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야생동물들

중랑천 프로젝트-버들치를 기다리며...展   2006_1028 ▶ 2006_1125

오픈행사_2006_1030_월요일_11:00am   세미나_2006_1111_토요일_02:00pm 정독도서관 2동 3층 세미나 1호실

참여작가 김병진_김호진_남지_류신정_문병두_박민규_배숙녀_신성호_양태근_연기백_이가람_이승아 이유미_임승오전신덕_정국택_정채희_주송열_차기율_최용선_최일_최혜광_한희철

전시진행_이유미

중랑천 (한천교 부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중랑천 Tel. 018_285_7905

어떻게 자연의 야성을 회복할 것인가 ● 그룹 '야생동물들'이 2001년 9월의 창립전(전 장흥토탈미술관) 이후 일곱 번째의 전시를 맞이하였다. 지금까지의 전시들을 보면 주로 미술관과 그 주변의 도심 속 광장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이는 국내 야외설치미술 그룹인 '야투'와 '바깥미술회'가 주로 도심을 벗어난 자연을 발표의 장으로 삼아왔던 것과는 비교된다. 그러니까 '야생동물들'은 도시와 자연이 중첩되는 지점에, 그리고 문명과 자연의 야성이 겹쳐지는 지점에다 작업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해석에 경도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병진_yearning_고무, 철_120×200×200cm_2006 김호진_Roadkill_스티로폴_180×180×60cm_2006 남지_돌연변이_철, 베어링, 우레탄 페인트_300×300×350cm_2006 류신정_거처_프린트에 드로잉 / 거처_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_가변설치__2006

'야생동물들'은 동물이 야생을 상실했다고 봄으로써 자연이 야성을 상실했다고 본다. 자연이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그 정체성이 변질되었으므로 자연에게 그 본래의 야생과 야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 또한 상실 내지는 변질되었을 거라는 자기 반성적 인식이 깔려 있다. 인간 역시 문명의 소산이기 이전에 동물이며 자연인 까닭이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성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인간성이란 흔히들 도덕적 인간, 윤리적 인간, 사회적 인간, 제도적 인간, 문명화된 인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하지만 그 의미들을 곱씹어보면 이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자연성에 대한 억압을 전제로 한 것이며, 오히려 그 자체 인간의 야성에 역행하는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말은 흔히 그렇듯 실추된 도덕적 인격을 추스른다는 의미보다는, 인간 내면의 본성, 자연성, 야성, 욕망, 무의식 등의 제도에 의해 억압된 온갖 이질적인 계기들을 문명화의 저편으로부터 다시 거둬들여야 한다는 의미로서 이해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과 동물과 자연은 야생과 야성을 매개로 해서 서로 유기적인 삶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으며, 그 진정한 생태적 환경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병두_양치기 소년의 불안_함석판_160×160×720cm_2006 박민규_ 달팽이의 꿈_혼합재료_35×80×27cm_2006 배숙녀_사라지다..._혼합재료, 가변설치_2006 신성호_즐거운 로드_철 용접, 테라코타_130×360×300cm_2006

중랑천변에 설치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류신정, 박민규, 양태근의 작업들은 삶의 터전, 존재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을 주제화한다. 먼저, 류신정은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는 형상으로써 자연생태환경이 되살아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낸다. 물고기 형상은 동시에 정자 혹은 정충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의 근원이나 생명의 씨앗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민규는 중랑천이 정화되어서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달팽이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형상화한다. 더불어 양태근은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의 형상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주지시킨다. 그 알은 존재의 생명, 자연의 생명, 지구의 생명으로까지 그 의미가 증폭되면서 생태환경에 대한 윤리의식을 일깨워준다.

양태근_터-지킴이_철, 오브제_2006 연기백 _PET_Pet 병_300×200×200cm_2006 이가람_然-생존_철 파이프 밴딩 , 철판, 볼팅_500×300×200cm_2006 이승아_섬_가변 설치, 혼합재료_2006

정국택과 차기율은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자연의 지평 너머의 자연의 원형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자연의 원형이란 원(圓)이라는 기하학적이고 관념적인 형상으로서 나타난다. 정국택은 원형의 스테인리스스틸 판을 설치하는 방법으로써, 그리고 차기율은 비정형의 자연석을 둥글게 재구성하는 방법으로써 자연의 원형을 형상화한다. 여기서 원은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는 자연의 본성을 암시한다. 즉 원은 자연의 자족적인 성질과 함께 자연의 타자에 대한 포용력과 상호관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차기율의 조형물에서는 전통적인 성소의 신화적 의미가 실려 있으며, 그리고 원을 이루고 있는 자연석 하나하나가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를 주지시켜준다.

이유미_그를 기다리며..._가변 설치, 강관파이프, 시멘트_2006 임승오_미래에 발굴 된 물고기_혼합재료_200×240×60cm_2006 전신덕_나른한 오후_철_24×120×150cm_2006 정국택_Mirror_스테인리스, 철_110×110×70cm_2006

김호진, 이승아, 배숙녀, 임승오, 문병두, 남지, 연기백, 최혜광 등의 작업은 문명의 폐해와 이에 따른 경고를 주제화한 것이다. 이들 중 김호진은 중장비의 거대한 바퀴를 통해서 자연을 훼손하는, 자연의 허리를 가르고 마구 길을 내는 문명의 폐해를 비판한다. 이승아는 변기 속에 식물이 자라는 형상으로써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오폐수의 정화와 같은 리사이클링 환경의 실현이 전제돼야 함을 주지시킨다. 배숙녀는 인간의 이기심과 오염에 의해 마침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은 중랑천변의 다리 구조물을 이용한 설치작업으로서, 그 자체 장소특정성의 개념에 맞닿아 있으며, 야외설치미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전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임승오는 발굴된 물고기 화석 형상으로써 문명의 폐해로 인해 중랑천의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진 미래(어쩌면 현재일지도 모를)를 가정한다. 물고기 화석을 발굴한다는 작가의 발상 자체는 고고학에 연유한 인문학적 개념과 조형 개념을 결합시킨 것으로서, 소위 학제간연구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경우로 사료된다. 문병두는 거대한 나팔 형상의 조형물을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의 현재를 경고한다.

정채희_버들치에게 띄우는 편지-버들치에게_가변설치, Pet병_2006 주송열_꿈_철_100×300×100cm_2006 차기율_순환_혼합재료_300×300×300cm_2006 최용선_오랜 기다림_나무판재_210×100×70cm_2006

인간을 향한 이와 같은 자연의 경고는 남지, 연기백, 최혜광 등의 작업에 와서는 돌연변이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환경오염과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돌연변이유발유전자, 변종동물, 이종동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변형동물들이 남지의 작업에서는 세기말적 비전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서 형상화돼 있다면, 최혜광의 작업에선 유아적 상상력이 개입된 아이러니의 형태로서 나타난다. 이와 함께 연기백의 작업은 자연이나 동물이 한갓 애완의 형태로 축소되고 왜곡된 현실을 풍자하는 한편, 그 형상이 일종의 부드러운 조각의 한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정채희는 밀봉된 페트병 속에다 버들치에게 쓴 편지를 담아 강물에 띄우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여기서 버들치는 자연을 상징하며, 이로써 작가는 자연환경의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전한 것이다. 또한 주송열은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을 물에 띄운 설치작업으로써 물고기의 회귀를, 자연의 회귀를 염원한다. 작가는 특히 부력을 이용하여 철제조각을 물에 띄우는데, 이는 일종의 수상조각으로 범주화할 만하다. 그리고 최용선은 폐가구와 같은 각종 폐목을 재료로 해서 개 또는 야생동물의 형상을 재구성한다. 이렇듯 폐기처분된 재료에선 삶의 체취가 묻어나며, 재생과 함께 자연의 순환원리에 대한 공감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거대한 물고기 형상을 조형화한 이가람의 조형물은 그 스케일이나 소재를 다루는 면에서 일종의 대지예술과 연관된 야외설치조형물에서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최일_어떤 기다림_polyester(coppered)_250×110×245cm_2006 최혜광_기린인척_에폭시_70×180×300cm_2006 한희철_금고기_혼합재료, 가변설치_2006

이처럼 조형물들 중에는 단연 물고기와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문명에 의해 변방으로 내몰린 자연회귀에 대한 염원과,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생태환경의 복원을 바라는 작가들의 바램이 내재화된 것이다. 이를테면 문명의 품에로 되돌아온 야생의 고양이(살쾡이)가 강변을 굽어보고 있는가 하면(김병진), 마치 원시적 자연에서처럼 야생동물이 강가에서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다(신성호). 그런가하면 동물들이 아예 사람처럼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기도 한다(이유미). 자연과의 상생의 삶을 바라는 작가들의 기원이 이처럼 동물에다가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의인화의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면(전신덕),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이 되는 일체화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최일). 때로는 황금물고기와 같은 비현실적 존재를 통한 일종의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형태로도 나타난다(한희철).이러한 바램과 욕망의 밑바닥에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깔려있다. 즉 그 자체 자연을 결여하고 있는 현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 자연과 괴리된 현실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결여에 대한 자의식이나 부정의 정신성은 예술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중랑천에 버들치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작가들의 욕망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 고충환

Vol.20061028f | 중랑천 프로젝트-버들치를 기다리며...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