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리는 기억의 풍경

이수철 사진展   2006_1011 ▶ 2006_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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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1011_수요일_06:00pm

작가와의 대화_2006_1014_토요일_03:00pm

갤러리 나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Tel. 02_725_2930 www.gallery-now.com

빛으로 그리는 기억의 풍경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가 기억의 자국을 따라간 것은 오르지 시각적인 자극물로부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삐꺽거리며 열리는 문소리, 누군가 찾아온 초인종 소리, 덜컹거리는 마차소리와 같은 청각적인 것으로부터 기억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산된다. 또한 기억은 차에 적셔진 마들렌 과자 향과 상큼한 들판의 풀냄새로부터 슬며시 드러난다. 기억이란 결국 시각이든 청각이든 혹은 촉각이든 어떤 자극물로부터 작용되는 주체의 지극히 주관적인 연상 작용이다. ● 이러한 연상 작용을 자극하는 또 다른 매개물이 있다. 그것은 시각적인 장관도, 향기 나는 꽃향기도, 상징적인 아이콘도 아닌 빛이 만드는 상황적인 인상(혹은 느낌)이다. 예컨대 우리는 흔히 어떤 시각적인 대상으로부터 우선 닮음 연상이나 유사 연상으로부터 지나간 기억의 대상을 탐지해낸다. 그러나 탐지 영역이 시각적인 범위를 벗어나 과거 낙인 된 상황적인 인상이 될 때 기억은 거의 추상적인 형태를 가지는 단편으로만 드러날 것이다. ● 이해할 수 없는 충동과 설명할 수 없는 회상의 부유물들, 이것들은 결코 의식적으로 시각적인 닮음 연상으로부터 호출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이러한 기억은 과거 빛이 만든 나만의 고유 인상으로부터 온다. 그것은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상황 이미지가 아니라 장면으로 방출되는 추상적인 느낌이다. 나의 사진은 이러한 빛의 기억을 드러내는 자국으로서 인덱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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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억은 시간에 의해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드러나지 않을 뿐 사실상 내재되어 있다. 엄밀히 말해 시간에 의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추상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있을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상자 속에 묻어 두었던 사진을 꺼내 본다는 것, 그것은 완전히 망각된 기억을 장면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변질된 기억의 인상을 추적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뇌 속에 저장된 기억 이미지를 다시 꺼내 본다면, 그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몽롱한 빛의 인상과 추상화된 이미지의 단편일 것이다. ● 나에게는 유년기시절 목격한 잊혀 지지 않는 수많은 빛의 기억들이 있다. 처음 본 텔레비전 이미지, 길가 끝없이 펼쳐 진 수은등, 그리고 수 만개 전구가 뿜어내는 화려한 공단의 불빛, 나를 자극하는 이 모든 기억들 역시 장면이 아니라 단지 추상적으로 낙인 된 빛의 인상들이다. 반대로 우연히 내 앞을 스치는 가로등 빛과 멀리 동네 어귀 포장마차 불빛의 인상은 불현듯 어릴 때 각인된 추상적 단편들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 내가 태어난 곳의 맞은편 바다 건너에는 울산 공업단지와 온산 공업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난 그 곳에 가 볼 수는 없었지만 밤마다 내뿜는 찬란한 불빛에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나는 가끔 낮에도 그 곳을 바라보곤 했지만 어린 나의 상상으로는 도무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그 곳에 화력발전소가 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때의 기억에 낙인 된 빛은 공단의 불빛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의 모든 기억을 감춘 장면의 단편적 부유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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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불빛의 실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친구의 집이 그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때의 기억을 따라 그곳을 촬영하러 갔을 때,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 내가 자란 마을뿐만 아니라 친구의 집도 내가 아는 길도 없어지고, 미로처럼 엉켜져 있는 도로와 공장들이 그 넓은 곳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도저히 끝이 어딘지 알 수없는 그곳은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의 미로를 방황하는 듯한느낌마저 든다. 옆으로 꺾어 졌다가 곧장 수직으로 뻗었다가, 하늘 위로 휘어졌다 다시 직선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파이프라인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에 대한 경외심마저 일으킨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둥근 기둥의 유류 저장탱크와 몇 년 전 기린 미술관에서 본 오오타니 모토히코(小谷元彦)의 둥근 공 모양의 우주선이 여기저기 불시착해 있었다. 이 낯선 광경은 유년시절 나를 그토록 설레게 했던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밤이 되어 하나 둘씩 불이 켜지면 이제 이곳은 더 이상 화학단지라는 이름을 벗고 나만의 상상이 가득한 기억의 혹성으로 변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의 위대한 변신인 것이다. ● 며칠을 더위와 싸워가며 야간촬영을 진행했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습기는 대단했다. 차안의 공기와 차 밖의 열기 사이의 온도차가 심해 차에서 내리면 안경에 김이 서려 먼저 안경부터 닦아야만 했을 정도였다. 조명등이 켜지면서 밤이 될 때 어디선가 야릇하기도 하고 역겹기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이 냄새는 이제 막 또 다른 기억의 인상을 들추어낸다. 그것은 영화의 이중인화처럼 한편의 기억 장면 끝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면서 지금까지 내가 간직한 기억의 파편들을 지우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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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몇 년 전 울산공단지역의 사철 죽지 않는 모기떼와 그 지역주민의 암 발생률에 대한 텔레비전 뉴스가 기억났다. 아마도 이 냄새가 원인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간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는 자기방어를 위한 독이 있다지만, 화려하고 거대하기 이를 때 없는 나의 우주에도 치명적인 향기의 독을 품고 있었다. 인간을 매료시킬 만큼의 유혹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혹성이 바로 내 기억 한 가운데 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의 딜레마 ... ● 사람을 죽일 수 도 있는 이 야릇한 향기 같은 독(毒)은 맡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상이 안 되겠지만 이런 냄새는 죽음과 악마 그리고 주술사를 연상케 한다. 13세기에는 청색은 죽음과 고통의 장소인 지옥을 표현했고, 붉은색은 사형집행인과 매춘부들에게 사용했다. 청색과 붉은색 이외에 다른 어떠한 것이 이 냄새를 비유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장소가 제공하는 냄새의 인상은 색의 인상으로 나타났고, 색의 인상은 점진적으로 냄새로 환원되어 온다. ● 나는 지금 포착한 새로운 기억과 과거로부터 있어 왔던 기억에 대한 이중 이미지를 사진에 담았다. 주로 조리개를 조아서 장시간 노출하며 촬영 순간 카메라를 흔들기도 하고 가끔씩 때리기도 한 것은 현재의 결정적 순간이 아닌 재생 불가능의 모호한 기억을 재현하고, 동시에 지금 내가 서있는 찰나의 순간과 그 순간 이전의 과거 그리고 곧 닥아 올 가까운 미래까지 수용하는 진공관(眞空管)같은 무시간의 차원에서 일종의 지속되는 시간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이란 찰나의 연속선상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란 과거와 더 먼 과거 그리고 미래와 더 먼 미래에 위치해있고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항상 현재 속의 과거임과 동시에 과거 인상 속에 드러나는 현재이다. 기억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만 존재하며 결코 구체적이지 않다. 사진속의 기억들은 더 이상 시각적인 장면의 닮음이 아니라 추상으로 낙인 된 빛의 인상들이고 그 인상들이 과거를 구성하고 기억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 역시 현재의 인상 속에 존재한다. ■ 이수철

Vol.20061010f | 이수철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