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Association of Voronoi Art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6_0921_목요일_05:30pm
박관욱_박상현_박종규_이형주_홍승혜 참여공학자_김덕수_Kokichi Sugihara_Takaharu Yaguchi Jose Andres Diaz Severiano_Marina Gavrilova_조영송_김정민 김동욱_김재관_김재구_이창희_박노훈_류중현_서정연_원정인 디렉터_황인_김덕수_스기하라 코키치
Talk_2006_0921_목요일_05:30pm~06:00pm 주제_Voronoi Diagram as a Link between Science and Art 발표자_Kokichi Sugihara(영어로 진행되며 별도의 통역은 없습니다.)
주최_Association of Voronoi Art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파크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02_733_8500 www.iartpark.com
공간은 진화한다 ● 공간은 미술가들이 오랫동안 집요하게 추적해온 대상이었다. ● 현실 속에서 공간은 홀로 외롭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과 동거를 한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몸이면서도 때때로 양성구유체처럼 하나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몸이 실감할 수 있고 계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실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간은 사물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물에서 질료가 제거되고 나면 공간이 남는다. 공간은 사물 그 자체는 아니나 그 틀을 추상화하여 이해하는 데에 가장 유용한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 인간은 점, 선, 면, 입체 등의 차원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 그런데 사물은 마냥 상주불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생성, 변화, 소멸의 운명을 거듭한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는 사건이라고 한다. 사건은 시간의 축 위에서 발생한다. 공간에 비해 시간이라는 개념과 실체는 이해하고 접근하기에 매우 어렵다. 옛사람은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 하여 공간과 시간을 다룰 때 공간(우「宇」는 공간의 집)을 막연히 무한히 넓은 것으로 표현한 데 반해 시간(주「宙」는 시간의 집)은 거칠어서 아예 포착하기도 힘든 것으로 보았다.
오랫동안 미술가들은 시간과 사건이 배제된 채 공간과 사물만을 다루어왔다. 시간을 담고 싶어 했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포착하여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역사화에서 보듯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이 담기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공간과 사물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건이 아니라 단순한 스토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두고 시간과 공간의 범위와 성격이 명확하게 분리되고 구별되어 그것들이 다시 조직적으로 재결합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 표면적으로 보자면 시간의 흐름은 오늘날의 영상작업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공간과 시간 혹은 사물과 사건과의 관계가 명확히 정리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모두가 불분명하게 엉켜버려 한 덩어리가 된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미술가들이 공간 속에 어떤 형태로든 시간을 담고자 애썼던 시도는 인상파의 몇몇 예와 미래파에서 보인다. 인상파가 시간을 찰나적으로 좁혀나감으로써 시간성을 발견하였다면, 미래파는 순간적인 시간을 길게 늘어뜨려 시간을 담거나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시간을 표현하려 했다.
미니멀 아트는 공간에서 시간을 철저히 분리하여 공간의 순도를 절대적으로 높인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공간은 시간의 흐름을 배제하고 시간은 공간의 밀도 혹은 사물이 가진 질료감을 무시함으로써 이는 가능했다. 미니멀 아트의 경우 시간은 반복의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공간은 매우 균질한 것으로 가정되어 다루어진다. 이미 비현실적인 관념의 공간이다. 따라서 공간의 확장은 있어도 공간의 본질적인 변화 혹은 진화 같은, 더 이상의 추가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 사건의 추이에 따라 사물의 모습이 변하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도 함께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앞의 것은 자연현상에서 당연한 일이고 뒤의 것은 인간의 관념과 수학적인 계산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절대적인 공간과 절대적인 시간의 순도 높은 추출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의 영역 안에다 섞어 놓으면 시간으로서의 공간 즉, 사건으로서의 공간의 탄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 여기에 동원되어야 할 공간은 미니멀 아트에서 취급하는 얌전하고 균질한 공간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마찬가지로 거친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다행히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유클리트 기하학에서처럼 관념적인 공간뿐 아니라 자연계와 현실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이며 유기적인 거친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들 공간은 원래가 사물처럼 질료를 담고 있었던 흔적을 생생하게 갖고 있다.
실제로 질료를 가진 자연구조 속에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에서 보이는 공간구조가 많다. 말하자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자연과 관념의 중간쯤에 놓인 공간 혹은 이 둘을 포함하는 공간을 다루려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연 속의 사물들이 각각 개체로서의 이기심을 가지고 있듯, 전체 속의 다양한 크기와 세력의 부분공간 역시 이기심을 갖고 있다. 특히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처럼 질료를 가져본 공간은 이러한 성향이 더욱 강하다. 이들 이기적인 공간은 주변의 다른 부분공간들과 경쟁하거나 화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형태를 변신하면서 부분과 전체 간의 균형을 이룬다. 이 현상을 파악하는 작업은 때때로 아주 지루한 시간을 요하는 일인데 이를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이라는 툴(tool)을 쓰면 짧은 시간에 결과를 예측할 수가 있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대칭적이면서 미니멀 아트에서 그러하듯 균질한 부분공간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연계의 구조가 그러하듯 비대칭적이면서도 크기와 세력이 각각 다르게 생긴 불규칙한 부분공간(voronoi cell)을 다룬다. 그리고 이 계산을 가능케 한 것은 컴퓨터다. ● 원래 기하학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개입되지 않는다. 그러한 기하학적인 공간도 대수적으로 풀어서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 컴퓨터의 운명이다. 이런 과정에서 공간의 질서는 어느 정도 시간의 질서와 감각으로 바뀐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처음에는 공간에 관한 문제였다. 그게 10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발명되고 기능이 향상되면서 사정은 변했다. 공간 속에 시간을 담거나 공간을 시간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용이해졌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이란 컴퓨터의 반복적인 대수학적 작업을 말하며 여기에 유용하게 동원되는 단순명쾌한 방법론이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인 것이다. ● 사물이 진화하듯 공간도 진화를 한다. ● 질료를 담으려 하는 공간은 더욱 진화를 하려 한다. 공간을 시간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면 이 프로세스는 더욱 분명해진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속의 부분공간은 스스로가 개체진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주변과의 관계와 접합과 갈등 속에서 대수학적인 연산을 할 때마다 다시 변신을 한다는 점에서 계통진화를 한다고 할 수가 있다. 아주 안정적인 것은 계통진화를 할 필요가 없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진화가 필요하다. 진화는 비대칭적이고 불순한 질료를 가진 것들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진화는 불안정한 것의 특권이라고 할 수가 있다. ● 미술의 운명은 언제나 질료를 동반해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 미술은 공간을 다룬다고 하면서 실제의 작업에서는 질료 혹은 질료를 지닌 사물을 다루고 있다. 이런 모순은 미술작업이 운명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은 공간과 시간, 질료와 사건들 사이에 놓인 관계성을 종합적으로 보려는 새로운 세계관이다. ● 공간은 진화한다. 공간도 생명체도 질료를 가진 불안정한 것들만이 진화를 한다. ■ 황인
Vol.20060921c | Voronoi Diagram-Evolutionary Spac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