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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현 개인展   2006_0726 ▶ 2006_0801

정승현_아홉 개의 시선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각 73×56.5cm_2006

초대일시_2006_0726_수요일_06:00pm

갤러리 도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55-1번지 2층 Tel. 02_735_4678

그리기를 선행하는 보기(seeing) - 나의 시선, 타자의 시선 ●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羅生門, In the woods)에서 4명의 등장인물들은 숲 속에 일어난 한 살인 사건에 대해 엇갈리는 진술을 함으로써 극중 사건의 전모(全貌)를 모호하게 하고 진실을 은폐시키려 한다. 이 같은 등장 인물들의 각기 다른 시점과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사건의 실체를 과장, 조작하는 것을 통해 아키라는 영화의 극적 재미와 함께 진실에 대한 주관성과 상대성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정승현_아홉 개의 시선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73×56.5cm_2006
정승현_아홉 개의 시선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73×56.5cm_2006

정승현 작업의 시작점은 아키라가 '라쇼몽'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진실, 혹은 대상에 관한 작가 자신을 포함한 타자들의 다각적인 시각과 관계에 있다. 같은 상황에도 누구에게나 관점은 있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자기 중심주의나 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하나의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비롯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색깔만큼 다양해 질 수 있는 것이다. ●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기(watching)와 관찰하기(observe)를 포괄한 "보기(seeing)"는 "그리기"의 행위를 선행한다. 정승현은 그가 선택한 사물, 또는 대상을 그 목적과 용도, 그리고 본질과 물질성을 떠나 실험실에 놓여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대할 때 갖게 되는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시각과 이와 반대되는 타자들이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점과의 관계를 시각화 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일상 오브제의 이미지를 채집, 사진 촬영한 이미지를 재구성 한 작업 시리즈와 텍스트, 특히 외국어 습득용 교재를 잘라 한 화면 안에 재편집한 시리즈, 그리고 레디메이드 액자들을 해체, 재결합하여 제작한 일종의 쉐입드 캔버스(shaped canvas) 시리즈 등 크게 세 가지의 연작으로 나누어진다.

정승현_아홉 개의 언어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포토그래피 이미지_각 73×56.5cm_2006
정승현_아홉 개의 언어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포토그래피 이미지_76×56.5cm_2006

첫 번째 시리즈에서 정승현은 "일상"이라는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랜덤(random)이미지를 채집하고 재이미지화 한다. 작가는 가구 또는 건축물의 장식 부분 혹은 도자기 같아 보이는 몇 개의 오브제를 다각도에서 반복적으로 접사 촬영한 후 이를 그래픽 작업으로 원래의 색과 스케일을 모호하게 한 이미지들을 종이에 인쇄한 위에 금박실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박음질을 한다. 거미줄 또는 곤충들이 시각을 배제하고 "더듬이"에 의지하여 사물 위를 기어 다니는 자취를 가시화 시킨 듯한 금박실을 이용한 박음질 자국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확장되는 감각의 전이(shift)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러한 작가의 하나의 대상, 오브제에 대한 다각도에서의 집착적 반복 촬영은 편집증적이며 분열적인 인식의 방식을 함께 보여 준다. ● 낯선 외국어를 타 문화권에서 습득하는 과정에서 오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미지 채집과 재구성의 작업에서 텍스트의 채집과 재편집 작업 시리즈로 이어진다. 정승현은 외국어 습득용 자습서 - 불어, 일본어, 독어 등 - 각 페이지의 텍스트를 한 줄씩 잘라 박음질로 붙여 하나의 평면 작업으로 재편집하여 일련의 시리즈로 완성하였다. 후미진 중고 책방에서 찾은 빛 바랜 불어 자습서에서부터 최근까지 가까운 누군가의 소유였던 일본어 자습서, 그리고 우연히 건네 받은 여러 종류의 외국어 습득을 위한 교본들은 한 줄, 한 줄 각각의 페이지에서 제거되고 하나의 화면 안에 본래의 맥락을 벗어나 금박실을 이용한 박음질로 한 줄씩 재배치된다. 마치 바벨탑의 저주처럼 소통이 불가능한 언어로 탈바꿈된 문자들은 가독(可讀)의 문자라기보다 각 행 간을 이어 붙인 가느다란 금박실의 미세한 반짝임과 더불어 하나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각언어가 되는 것이다.

정승현_아홉 개의 언어에 관하여_바느질,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_76×56.5cm_2006
정승현_n개의 창을 바라보다_혼합재료_2006

정승현은 그의 작업 노트에서 "작가들은 어떤 대상에 시선이 머무를 때 그 곳에서 집을 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의 타래를 그 곳에선 자유롭게 풀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 가능, 불가능 한 것, 이상적인 것 등등...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안식의 집, 즉 시선의 집을 짓는다고 표현하곤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작가의 생각은 전시장 한 쪽 벽에 설치되는 변형 프레임 작업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벽에 설치된 사각에서 오각, 육각 등의 변형 프레임들은 각각이 개별적 작품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이 된다. 더러는 빈 프레임으로, 더러는 전체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의 일부분과 천이 부착된 판넬 작업들은 미완의 상태로 하나의 대상에 대한 타자의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가의 의도와 맞물린다. 하나의 대상에 대한 편집증적인 사진 찍기를 통한 채집과 관찰, 그리고 반복되는 노동 집약적인 수작업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채집된 대상의 재구성과 재이미지화 과정 속에서 정승현은 대상과 작가의 근접한 교감을 통한 놀이와도 같은 유희를 즐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그러나 끊김 없이 들려주며 타자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소박한 이야기꾼이 지닌 소통의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 양옥금

Vol.20060726a | 정승현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