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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801_화요일_05:00pm
김세진_성민화_이배경_이원_장윤성_전지인_홍남기
2006 광주비엔날레 제3섹터 시민프로그램 "140만의 불꽃_미술오케스트라" 의 3부 기획공모 당선전시
기획_이병희
광주시립미술관 제2,3전시실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산151-10번지 Tel. 062_521_7556 artmuse.gjcity.net
아름다운 망각 ● 우리의 근 현대사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세계사적 소용돌이 속에서의 고난과 트라우마로 얼룩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 흔적은 우리 사회 전반의 불균형과 굴곡으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대중문화나 예술 전반 곳곳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 1980년대의 단골메뉴처럼 등장한 국가와 민족, 전통이라는 주제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1990년대에는 문학, 미술, 그리고 몇몇 영화 속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떤 시련이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지는 엽기, 잔혹, 폭력과 섹스 등의 문화 코드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들은 공통으로 어떤 냉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체성의 혼란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 이제, 21세기의 작가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세대는 이런 냉소에 바탕한 정체성의 논제 같은 것을 더 이상 자신들의 주체화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 정체성, 지역 정체성, 민족이나 국가 정체성 같은 하이픈 정체성보다는 보다 고유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들은 진정으로 다수의 정체성을 하나의 주체 속에서 소화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우리들은 이런 새로운 감성들과 그것의 긍정적인 힘을 발견하고자 미술오케스트라의 3부 아름다운 망각이란 주제로 전시를 엽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김세진, 성민화, 이배경, 이원, 장윤성, 전지인, 홍남기의 작품은 우리가 겪은 냉소를 딛고 그 위에 유머라는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지독한 트라우마, 주체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절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단절은 일종의 망각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라캉과 같은 현대 철학자는 완전한 단절은 오직 일종의 망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너무 새로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망각이란, 특히 한국 현대사 속에서,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렸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새롭게 보는 망각은, 마치 새로운 사랑처럼 때로 우리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아름다운 망각이라고 불러봅니다. ● 비극과 숭고함에 젖어들 새도 없이, 우리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항상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지역, 역사, 개인 이 모든 경계들을 넘나들 것을 요청합니다. 그 욕망에 회답하면서, 또한 지독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망각이라는 강을 건너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냉소나 멜랑콜리함이 아닙니다. 아마도 유머 혹은 희극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들은 참여 작가드르이 작품 속에서 잔잔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재미있는 감성 게임을 할 수 있고, 따뜻한 유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일상과 역사, 기억과 트라우마, 현재와 미래로의 여정은 즐거운 승화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The Beautiful Oblivion ● Our modern history is characterized as the high accumulation of sufferings and traumas caused by worldwide whirl pools such as WWII during a relatively short period of time. The traces of the traumas can be found in the imbalances and distortions of the entire society, especially on the terrain of our popular culture and art. ● We know very well that the art and cinema in the 1980s mainly had a focus on the themes of nation and tradition. It could be said, however, that in the 1990s, there happened a change in the way of addressing those themes in literature, art, and cinema. In that period, there appeared some cultural codes such as the grotesque, cruelty, violence, and sex considered as the features of postmodernism. They were commonly connected with so-called post-colonialistic movement such as the resistance of the minority and the Third World. The key issue in this struggle was the problem of identity. It revealed the attitude of despair, melancholy, and cynicism based on identity confusion. ● Now, it seems that a new generation including the 21th century's artists no longer considers the problem of identity based on a certain cynicism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problem of subjectivization. It is suspected that they are looking for something more fundamental, not hyphen identities such as generation identity, sexual identity, local identity, national identity. They might be absorbing a multitude of hyphen identities into only one subject. In order to find out these new sensitivities and their positive power, we open the door of the 3rd exhibition hall in the orchestra for the citizen and fine art. The artists that join this exhibition have been creating their art works, making bloom the flowers of humor instead of cynicism. The fertilizers of those flowers are undoubtedly the active participation and critical gaze of the citizens. ● We need a kind of break in order to overcome painful traumas that prevent the subject from doing anything. Some contemporary philosophers such as Jacques Lacan claim that it is only through a kind of forgetting that a radical break happens. This might seem to be an entirely new idea because the forgetfulness has often been regarded as a kind of irresponsibility in the modern history of South Korea. But forgetfulness in this sense of the term, just like a new love, opens another way for us. So, it could be called beautiful oblivion. ● Without the time to fall into the tragedy, melancholy, or the sublime, we suffer from every kind of conflicts. In those conflicts, however, the desire of the subject consistently demands something, and insists that he or she go beyond the borders of localities, histories, individuals, nations and so on. In order to respond to this desire and overcome the unbearable trauma, we recommend that one go across the river of oblivion. What we need for this purpose is no longer cynicism or melancholy but humor or comedy. ● In this exhibition, we will hear a calm story about an individual, play an interesting emotional game, and feel a warm humor. In this way, a journey through our daily lives and history, our memory and trauma, and the present and the future will make a pleasurable sublimation for us. ■ 이병희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김세진은 우리 삶에서 어떤 순간, 우연한 장면들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포착해냅니다. 『아름다운 망각』에 출품작품인 「Night Watch」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상의 단면을 봅니다.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하철 역 통로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걸인, 도시의 밤풍경... 이 모든 요소들은 도심 속,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서 고독한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김세진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훈훈함 같은 것입니다. 잔잔하게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는 하모니카 연주소리 속으로 우리 삶의 단면들, 복잡한 일상들, 모든 것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어냅니다. 그 화음 속에서 우리는 지속되는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에너지를,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성민화의 드로잉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개인적인 상상과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드로잉에는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와 어떤 바램들도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가끔 어떤 아이러니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성민화의 드로잉은 일상의 풍자화 같기도 하고, 끝없이 지속되는 천일야화 같기도 하고, 하루 하루의 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드로잉의 출발점은 유머와 재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민화의 드로잉을 보면서 킥킥 웃기도 하고, 갸우뚱 하기도 하고, 어떤 수수께끼를 푸는 시간을 갖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면서, 즐겁게 우리 일상의 드로잉을 그려나갑니다.
이배경의 작품은 관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우리들이 스크린 앞에서 하는 어떤 행동들에 의해서 스크린은 변합니다. 「Insel」은 독일어로 "섬 Island" 라고 합니다. 스크린에서 우리의 모습이 우리 삶에서 익숙한 거리풍경 속에 투영되어 실시간으로 나타납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움직이는 거리 시민들의 모습, 그것이 전시장에서 그대로 재연되다가, 관객이 스크린 앞에 들어서면 갑자기 삶의 모습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 우리들의 현실은 멈추거나, 해체됩니다. 개인과 지역, 시간과 장소(공간), 신체와 경험 등의 차이 혹은 경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원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녹화하여 비디오로 상영합니다. 상영할 때에는 그가 행위 했을 때의 흔적이나 소품들이 같이 설치됩니다. 이번 『아름다운 망각』에서 이원은 광주시의 몇몇 장소들을 오고 가며 담배꽁초를 줍고 그것을 하나 하나 꾀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디오로 찍어서 전시장에서 담배꽁초 꾸러미와 같이 상영합니다. 물론 이원의 행위는 재미있는 퍼포먼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들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담배꽁초를 한데 모으는 행위에서 어떤 질문들을 해볼 수 있습니다. / 예술가란 일종의 청소부일 뿐? / 시민들 사이에서 예술가, 혹은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 아니, 무슨 행위라도, 혹은 어떤 소통이라도 우리에게 존재하며 존재해왔다? / 그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매체이다?
장윤성은 미술관, 전시장등이 관객에게 놀이와 재미, 유머를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재미있게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Smile in the City」에서 우리 도시의 도로 한 가운데, 경계를 표시하는 노란선, 그것이 차차로 '스마일' 변합니다. 고층 빌딩에 비친 풍경, 자동차 거울에 비친 모습, 거리에 오고가는 사람들, 가끔은 비도 내리는 도시 이런 모두가 9개의 화면 속에서 서서히 변합니다. 그리고 노란 선들만으로 이어진 스마일 표정이 형성됩니다. 노란 선은 도로의 경계표시이지만 우리들 생각, 세대, 국가, 인종, 정치 모든 면에서의 경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경계의 표시가, 어느 순간 '스마일' 한다면? 유쾌하지 않겠습니까.
전지인은 우리 사회의 근현대화 과정에서 남은 어떤 증상들을 비디오에 담아냅니다. 항상 그랬듯이, 젊은 세대에게 전통이나 특수성, 개인의 삶이나 기억, 역사와 같은 것은 이제는 특정 이데올로기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스타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보편성을 획득해내는 것이겠지요. ● 전지인은 담담하게 우리 사회의 단면들을 담아냅니다. 그 속에는 동아시아 근현대화 과정에서 남은 키치적 현상들도 포함됩니다. 한편으로 한 사람의 인생동안 실로 많은 것을 경험했던 우리 역사의 한 단면도 포함됩니다. ● 「자장면, 그리고 인터뷰」에서는 지금 노인이 되신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자장면을 앞에 두고,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정말 먼 옛날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십년전 우리 역사 속 한 단편들입니다. ● 여전히 우리는 담담하게 이 스펙타클한 사회를 살아가듯, 할머니들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홍남기는 자신이 스스로 가상의 인터넷 세계에서의 주체인 아바타가 됩니다. 각종 아바타가 되어, 어떤 상황을 연출합니다. 풍자적이기도 하고, 해학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웃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홍남기의 작품 속에서 현대 사회의 개인, 파편화되고 심지어 가상의 세계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 세대의 개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렇지만, 그 개인이 절대 우스꽝스러운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라는 주체는 가상의 우리, 현실의 우리, 상상의 우리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 이병희
Vol.20060917b | 아름다운 망각 The Beautiful Oblivi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