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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902_토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전력홍보관 1층 Tel. 02_2055_1192 www.kepco.co.kr/plaza
이상하-또 다른 통로 ● 현실계에 존재하는 여자들에게 실망한 고대 그리스의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자신의 이상적인 여자상을 만들었다. 부정하고 불완전한 육체를 대신해 순결하고 완벽한 육체에 대한 동경이 그 이미지를 가능케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 가시화되고 물질화된 흔적이다. 비로소 그는 완벽한 육체를 얻었다. 시간과 죽음이 깃들지 못하는 영원한 육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차가운 상아/뼈에 불과하다. 따뜻한 온기와 호흡, 떨림과 감각을 지닌 인간의 피부가 아니며 자신의 손길과 애무 또한 받아주지 못한다. 조각은 이렇듯 부동과 침묵으로 절여진 물질들이다. 물론 그 물질을 빌어 실재하는 인간처럼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 온 것이 다름 아닌 서구조각사였다면 그로부터 벗어나 조각은 몸의 재현이기 이전에 흙이나 대리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이는 로댕이다. 나아가 중력의 법칙 아래 정지된 물질덩어리를 해방시켜 시간과 속도, 움직임을 부여해준 것이 키네틱아트와 칼더의 모빌이었다. 반 중력에 대한 동경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제 조각은 신비체험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었다. 이후 오늘날 현대조각은 이동과 속도, 가변성과 유동적인 측면을 모두 아우르면서 이전의 전통적 조각개념으로부터 훌쩍 벗어나있다.
이상하는 "조각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살아있다'라는 말은 재현술에 의한 사실적인 인체조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의 시선과 몸의 이동 및 그 모든 것을 받아주면서 존재하는 그런 조각을 말한다. 관객과 작품의 상호소통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동시에 물리적인 부피, 덩어리로만 고정되어 있고 침묵하는 조각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 안에서 부단히 변모하고 탈바꿈하는 그런 조각을 의미한다. ● 이상하는 그런 모색의 차원에서 조각 안에 관람객의 몸과 시선, 반응을 흡수하고자 한다. 우선 그는 조각적 재료, 물질의 선택에 있어 외부세계를 끌어들여오면서 이를 비추고 받아내는 투명한 소재를 선택했다. 조각은 확장되어 풍경 그자체가 되고 전시장소가 작품의 부분으로, 그림의 요소로 들어온다. 유리와 흡사한 스테인레스 스틸 종류인 '폴리싱판'이 그것이다. 일종의 거울처럼 투명하게 외부를 비춰주는 이 물질/화면은 현대적인 산업제품이며 상품화되어 복제되는 물질이자 아트적인 산업 생산물이다. 그 같은 소재, 물질을 조각적 재료로 선취한 그는 이를 조각조각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공품을 미술재료로 받아들이고 무한히 복제되어 상품화되는 소재를 작품의 한 요소로 적극 끌어들이는 시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PC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그것 자체가 지닌 좌표라는 시스템으로 자유로운 구상이 가능하게 된 작가는 이 수평과 수직, 그래픽 디자인의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군림하고 있는 그리드(격자)를 이용해 가로와 세로의 균형 사이에 존재하는 '크리에이티브'를 흥미롭게 전개시킨다는 인상이다. 아울러 그렇게 드로잉된, 디자인된 밑그림을 이용해 실제 판을 레이저로 절단했다. 그런 다음 크기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마치 퍼즐게임을 하듯, 그림 맞추기 놀이처럼 조각조각 잇대어 놓은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이미지는 수직의 건물군, 아파트풍경, 실내풍경, 소파와 화장대, 콘솔이 있거나 패션잡지나 사진에서 따온 인물의 실루엣, 커다랗게 부풀어 퍼진 꽃 등 지극히 일상적인 정경이 다분히 팝적으로 재현되었다. 심플하고 감각적인 형상, 군더더기 없이 말끔히 재단된 윤곽,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들이 단색으로, 차가우면서도 세련되고 깨끗한 물질로 인해 세부가 생략된 채 실루엣만 드러나고 있는 이 형상은 일상을 무척 낯설고 신비스럽게 만든다. 그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좋아 보이는 현대 삶의 한 상징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일종의 현대 삶의 상형문자처럼 다가온다. ● 또 다른 작업은 밤의 아파트나 빌딩 풍경을 만들어 보인 이미지다. 저 부조이자 회화이며 바탕과 표면의 관계성에 의해 드러나는 이 이중적인 화면은 안과 밖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고 충족시켜 주면서 하나의 상을 만든다. 나무판에 노란 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금속판을 부착했다. 아파트의 창문이 드러나고 밑에 칠한 노랑색 바탕에 의해 창들은 한결같이 밝은 등을 비춘 밤 풍경, 야경을 환영처럼 떠올려준다. 그림과 조각의 보완적 관계에서 상생하는 형국이다. 균질하고 차가운 금속성의 표면과 따뜻하고 밝은 노랑 색의 내부가 짝을 이뤄 밤풍경을 환영처럼 떠올려주고 있다. 그는 늘상 도시의 밤풍경을 바라보면서 고층 아파트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과연 저 안에 누가 살고 있을까, 혹 내가 아는 이가 있는지,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도시 공간에 대한 이런 저런 인식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은 평면의 물질을 오려서 만든 일종의 콜라주다. 물질로 이루어진 이 콜라주는 저부조이면서도 동시에 회화적이다.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어른거린다. 이미지를 보여주는 화면은 그림이지만 하나의 물질 그 자체가 전면적으로 마감된 흔적은 마치 미니멀리즘조각을 보는 듯 하다. 컴퓨터상에서 디자인 작업을 한 후 그에 따라 레이저로 절단된 각각의 면들을 실리콘 본드로 접착해서 만든 이 판 작업은 렌더링이 그만큼 중요하고 컴퓨터상에서의 격자무늬 판에서의 도안, 구상이 핵심이 된다. 산업적 제품화 과정을 작업의 과정에 적극 응용하고 있는 셈이다. 폴리싱 판의 표면마감과 재질에 따라 약간씩 다른 미세한 결과 투명성, 색 층을 보여주는 화면은 관객의 몸을 받아들이고 풀어주면서 흐른다. 어른거린다. 관객들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다소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내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찾고 들여다보듯 그곳에 들어와 박힌 자기 모습을 응시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화면은 이내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앞에 서있다. 그래서 그 표면은 순간순간 화면 속 이미지를 바꿔내는 이상한 그림이 되었다. 관객들은 스스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기 앞에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작업, 물질 대신에 관객 자신이 그 앞에 서야만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서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표면은 미세한 차이에 의해 색상과 결, 투명도와 광택 등이 조금씩 다르다. 그 다른 것들이 서로 엇갈려 미묘하면서도 풍성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로인해 동일한 물질이 자아내는 미묘한 차이를 적극 유도하는 이 화면 앞에 서면 기존조각들의 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 박영택
Vol.20060905b | 이상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