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연출_최정화   2006_0901 ▶ 2006_1015 / 월요일 휴관

최정화_바구니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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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www.ilmin.org

최정화는 현대 생활 속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대중', '키치'라는 코드를 이용해 우리에게 현대미술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상품과 작품으로서의 경계가 모호한 주문제작품들을 비롯해 타 작가들의 작품, 일민미술관 컬렉션 등 70여점이 백화점식의 컨셉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미술관 1, 2, 3층 뿐 아니라 외부 광장에 까지 확장되어 전시된다. 작가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소쿠리나, 장난감 퍼즐 같은 자석, 인체 마네킹, 석고상 등 현대 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집대성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문화적 풍경들을 과장하고 새롭게 연출하고 있다. 이는 곧 현대미술에 대한 통쾌한 뒤집기이기도 하다. 한편, 전시되는 제작품들은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 팔린 상품들은 새롭게 제작에 들어가기도 하고 전시기간동안 빈 공간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예술이라는 상품에 접목시키는 최정화식 작업의 결과물이다. 관객들은 마치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듯 현대미술을 즐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최정화_바구니_2006

작가 최정화는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을 깸으로써 예술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자 한다. 그는 말한다. 자신에게는 애초에 예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며, 예술이길 바란 적조차 없으며, 그 결과물은 작품이 아닌 상품일 뿐이라고. 이미 그는 예술이라는 잣대를 놓고 봤을 때 절대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예술이란 좀 도도하고 고매하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숭고미를 지닌 것이어야 마땅한데, 그의 작업에는 온갖 싸구려와 천박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있다. 하긴.. 그는 스스로 예술가가 아니라고 했으니... ● 그렇다면 최정화가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현대미술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현대미술은 나의 취미"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생활이 곧 미술인 그에게는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최정화는 생산의 주체마저 사회에 맡겨버린다. 시스템화 되어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들이 행위의 재료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이를 자신의 안목으로 조합하고 구성하는 일이 그의 취미인 것이다. 하찮음과 그렇지 않음, 엉성함과 치밀함이 교묘히 교차되는 그 지점에 최정화식 코드가 자리한다. 그 지점을 잘못 짚는다면 그것은 한낱 쓰레기 더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최정화_샹들리에_2006

최정화는 또 주장한다. 자신의 작업은 가두어진 전시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 자리해야만 한다고. 그의 머리를 거친 조합물들은 전통 한옥, 레스토랑, 상점, 문화공간, 거리 등 예상치 못한 곳에 불쑥불쑥 드러난다. 좁은 땅에 만족을 못해서인지, 좁은 안목에 만족을 못해서인지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그곳이 지구상 어디든지 간에 단걸음에 달려가 욕망 보따리를 풀어치우곤 제자리로 돌아온다. 최정화에게 서울은, 그리고 예술은 일종의 휴식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에겐 목숨과도 같은 것들이 그에겐 휴식이라니... ● 그의 평범치 않은 행위는 때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 건축,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 등 그의 활동영역과 일치하는 분야에서는 최정화라는 존재를 외면하기도 한다. 정석에서 벗어나 있고 너무도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그의 본능은 노력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기호와 글, 심볼과 물질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탐독하고 탐구하며 본능이라는 뼈에 살을 보탠다.

최정화_외부동상_2006

최정화는 발견하고 채집하기 위해 세상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곳은 왁자지껄한 시장통이기도 하고, 허름한 드럼통 식당이기도 하다. 네온싸인이 원초적으로 빛나는 오사카의 밤거리이기도 하며,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벨기에의 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거리들을 누비며 온갖 알록달록하고 빠글빠글하며 뻔쩍뻔쩍 거리는 무엇인가를 모아온다. 그 집함물들이 이번에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자신이 부정해 왔던 미술관이라는 갇혀진 공간에서 최정화 브랜드를 선보인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모순에 빠지는 일이었을까. 생각의 굴레굴레를 넘어 울트라 현대사회의 아케이드(백화점)와 박물관의 모습이 혼재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최정화_이승복상_유관순상_2006

대중이라는 이름의 당신은 주인공이 되어 백화점의 미로를 걷듯이 어떠한 지식이나 두려움 없이 미술관 안팎을 그저 걸으며 즐기면 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누구의 작품-실제로 전시장에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과 컬렉션으로 가득 찬다-인지, 어느 나라 공장의 제조품-태국, 독일, 중국, 한국 등에서 제조된 갖가지 공산품으로 가득하다-인지 애써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어느 폐교에서 퍼온 동상인지, 어느 가게의 마네킹인지, 그리고 그 동상과 마네킹이 인체비례에 맞게 제작되었는지도 살필 필요가 없다. 형형색색의 바구니 벽이 단지 벽인지 작품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모든 게 바로 당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고 당신은 보는 재미를 느끼면 되니까.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세상은 거대한 박물관이니까. ■ 김희령

Vol.20060904c |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