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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27_목요일_06:00pm
창동미술스튜디오 전시실 서울 도봉구 창동 601-107번지 Tel. 02_995_0995 www.artstudio.or.kr
네거티브 산수, 혹은 新 공무도하가 ● 안원태의 근작들은 모두 '물속의 나무'라는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 그는 지난겨울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이 '물속의 나무'라는 대상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당시 그에게 이 대상은 그저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풍경의 구성요소로서가 아니라 어떤 독특한 의미를 갖는, 혹은 어떤 독특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물속의 나무'를 그리게 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물속의 나무'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에 형성된 어떤 관념내지는 정조를 그리게 되었다. ● 이처럼 안원태가 '물속의 나무'와 더불어 내면에 형성된 어떤 관념내지는 정조를 그리게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정확히 어떤 관념이고 정조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안원태의 근작들이 '물속의 나무'라는 대상을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은 비밀스런 밀폐의 공간이며 동시에 그 밀폐된 공간을 열고 들어가게 하는 열쇠라 하지 않던가!
우선은 안원태가 한결같이 '물속의 나무'라는 습한 모티프를, 농묵보다는 담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습하게 표현한 문맥 속에 위치시킨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처럼 습한 모티프를 습하게 표현했기에 여기서 모든 것들은 젖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마치 안개가 자욱할 때 그러하듯 시야는 흐릿해지고, 山水는 현실성을 상실한다. 습기는 나무속에 침투하여 나무를 용해시키고 그럼으로써 陽(positive)의 기운을 앗아갔다. 실루엣만으로 陰(negative)하게 처리된 나무들! 심지어 내게는 하늘조차도 저 공기의 가벼움을 상실하고 젖고 무거워져서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관산수의 탁 트인 넓은 시야가 아닌) 소관산수의 좁은 시야는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山水를 지배하는 것은 역시 여백으로 陰하게 처리된 물이다. ● 물은 하나의 몸이 다른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유일한 질료다. 물 덕분에 몸은 스스로의 밖으로 나아가고 체계적으로 운동하여 다른 것 속으로 침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습기가 모든 것 속에 침투하여 그것들을 용해시킨 안원태의 근작들에서 개별 대상들은 서로 침투하여 한 몸이 되고 세계 그 자체로 변하여 세상의 온 사방에 흩어졌다. 따라서 안원태의 근작들은 陰의 山水, 곧 네거티브 山水다. 그러나 陰의 기운은 하강하는, 퍼지는 기운이다. (안원태가 수직성이 강조된 상하로 긴 화면보다 수평성이 강조된 좌우로 긴 화면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강하는 퍼지는 기운은 한편으로 冬眠과 같은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과 연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는 추락, 곧 죽음과 연관된다. 끝없이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陰은 陽을 필요로 한다. 안원태의 작품에서 이러한 요청에 응하는 것은 나무가 갖는 수직성이다. 나무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를,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이기를 기다리며 하늘로 상승한다. 하지만 안원태의 산수화에서 상승하는 나무는 굵고 강하여, 陰을 압도하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陰과 더불어, 혹은 陰의 곁에 있기에 끊임없이 수평을 포괄하여 둥글려지는 여린 나무다. 이 나무는 삶을 꾸려나가기에 바쁘지만 언제나 휴식처, 안식처를 갈망하는 우리의 일상을 빼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언제나 죽음을 마주 대하고 사는 인간의 실존을 표상한다. 이런 맥락에서 안영길이 "오행의 상생원리이기도 한 물과 나무의 만남은 죽음과 삶을 아우르는 만물의 본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연의 본래 모습"이라며 안원태의 근작을 노장의 덕목인 곡신불사(谷神不死)와 물화(物化)에 연관짓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시 용담댐 수몰 지구에서 '물속의 나무'와 만났을 때의 안원태로 돌아오면 그는 이 독특한 대상(物)에 응하여 오랜 옛적 뱃사공 곽리자고(?里子高)가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보지 않았을까? 설화에 의하면 이 뱃사공은 어느 날 아침 백수광부(白首狂夫)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병을 쥐고 강물을 건너는 장면을 보았다. 그 뒤를 그의 아내가 따르며 말렸으나 미치지 못해 그 미치광이는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를 뜯으면서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는데, 그 소리가 아주 슬펐다고 한다. 전하는 말로는 그 노래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한다. ●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 가신 임을 어이할꼬. ■ 홍지석
Vol.20060728d | 안원태 수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