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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11_수요일_05:00pm
후원_HP Korea
학고재 제3전시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39_4937 www.hakgojae.com
디지털과 인사하실래요? ● 디지털 사진의 최초 등장은 적어도 감상자에게는 그리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이슈가 아니었다. 감상자의 입장에선 일말의 편리함도, 일말의 시각적 진화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사진이 지금까지 한 차례의 위협조차 없이 발달해 온 것은 프로세스의 디지털화가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더 없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즉각적인 결과 확인, 암실작업과 스캐닝의 생략, 그에 따른 비용 절감 등 디지털 프로세스의 갖가지 장점은 근본적으로 아날로그가 해결해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디지털의 매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서, 아날로그에 못 미치는 화질 문제 따위는 곧 덮어버릴 수 있었다. 아울러 PC와 인터넷이 오늘처럼 퍼져버린 이상 아날로그는 적어도 산업적으로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사진의 경우,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가 CD와 DVD로 넘어가던 역사적 순간과는 다르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꽤 긴 시간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의 이유 없는 저항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진의 디지털화는 아날로그 사진의 품질에 근접해가려는 디지털 진영의 노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사진에 관한 사람들의 이야기조차도 승승장구하는 디지털의 장밋빛 미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과연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얼마나 육박했느냐에 관한 반신반의의 관전(觀戰)에 가까웠다. 그 관전의 포인트는 흔히 촬영과 프린트에서 구현되는 색감과 계조, 그리고 프린트한 사진의 보존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관전의 포인트가 수명을 다해가는 듯하다. 성장을 끝낸 아날로그와 진화하는 디지털의 대결 국면은 디지털이 원숙함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 색감, 계조, 보존성, 모든 면에서 얼마 후의 역전까지도 예상케 하는 현재의 국면은 마지막 남은 아날로그의 아성, '사진예술'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알다시피 사진 산업을 이끄는 '기념사진' 분야는 이미 디지털로의 진화를 마쳤다.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전원에 의존하지 않는 공예품으로서의 기계에 대한 향수이거나, 데이터로서 존재하게 된 새로운 개념의 사진에 대한 환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화질 논쟁으로 뒷전에 밀려 있던 디지털 사진의 숨은 장기들을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구성연의 사진은, 그의 작업이 늘 그랬듯이 사물의 낯선 결합으로 반전의 유쾌함을 준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해서 선비의 절개와 동양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매화가, 들여다보니 매화가 아니라 따뜻해야 제 맛인 서양 문화의 상징, 팝콘이라니! 희디흰 색깔과 모양새가 너무 닮아서 실소를 자아낸다. 그런 그의 작업 절반은, 공간을 만들고, 사물로 그 공간을 꾸미는 일에 바쳐진다. 오브제의 결합에서 시작해 연출된 공간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는 최근의 작업은 사진 속 공간의 스케일만큼이나 시원한 크기의 이미지로 전시되어야 적격일 것들이다. 그가 선호하는 채도 높은 색과 점차 커질 전시작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디지털은 그의 순발력과 아이디어를 거들며 더 빛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구성연의 사진이 사물의 생경한 만남을 모의한다면, 조성연의 사진에는 일상의 친근한 사물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구성연의 경우처럼 결합했다기보다 오래 전부터 거기에 놓여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시간의 더께를 느끼게 한다. 색감도 그렇다. 명징한 구성연의 색감에 비해 그의 사진은 오랫동안 빨아 쓴 무명천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색들이 주조를 이룬다. 조성연은 최근 들어 이 미묘한 색깔 내기에 많은 정성을 들이는 듯하다. 암실에서 이런 톤을 일관성 있게 조절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사진의 모티브는 이전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옛것, 여성적인 것, 꽃 등을 주로 하고 있으나, 이전과 다르게 한결 밝아진 화면과 탈색된 색감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디지털 프로세스의 영향이라고 본다.
김화용의 작업은 사진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일상의 대화에 완성이 없듯이 사진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를 바라는 그에겐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작업은, 말하자면 아이들과의 사진 커뮤니케이션이다. 섬마을 아이들, 대안학교 아이들, 사회복지관의 아이들과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고, 찍은 디지털 사진을 전용 프린터로 즉석에서 출력한 뒤, 이야기를 더하고, 사진을 조합하면서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해가는 작업의 흐름은 그 자체가 김화용과 아이들의 호흡을 무르익게 하는 좋은 매개이고, 아이들에게는 늘 머물던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잠시 미끄러져 나오게 하는 신선한 공기 같은 것이다. 작가의 디지털 촬영과는 별도로 아이들의 손에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주어지는데, 여기에 찍힌 사진들은 후일 편지와 함께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김화용의 말마따나 디지털로 인사를 나누고 아날로그로 우정을 다지는 셈이다. ● 이번 전시 『디지털 미장센』의 이면에서 우리는 세 사람의 사진가가(지금의 사진이) 어떻게 디지털 환경을 체화해내고 있는지 읽을 수 있다. 사진의 메커니즘 의존도는 다른 장르보다 크기 때문에 찍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사진 기술은 탄생하고, 그 기술의 수면 위에서 새로운 사진은 다시 탄생한다. 사진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노정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다만 지금은 그 변화의 파랑이 조금 높을 뿐이다. ■ 김승현
Vol.20061011a | 디지털 미장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