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見巨濟-그림으로 만나는, 그림 같은 거제도(圖)

거제시문화예술재단 3주년 기념展   2006_1020 ▶ 2006_1118

김선두_行-바람의 언덕_캔버스에 유채_120×145.5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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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20_금요일

전시구성 1부 / 2006_1020~2006_1103 강운_김성호_김재학_김종원_박성열_이원희_장이규_장태묵_정우범_조진호_홍준기_엄윤영_이동국 2부 / 2006_1104~2006_1118 강경구_김선두_김춘자_노석미_박경인_박병춘_안윤모_이인_임택_정복수_최석운_최성훈

주최_거제시문화예술재단

거제문화예술회관 미술관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426-33번지 Tel. 055_680_1000 www.geojeartcenter.or.kr

거제시문화예술재단 3주년 기념전 ● 탐방지로는 관광지로서의 거제도 보다 지역 정체성을 찾기위한 여정으로 진행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최초 첫승을 기념하여 조성한 옥포대첩기념공원, '한국의 하롱베이'란 별칭을 갖고있고 영화 '은행나무침대' 촬영지인 홍포, 여차 지역, 무신정권에 의해 왕권을 찬탈당한 고려 의종이 유배와서 권토중래를 도모하던 폐왕성터,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한 서복과차 전설이 담겨있는 해금강, 세계 최고의 조선소 대우조선해양, 분단극복을 위한 평화와 상생 체험공원인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청마 유치환 생가, 바람의 언덕 및 기타 유명 문화명소와 관광지 등을 탐방했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천년의 역사, 문화예술이 조화로운 환상의 관광지 거제도를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독창적인 조형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의 개성 있는 시각으로 표출된 작품들과의 만남은 거제시민들에게 자랑스러운 거제에서 살고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고 예술을 사랑하는 관광객들에게 문화적 볼거리 제공 차원에서 '그림으로 만나는, 그림 같은 거제도(圖)'기획되었고, 미술기행은 거제시 일원에서 8월 18일(목)부터 20일(토)까지 2박 3일 동안 가졌었다. ■ 그림으로 만나는, 그림 같은 거제도(圖)展

김성호_거제문화예술회관 야경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_53×72.7cm_2006

그림으로 만나는, 그림 같은 거제도(圖)전 미술기행에 부쳐 ● 바람, 아! 바람. 8월 늦은 오후의 햇살은 꼬불꼬불한 14번 해안 도로를 따라서 비추었다 사라졌다 한다. 태풍은 더 먼 바다 그 어디에서부터 서서히 거제를 향해 몰려온다. 아직 파도는 잔잔했지만 가만가만 바람은 불기 시작한다. 지금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모호하다. 비릿한 바다 내음. 우린 지금 신선대를 지나 바람의 언덕으로 향해 간다. 우린 상당히 들떠있고 거제의 속살에 열중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은 과연 이름 값을 한다. 포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향해 일행은 스케치북 하나를 옆에 끼고 오르기 시작한다. 강해진 바람은 내가 쓰고 있던 연두색 리복 모자를 날려 자주색 그물망에 걸리게 한다. 주인 손을 떠나 펄럭이는 모자가 위태롭다. 20여명의 일행은 바람의 언덕에 제 각각 편한 모습으로 바닷바람을 맞는다. 이번 답사의 첫 감동이다. 해풍에 소나무는 흔들리고 고깃배는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정착되어 있다. 지는 해는 부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정념을 쏟아내고 있다. 검은 새끼염소 두 마리는 어미를 찾는지 언덕을 오르며 울고 있다. 절벽에 핀 보랏빛 엉겅퀴는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해 꽃잎은 떨어지고 가녀린 꽃대만 허우적대고 있다. 항아리 식혜를 파는 포장차에서 흘러나오는 엄정화의 노래가 흥을 돋운다. 우린 삼삼오오 모여 저물어 가는 여름바다를 탐닉하고 있다. 바닷바람에 파도는 등대마저 삼킬 듯 점점 더 야수성을 드러낸다. 부딪쳐 일구어 내는 하얀 포말은 무심히 서 있는 등대를 뒤로하고 멀어진다. 땅 끝 앞의 절벽은 아가리를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괴수와 같이 서있다. 달구어진 저 식욕을 어찌 잠재울 수 있을까. 젊은 처자라도 한 명 안겨주어야 하나. 잠잠해질 것 같지 않은 저 파도의 격렬함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화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일행모두 남해바다와 바람이 일구어내는 장관에 넋을 잃고 있다. 바다 위에 알알이 박혀있는 섬들은 나타났다 또 사라진다. 인연이었나.

엄윤영_양지암 가는 길_캔버스에 유채_130.3×162.2cm_2006

제2 열람실, 215번. 서울 정독도서관. 지금 내 자리 번호이다. 김이선 실장의 전화 한통은 내 가슴을 뜨끔하게 했다. 거제 답사 자료 독촉이었다. 나는 거제 답사기를 오늘 끝내야 한다. 바람의 언덕 8월 17일 현장에서 쓴 바람, 아! 바람. 글을 읽으며 그 날의 감흥을 떠올려 본다. 도통 답사 중 아침부터 먹어 제낀 바다 해산물 생각뿐이니 글이 모아 지지 않는다. 몇 번의 답사후기 글쓰기 경험도 정확히 35일이 지난 지금 다시금 재생은 충분히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부지런히 밥값을 해야 한다. 8월 17일 3시 10분경 거제문화예술회관에 작가들은 속속 도착하였다. 김형석 예술기획부장의 간단한 답사일정 소개와 함께 여러 편의 차량으로 신선대를 시작으로 답사는 시작되었다. 늦은 오후 거제의 햇살은 따사롭고 평화로웠다.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을 지나 홍포의 일몰을 보기 위해 답사 차량은 일렬로 덜컹거리는 비포장 해안도로를 달렸다. 홍포-여차 전망도로는 아직 아스팔트 포장이 완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오히려 바깥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행객들을 위해 잘 지어진 유럽풍 펜션들 보다 현 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인 크고 작은 집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특히 파란색 물통들이 재미있었다. 집집마다 옥상에 설치된 큼지막한 플라스틱물통들은 물이 부족한 바닷가 마을의 색다른 볼거리이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잠깐 스쳐 바라보지만 그 물통 속 애환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올망졸망한 집들에서 왜 오경환 선생님의 장승포항 그림이 생각나는지 알 수가 없다. 해는 완전히 기울었다. 홍포의 바다는 잔잔했다. 바람이 멈춘 것이었다. 드문드문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은 사람이 살지 않았다. 수면 위에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그들은 저마다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 기대했던 멋진 일몰은 없었지만 몇 번의 답사 끝에 볼 수 있었던 저 대, 소병대도만은 반가웠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검푸른 바다, 저 붉게 물든 흐린 하늘, 검은 섬. 그림이 될까. 첫째 날밤 시인의 마음에서 저녁식사는 흡족했다. 친분이 있는 작가와 처음 인사하는 참여작가와의 어색한 동거도 한잔 술에 모두 의기투합했으며 그 기운은 숙소로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숙소 주인아저씨의 색소폰 연주와 비교적 젊은 박병춘, 장태묵 선생의 무대활약은 대단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들었다.

박병춘_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거제도를 날다_한지에 수묵_120×160cm_2006
임택_옮겨진 산수유람기063_디지털 프린트_110×138cm_2006

둘째 날 아침 식사 전 숙소 마당을 거닐며 달개비 꽃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반가웠다. 서울 태생인 나는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기고부터 자연에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사군자 한번 본 적이 없으면서 선생님이 채본 해준 난 꽃을 그리고 있었다. 그 의미도, 그 필요성도 못 느끼면서 말이다. 진정성 없는 그림에서 과연 향기가 났겠는가. 여행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영상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냄새를 맡아 꼭꼭 씹어 먹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거제는 이렇다. 거제는 우리나라 섬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섬이고 1971년 거제와 통영을 연결하는 거제대교가 완공되면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몽돌, 동백꽃, 천연 기념물인 팔색조, 해금강, 기암괴석, 해안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섬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고통의 흔적을 도처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곳. 12세기 고려 때의 패왕성, 16세기 조선중기 임진왜란 때의 옥포대첩, 20세기 6.25동란 때의 거제포로수용소 등 힘겨웠던 우리나라 역사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역경을 헤쳐나간 땅이다. 지금은 세계 제일의 대우와 삼성 조선소가 거제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위대한 섬인 것이다. 갑자기 답사객의 마음은 아침부터 바쁘다. 확인해서 체크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청마는 스무 살 내 가슴을 한 차례 휘젓고 간 시인이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라고 시작하는 詩 "바위"는 힘겨운 군생활 내내 나를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바위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청마를 뒤로하고 산비탈을 올라 패왕성으로 향했다. 한 차에 동승한 강경구, 김선두, 최석운, 박병춘 선생의 유쾌한 음담은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애인을 빼앗긴 염소의 마지막 빼- 울음소리를 김선두 선생의 어눌한 흉내는 유쾌하였다. 사등면과 둔덕면에 걸쳐 있는 우봉산. 그 산 자락에 세워진 패왕산성은 12세기 초 정중부의 난 때 고려의 왕 의종이 유배와서 삼년 동안 살은 성이다. 거제의 역사는 어둡다. 그만큼 중심부에서 먼 변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성을 타고 올라 산 정상에 올라보니 통영, 마산, 창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방이 바다였다. 과연 거제는 섬이었다. ● 시장이 반찬인가. 그 어떤 안복(眼福)이 입의 즐거움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멍게 비빔밥의 위대함이여. 싱싱한 멍게의 갯뻘을 제거하여 오래 숙성시킨 다음 참기름, 깨소금, 김가루 등을 넣고 따끈따끈한 공기밥을 비벼 먹는 음식. 여기에 같이 차려 나오는 생선국은 살아있는 자연산 우럭, 뽈락, 놀래미, 도다리, 광어를 방금 잡아 끓인 것으로 개운하고 비린내가 없으며 그 맛이 일품이다. 단 돈 만원, 잡숴만 봐, 백만석 식당에서의 점심은 정말 환상이었다. 진도에서 산낙지를 잘게 쪼아 겨란 노른자에 참기름을 넣어 먹은 기억 하나. 강원도 대진항에서 이른 아침,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삼식(숙)이탕을 가자미식혜와 먹은 기억 둘. 남원 추어탕. 언양 불고기. 춘천 막국수 등등...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즐비하지만 또한 거제를 자랑하는 추천음식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다. 그 덕에 절주하던 강경구 선생은 스스로 병권을 잡고 맹장의 위용을 갖추시고. 나는 낮술에 취해 거제의 희망이라는 대우조선소의 버스투어는 밀려오는 졸음에 무었을 보았는지. 그저 안내양의 예쁜 얼굴과 최성훈 선생의 이른 귀가로 아쉬운 작별만이 기억난다. ● 1592년 5월 7일 이순신 장군이 최초로 왜적을 섬멸한 곳, 옥포동 아주리에 위치한 옥포대첩 기념공원은 참연한 역사가 서리고 남해를 굽어보며 호국의 늠름한 우국충절의 정신을 길이 계승할 성지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옥포루에서 대우조선소의 위용을 바라본다.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은 왜적을 향해 돌진하던 거북선의 기상을 닮아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을 취하라. 장군의 준엄한 목소리는 대금산 줄기, 바다 쪽빛 푸른 물결 옥포만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던 작가들 가슴에 한 움큼의 묵직한 그 무엇이 자리 잡게 하였다.

장이규_푸르른 날_캔버스에 유채_60×145.5cm_2006
박경인_Islan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1×179cm_2006
이인_색색풍경2 -꿈에 거제를 보다_한지에 채색_90×261cm_2006

셋째날 이른 아침 숙소, 노천극장의 무대는 텅 비어있었다. 전날 밤의 환호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쓸쓸한 적막만이 감돌뿐이었다. 무심히 쓰러져 자는 개새끼가 겨우 숨 쉬며 호흡할 뿐 모든 것은 정지된 듯 하였다. 아침 해가 없는 바다는 검푸른 색이다. 바다 위 알알이 박혀 있는 점점은 굴양식장이라 했다. 어젯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데요."하며 등 뒤에서 인사하는 정복수 선생의 말이 정겹다. 일행이 잠든 산장 아래로 천천히 걸어서 바닷물에 손을 담근다. 선창가는 지난해 태풍으로 부서진 배에서 나온 폐자재들로 어수선하지만, 폐선 위에 올라 맞는 아침 찬 바닷바람은 상쾌했다. 수없이 많은 고기를 잡아 선주의 가족을 부양했을 폐선은 비록 부셔졌지만 목선에 칠해진 선명한 푸른색만은 그때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태풍은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외도 가는 길은 한적했다. 일행은 말이 없었고 차창을 때리는 빛줄기 소리만 요란했다.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거제의 배려에 감사했다. 비로 인해 해금강 일주는 포기해야만 했다. 거친 돌산 위에 자란 짙푸른 나무들이 거친 파도 비바람을 즐길 뿐 답사객들은 카메라와 스케치북에 해금강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거대한 한 무더기의 돌산, 그 사이로 조그마한 또 돌산. 자연의 신비한 오묘함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듬성듬성 떠있는 부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치는 대로 흔들린다. 김성호 선생은 낚시하다 어디론가 사라졌고 최석운 선생은 전날 먹은 술에 아직도 얼큰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었다. 비 오는 포로수용소의 분위기는 스산했다. "공화국으로 도라가자."라는 방패연의 새겨진 문구와 도끼, 낫, 망치, 칼 그림은 간담을 서늘케 했다. 78수용소 게이트와 위병소, 9.17폭동 400여명 반공포로의 처형. 나는 거제의 두 얼굴을 보았다. 이정재의 얼굴이 크게 클로오즈업 된 흑수선 영화 포스터만이 내 기억에 있을 뿐, 그날의 참상을 애써 설명하는 수용소의 짓누르는 아픔은 전후세대인 나로서는 잊고 살았던 역사였다. 답사는 끝이 보였고 거제대교에서 모두 모여 간단한 해단식을 가졌다. 거제는 추억으로 가슴에 묻은 채 참여작가들은 훗날을 기약했고 광주로,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양평으로 각자의 삶터로 남해의 노을을 뒤로하고 우린 헤어졌다. 짧은 답사일정이었지만 25명의 화가는 거제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희망을 체험했다. 그 감회는 작가들 몸 어느 구석구석에 들러붙어 인생을 살찌우며, 작품의 투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물들을 가지고 거제시문화예술재단 3주년 기념전을 한다니 벌써 나는 가슴이 뭉클하다. ■ 이인

Vol.20061021d | 夢見巨濟-그림으로 만나는, 그림 같은 거제도(圖)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