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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12_목요일_06:00pm
갤러리킹 기획초대전
작가와의 대화_2006_1029_일요일_05:00pm
갤러리킹 서울 마포구 서교동 327-15번지 2층 Tel. 02_6085_1805 www.galleryking.co.kr
공간이란 모름지기 인간의 의해, 즉 시선의 반경과 신체의 움직임에 의해 구성된다. 공간은 허허벌판에 가져다 놓은 바위와 같은 건축적 요소로 시작되었으며 삶의 공간을 창조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인류의 찬란한 건축 문화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공간은 생성 후 그 창조 의지를 다하는 듯해 보인다. 공간 안에서 인간의 활동은 개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그 바탕엔 이미 생성되어있는 공간의 논리에 대한 순응이 깔려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몸에 체화된 것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있어 공간은 이미 언어처럼 일종의 규약이 됐다. ● 이해민선이 '임대공간변이체'전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로봇의 형상이며, 그것의 소재는 건축 평면도이다. 다양한 형상의 로봇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그의 로봇 작업에서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로봇이라는 외피가 아니라 로봇을 구성하고 있는 원리, 즉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재구성이다. 작가는 현존하는 공간의 논리를 무시하며 건축 도면을 해체시키고, 확대하고, 축소하기도 하면서 무모한 짜집기를 시도한다. 신기하게도 작가의 비논리적 구성은 건축 도면의 평준화된 약호로 인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매끄럽게 조립된다. '임대공간변이체'는 임의적인 공간들이 변이하여 구성된 일종의 돌연변이 생명체를 의미한다. 그의 작업에서 건축 공간은 기존의 규약에서 벗어나 콘크리트의 육중함을 던져버린 자유의 몸이 되어 다양한 구조로 조합된다. 작가는 벽의 한계에 부딪히고, 정해진 동선을 체득하며, 버겁게 공간을 통과하던 인간이 비대한 건축 기호의 집합체에서 스스로 변이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상세히 보여준다. 변이 과정 후 자신을 이루었던 총체적이고 완결된 공간을 배반하고 탈출하는 로봇의 모습은 공간뿐만 아니라 규정된 사회의 틀 속에서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해민선의 작업이 정말로 무모해 보이지는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갤러리킹
이해민선의 '설계로봇' 변신방법 ● 이해민선의 작업은, 이를 테면, 손가락으로 노트북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의 소리나 리듬감을 포함하는 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가볍게 톡톡거리며 문자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 눈앞에는 생각이나 판단, 다짐, 공상, 감정 따위가 물질화되어,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요만큼 똑 떨어져 생겨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것들을 한참 들여다보노라면, 자기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여기기 힘든 생경함과 이물스러움 끝에 어쩔 수 없는 친숙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해민선의 대학원 과정에서 얼핏 보았던 드로잉노트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꼬물거리는 생물 같은 것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끼어든 단상의 기록이나 사적인 메모도 - 내용전달이라는 문자의 의무보다는 - 이 생물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찍부터 그는 문자와 이미지, 또는 머리와 손의 치환이나 병렬 혹은 도치라는 드로잉 작업의 기본적인 작동방식을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건물의 설계도나 평면도가 드로잉노트에 잠깐씩 등장했던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필력과 자유연상 방식을 보여주는 유연한 드로잉들에 비해서 딱딱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강했던 건물 평면도의 선이나 각도, 그 배열방식은, 확실히 사고의 전개나 마음의 연장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 평면도가 지니는 이러한 한계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생각이 도약하도록 돕는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건물 도면과 실제로 건축되는 건물 사이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관계의 양상들이 있다. 평면적인 구조가 입체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변화들은 한편으로는 설계도에 준하는 것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없이 설계도를 변경하고 재조정하는, 일정정도 설계도에 반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설계도의 시각적인 제한과 물질적인 한계는 우리의 사고를 억압하는 작용을 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수많은 전개방식의 입체성을 미리 담보하고 있는, 그 출발의 모티브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해민선이 건물 평면도나 측면도를 포함하는 다양한 도면작업으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을 때, 일단은 그의 다른 작업처럼 유희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난다. 퍼즐의 조각이나 블록 쌓기의 모듈처럼 이 도면들은 연장과 축적, 확장과 수축, 방향전환과 편집 등 노동집중적인 놀이의 시간을 거치면서, 기이한 곤충이나 생물들, 어찌 보면 산해경에나 오름직한 날짐승들로 재탄생한다. 그러니까 이전의 드로잉노트에 남겨져 있던 생명체들의 형상과 유기체적인 연결방식이 이러한 평면도 모듈을 통해서 재구성됨으로써, 원래의 평면도에 남아있던 기계적인 반복성과 건축적인 관성이 급격하게 감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설계-생명체의 배경으로 간혹 등장하는 도시 풍경이나 넓은 토지, 거대한 운석 덩어리들도 당대성을 재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SF적으로 전도된 리얼리티에 대한 인용으로 보는 것이 옳겠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설계-생명체가 그 기계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로봇의 형태로 '변신'한다. 이 변신은 한편으로는 로봇의 거대한 규모를 돋보이게 하며 그 운동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면도의 구성요소들을 분절, 재조립하는 보다 미시화된 방식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반된 방향은 공히, 건축물의 평면도를 일종의 캐피탈로, 나아가 사회의 각종 제도에 대한 상징으로 접근해 간다. 재벌기업들의 고층빌딩들이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게 되고, 이국적인 이름을 한 부르주아들의 아파트단지들이 도시민의 유토피아를 묘사하게 되며, 스펙터클한 문화건축물들이 예술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이 씨즌에, 이 젊은 작가가 작동시키는 변신로보트가 얼마나 강력한 포스를 발산할지 지켜볼 일이다. 알다시피 포스야 말로 모든 힘의 총합에서 나온다. ■ 백지숙
Vol.20061022d | 이해민선 드로잉·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