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s-12th avenue

권자연 사진설치展   2006_1019 ▶ 2006_1105 / 월요일 휴관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展_200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브레인 팩토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1019_목요일_06:00pm

책임기획_김윤경(독립큐레이터)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20여명의 작가들에게 작업실 공간으로 주어졌던 맨해튼의 12번가에 위치한 낡은 건물, 이곳에 머무르며 작업했던 작가의 5개월간의 기억을 기록한 사진 설치 작업. 하나의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되어가는 종적(縱的) 경험뿐만 아니라, 낡은 건물 공간에 함께 머무르던 작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사다리나 전깃줄과 같은 물품들, 요청이나 협조, 때로는 경고를 위해 주고받았던 메모 등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주었던 사물들이 다양한 맥락에서 발견되는 순간들을 목격한 횡적(橫的) 경험을 기록해낸 이미지들을 통해 개인과 공간,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 2004년 11월, ISCP(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오픈 스튜디오. 812호 권자연의 작업실.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과는 달리, 하얗게 새로 칠해진 작업실의 벽은 말끔했고 작업실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방안의 풍경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수히 박혀있는 작은 못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분홍색 실. 1994년 처음 이 프로그램이 생긴 이래, 이 작업실을 거쳐 간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른 필요에 의해, 각기 다른 용도를 위해 못을 박았던 자리에 남아 있는 작은 구멍들은 지나간 시간, 스쳐간 사람들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매끈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벽면, 흠집이 나거나 마모되어 푹 패인 바닥... 오랜 세월의 흔적은 매번 새로이 페인트칠을 할 때마다 말끔히 가려지는 듯하지만, 세심한 권자연의 눈과 손은 그 희미한 자취마저도 어김없이 찾아낸다.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더듬어 지나간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작업은 이 공간을 스쳐간 사람들의 경험, 그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보이지 않는 것, 가려져 있는 것, 지나쳐버린 것, 그래서 잊혀진 것, 이러한 것들을 환기시키는 권자연의 작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행위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공간과 그 공간이 기억하는 시간들을 발견하고 되살려내어 서로 이어주는 긴긴 과정에 가깝다. 특정 공간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머무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조각들을 발견해내어 그것으로 이야기를 엮거나 상상이 이끄는 대로 공간 속에 다시 펼쳐놓는 그의 긴 여정은 그래서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장소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대학시절 학교 작업실의 구석진 벽에서,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해있던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후미진 담벼락에서, 낡은 도서관의 옥탑 벽면에서 권자연은 어김없이 오래 전 그 곳에 머물렀던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해낸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것, 누군가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무엇, 누군가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무엇, 그곳에 그것이 존재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 무엇, 소극적이고 쭈삣쭈삣한 무엇"은 늘 그의 시선을 이끌고, 그의 손끝을 통해 표면으로 떠올라 숨을 쉬고,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이 순간, 작가의 상상과 공간의 기억이 조우한다.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이번 전시는 맨해튼의 12번가에 위치한 낡은 건물과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리고 같은 공간 속에서 머무르며 바라보고 사유했던 작가의 기록에서 발췌한 것이다. 기존의 작업실 공간이 아닌, 비어있는 낡은 건물의 한 층 전체 공간을 작업실로 제공 받은 20여명의 작가들이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하나의 공동공간을 각각 동일한 넓이의 구역으로 개인화해가는 과정은 개인과 공간,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비어있던 공간에 경계선이 생기고, 벽이 생기고, 길이 생기고, 주어진 공간에 적응하고 함께 생활하기 위해 규칙이 생기고... 일정한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듯하고, 개개인의 모습만큼이나 다르게 변모한 공간들은 어느새 그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닮아간다. 이렇듯,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해가는 방법은 하나의 메시지이며, 자신의 반영이다. 이러한 기록물들을 통해 권자연은 그 공간 속에 있는 당사자들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발견해낸다.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권자연_조각들-12번가 fragments-12th avenue_가변설치_2006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누군가가 남기고 간 오래된 흔적들을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발견하고 드러내왔던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이번 작업은 특정 공간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각기 다른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해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다소 변모된 접근법을 보여준다. 하나의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되어가는 종적(縱的) 경험뿐만 아니라, 낡은 건물 공간에 함께 머무르던 작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사다리나 전깃줄과 같은 물품들, 서로의 공간을 경계 짓던 간이 벽, 요청이나 협조, 때로는 경고를 위해 주고받았던 메모 등이 다양한 맥락에서 발견되는 순간들을 목격한 횡적(橫的) 경험을 기록해낸 엄청난 양의 이미지들 역시 이전의 작업 태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즉각적인 채집과 기록은 2004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능해졌는데, 이로 인해 작가의 탐색과 상상은 보다 폭넓은 범위로 확장된다. 그러나, 단순히 순간순간을 기록해낸 듯한 이미지들에서도 타인의 경험에 대한 권자연의 작가적 개입은 발견된다. 매끄럽고 차가워 보이는 사진작업의 표면에 살짝 회화적인 터치를 남기거나, 공간과 행위의 결과물들을 기록한 이미지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자신만의 아카이브로 구축해가는 과정은 현장 드로잉 위주의 이전 작업만큼이나 적극적인 개입의 의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작업의 외형이나 작업을 보여주는 형식이 다소 변모된 이번 전시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것들에 최소한의 행위를 덧붙임으로써 익숙해진 일상의 풍경을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그의 작업이 단지 공간, 의미 없이 지나쳐버리는 일상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경험을 드러내는 흔적들이 작가의 경험으로 투영되어 다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 김윤경

Vol.20061019e | 권자연 사진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