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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_2006_0921_목요일_03:00pm
학술토론회_오윤의 생애와 작품세계 일시_2006_1019_목요일_01:30pm_국립현대미술관 소강당 참가자_김지하(시인)_성완경(인하대학교 교수)_이성민(평론가) 이치로 하이루(평론가, 일본)_조인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일정_토론 : 13:30~16:30 / 질의응답 : 16:40~17:30 사회_강수정(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설명회_매주 금, 토, 일_01:00pm, 03:00pm
가족프로그램_매주 토_14:00~16:00(초등학교 4-6학년) / 선착순 40가족 어린이미술관(신청: 홈페이지 www.moca.go.kr / 담당 홍석주 02-2188-6065)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_2188_6000 www.moca.go.kr
국립현대미술관(관장 金潤洙)은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이를 민족예술 형식으로 승화·발전시킨 1980년대 현실주의 미술의 대표 작가 오윤(1946~1986)의 작고 20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회고하는 『오윤 : 낮도깨비 신명마당』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대표 작품인 판화 139점과 그 동안 잘 볼 수 없었던 유화 13점, 조각 20점, 드로잉, 판재,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품들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의 치열했던 시대의식과 창작세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부대행사로 대규모 학술토론회와 전시설명회, 가족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다.
초기작품 ● 주로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중반에 창작된 작품들로서 1969년 '현실동인' 제1선언에 참여하며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독창성 있는 표현을 다각도로 모색한 시기이다. 탈춤같은 우리나라의 전통 연희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세잔의 입체주의, 멕시코의 변혁적 리얼리즘 등 다양한 미술사조를 조형적으로 실험하였다. 이 시기를 거쳐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현실과 발언 ●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민족 정서를 담아내면서 민중의 심중에 다가서기 위해 목판화를 주 매체로 활동하였다. 불안한 시대상황을 투쟁적인 모성을 통해 나타낸 「대지」 시리즈,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직접 묘사를 피하고, 그들의 내면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따뜻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 「노동의 새벽」 등이 대표 작품들이다. 또한 유화와 혼합매체로 제작된 「마케팅 시리즈」는 자본주의 광고미학을 전통 도상인 지옥도 등을 통해 해학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역사의 비극을 민중의 '한'을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나간 「원귀도」 등도 그의 치열한 시대의식과 탁월한 조형언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은 모두 평범한 이웃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자, 우리의 역사이다.
낮도깨비 신명마당 ● 오윤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역사의 '한' 맺힘을 '신명'으로 풀고자 하였다. 목판에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칼 맛과 역동성으로 인해 '소리'나 '기(氣)'처럼 초월적인 것도 성공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었다. 문화적 전통이나 무속적 경향을 통해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한과 신명의 정서로 표현해 내었던 그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넘어 낮도깨비처럼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한바탕 신명 마당을 펼쳐보고 싶어한다.
소묘 ● 오윤은 수십 권의 스케치북과 작가노트를 남겼다. 이를 통해 그가 판화를 찍기 전에 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습작을 시도해 보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표현 방식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그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그는 평범한 민중들의 삶과 정서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세상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이미지의 전형성은 곧 친근한 공감으로 이어져 우리가 그들에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히 현실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이를 초월한 보다 더 '확대된 세계'로 함께 나아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1980년대 리얼리스트 오윤이 꿈꾸던 세계였을 것이다. ●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왜 다시 이야기되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사회적인 것, 확신 있는 것에 대해 소리 높였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늘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1980년대라는 시대를 넘어 낮도깨비처럼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오윤 ● 오윤은 해방 이듬해 태어나 나이 40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는 1980년대로서 이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험난했던 시대 중의 하나로 5월 광주민주항쟁, 신군부 정권의 등장 등 핍박과 항거가 거듭되던 시대였다. 그는 예술가로서 모순에 가득 찬 사회 현실을 꿰뚫어보고, 나아가 한민족의 억센 숨결과 파토스를 가장 독특하고 특징적으로 형상화한, 숱한 작품을 남겼다. 그가 1969년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최초로 현실비판을 시도한 '현실동인' 에서부터 1979년 이후 '현실과 발언'을 통해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로 거듭나기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예술관과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시대의식과 작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오윤 20주기를 맞아 회고전을 여는 취지도 이러한 그의 삶과 예술을 되돌아보자는 데 있다. ● 그는 짧은 생애 동안 현실 속에서 고통 받으며,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판화를 주 매체로 하여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풀어내었다. 또 이를 대중매체와 원활하게 결합할 수 있는 판화를 통해 민중들에게 다가갔다. 또한 판화는 흑백 대비의 강렬함으로 당시 우리 사회의 독특한 변혁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목판에 칼질을 새기고 파고 찍고 하는 힘과 몸이 움직이는 정직성, 칼 맛의 선이 풍기는 예리함과 생명력은 본래 조각을 전공한 그에게 적합한 매체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외에도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그동안 잘 발표되지 않았던 그의 유화, 혼합매체작품 및 테라코타 조각 등이 전시되며 아울러 드로잉, 판재,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료, 유품들도 함께 접할 수 있어 그의 치열했던 시대의식과 창작세계를 엿볼 수 있다.
Vol.20060924c | 오윤 : 작고 20주기 회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