니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