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6_0823_수요일_05:00pm
김진혜 갤러리(구 보다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사유하는 집-짓기, 집-되기 ● 2003년부터 '집짓기'라는 명제로 개인전을 해온 김필례의 열 번째 개인전, 역시 '집짓기'이다. 그런데 그의 집짓기는 2003년이 아닌 이미 1998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의 경계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집짓기 이전과 이후의 경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전의 작업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해봄으로써 2003년 이후 집짓기의 경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가 작품에 어떤 변화와 차이를 가져오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집짓기 이전과 이후의 경계에는 '있음'과 '사라짐'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있음'이 아닌 '사라짐'이 그의 작업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더욱 자유롭고 하며 생동감이 넘치며 끊임없이 생성하게 한다.
먼저 첫 번째 사라짐은 '중심의 사라짐'이다. 집짓기에 이르기까지 중심은 서서히 사라진다. 초기 작업인 「삶에 대한 비유 I」는 벽에 한 지점, 그곳을 중심으로 지지하여 고무줄이 마치 한줄기 긴 뿌리처럼 땅으로 곧게 뻗어나가 큰 소용돌이 모양으로 회오리쳐 들어간다. 물론 그 원환 중심점에서 그 것은 운명을 다한다. 하나로 뻗어나가는 선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성하고 소멸해간다. 하나의 지지대를 가지는 작품들은 이후 「삶에 대한 비유 II」, 「삶에 대한 비유 III」으로 갈수록 세 개의 지지대, 네 개의 지지대로 중심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분산되어 2002년의 전시에 전시되었던 「응축」시리즈부터는 리좀적 형태를 띠게 되며 「세상 속으로는」에 이르면 집짓기를 위한 마지막 몸짓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두 번째 사라짐은 '이야기의 사라짐'이다. 집짓기 이전의 작품, 즉 「메신저로서의 헤르메스」나 「삶에 대한 비유」라든지 「응축」에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무엇인가를 은유하고 비유하고 또 상징함으로써 서사구조 속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작품의 제목이 있고 없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집짓기 이전에는 무엇인가를 재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형식에서 내용을 분리해내고 있다. 그러나 집짓기에 이르면 그것은 더 이상 재현하지 않는다. 또한 집짓기에서는 형식 자체가 내용이며 그것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물성의 사라짐'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들은 실과 고무줄이다. 이것들의 질료적 속성은 선적이며 연장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집짓기 이전 시기의 작품들에서는 실과 고무라는 재료가 가진 물성을 조각가의 입장에서 탐구하고 탐닉한다. 그러나 집짓기 이후부터는 이 재료들이 가진 물성은 작품의 본질로서 육화되어간다. 선분적인 증식, 내지 가속화됨으로써 유한한 것, 인접한 것, 연속적인 것, 무제한적인 것을 결합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집짓기는 진행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이 질료의 진정한 변환, 즉 정신화됨을 의미하며 또한 물리적 환경은 비물질화된다. 더불어 무제한한 내재성의 장만큼이나 확장될 새로운 영역들을 보여준다. ●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집짓기는 집-되기라고 하겠다. 되기는 포획이자 소유이고 잉여이지 결코 재현이나 모방이 아니다. 여기에는 지시도 없으며 형상적인 의미에 의한 은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집짓기에는 어떠한 재현도 모방도 없지만 우리는 그 표현에서 그것이 집임을 집이 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으며, 집-되기, 즉 집짓기의 표현에서 작품이 지닌 힘의 최대치를 발휘한다.
그의 집짓기의 과정은 엄청난 노동이다. 그것은 계속되는 반복이며 왕복으로 무한운동이라고 하겠다. 그의 집짓기의 무한한 운동은 이중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생각하다와 존재하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개가 아닌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 집짓기에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집짓기는 사유 이미지이며 동시에 존재의 질료이다. 이 같은 작품은 사유와 본질, 자연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측면을 지닌 내재성의 구도를 보여준다. 그 때문에 서로가 접히고 포개지는 수많은 무한운동들이 있게 되어 집짓기라는 내재성의 구도는 끊임없이 왕복의 거대한 직조를 짜나간다. ● 이번 전시에는 네 개의 집이 지어지는 집짓기가 전시된다. 그중에서 주목해야할 작품은 고무줄로 설치될 「집짓기」이다. 이 작품은 무수히 많은 고무줄이 면을 이루면서 전시장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지면서 집짓기의 '조각-건축'적 면모를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리좀의 구조와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 작품의 다양한 변주와 탈주를 상상하게 한다. 무수히 반복된 고무줄로 이루어진 집의 구조는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 그것도 무수히 많은 입구와 출구가 존재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중심이 없는 많은 뿌리라는 리좀(n-1)의 특징을 드러내듯 작품의 중심은 비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여로서의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작가는 관객들이 무수히 많은 입구와 출구들을 통해 집 속에 들와왔다 나가기를 바란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며 이 공간은 그들이 지나가는 다양한 길이며, 다양한 가능성과 다양한 잠재성을 향해 열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짓기는 다양한 상상과 다양한 능력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집 스스로 펼쳐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될 모든 이웃들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충만함 그 자체이다. ● 우리는 그의 집짓기를 통해서 어떤 현실적인 것도 고정될 수 없으며 끊임없는 변화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적이고 지배적인 것의 확고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되고 생성되는 새로운 힘을 발견할 것이다. ■ 박수진
Vol.20060822a | 김필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