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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823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올 초대展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6 www.gallerydoll.com
Gaze into your face ● 렌즈의 줌을 서서히 끌어당긴다. 렌즈는 서서히 눈에서 코로 그리고 입으로, 섬세한 머리카락 한결한결을 따라 조용히 머문다. 살결의 미묘한 변화, 굳게 다문 입술, 우직한 콧망울,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살아있는 듯 대상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숨이 막힐듯하다. ● 언젠가 필자가 해남에 소재한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의 종가에서 처음 대한 그의 자화상은 그렇게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한 인상은 익히 들어온 예찬 때문이라기보다는 명작이 될 수밖에 없는 뛰어난 기법 및 독창적 양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한 전형이 되는 공재의 자화상이 그토록 강인한 내면의 기운을 풍기는 것은 터럭하나 주름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관찰과 사실묘사에 기인한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채색기법과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원리를 충실히 적용해온 박미진의 이번작업은 전신상에서 인물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로인해 의상과 제스춰, 소품들까지 세세하게 담아내었던 공력과 산만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따라서 인물의 순간 동작과 손에 쥔 기물들로 주인공의 성격과 신분 및 계층을 읽을 수 있었던 초상화의 독해법으로 이 그림들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다만 인물의 눈빛, 콧날의 생김새, 입술의 표정, 살결의 질감, 머리모양에 따라 그 사람의 스타일을 짐작할 뿐이다. 작가는 클로즈업된 얼굴형상에서 내면에 집중한다. 그것은 오래된 동양 초상화법의 원리가 되어온, 사실적인 외형묘사에 그치지 않고 대상의 인격 · 기질 · 품위 등 대상 속에 숨겨진 정신을 그려내는 전신사조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제시되는 인물화들은 작가주변의 인물들로서 그들의 성격을 대표하는 표정을 포착하여 과거에 작업했던 익명인에서 벗어나 익숙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화폭 위의 조용한 응시 속에서 대상은 나를 투영하는 단지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서두에서 그 옛날 공재의 자화상을 언급한 까닭은 전통재료로 구사하는 초상화법의 역사성을 언급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박미진의 이번 작업이 안면을 화면 가득 채우는 구성으로-여기서는 정면상은 아니지만-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인물의 내면, 즉 전신의 기운을 강하게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재의 자화상이 정면을 맞닥뜨리며 관람자의 그 어떠한 상상을 차단시킨다면, 박미진의 측면상들은 시선을 피하듯 내리깔고, 슬쩍 옆을 돌아보거나 혹은 우리를 돌아서 바라보고 있음으로서 관찰자의 시선개입과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초본에서 옮긴 골격을 바탕으로 피부와 이목구비에 색을 올려 기운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작가는 익숙한 대상이 주는 익숙한 표정과 느낌을 조심스럽게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해석한 인물의 색과 표정을 재해석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다.
박미진은 인물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필화 대신 육리문(肉理紋)과 운염법(暈染法)을 택했다. 그것은 골격을 잡아내는데 용이할 뿐 아니라 붓질의 자유로움을 통해 작가의 감성까지도 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업 방법으로, 안료를 여러번 덧칠하는 중채법(重彩法)과 맞물려 유연심원(柔軟深遠)한 색의 맛과 피부색의 부드러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세필의 육리문과 스미고 베어들어 깊이를 자아내는 중채법이라는 전통초상화의 창작방법을 통해 기량을 과시할 뿐 아니라 전통계승이라는 당위적 과제를 묵묵히 실행하고 있다. ● 박미진의 이번 초대전은 현대 수묵채색화를 언급할 때마다 꼬리표처럼 등장하는 이 전통계승이라는 구호가 젊은 한국화가들에게 더 이상 걸림돌이기보다는 또 하나의 대안이자 가능성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왜색청산의 과제 앞에서 무거운 짐을 안아왔던 한국의 채색화는 현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아직도 유효한 매력적인 장르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 김미금
Vol.20060823d | 박미진 인물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