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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20_목요일_05:00pm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1층 Tel. 02_910_4465
김선휘의 작품에서 나타난 탈의(脫衣)의 과정 ●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The New york trilogy)의 한 부분인 유리의 도시에서는 천국의 언어-바벨탑 이전의 언어를 찾기 위해 갓난아기인 아들을 감금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이 지난 뒤 발견된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음향, 또는 의미가 없는 단절된 단어의 나열이었다.
단어의 나열, 그것이 김선휘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단적인 느낌이었다. 하나의 상황이 펼쳐진다기보다는 그저 놓여있는 느낌. 공간 속의 시간은 무한할 것 같고 정체되어있는 그것은 하나의 제시된 단어였다. 그리고 단어 이후의 침묵이었다. 단어와 단어사이의 빈 공간처럼 그 사이의 간극과 맥은 모조리 풀어져 있고, 화면위의 공간은 가늠하기 힘든 2차원의 연장일 뿐이다. 평면 위에 갖가지 사물들, 인물들이 스쳐간다. ● 김선휘의 근작들에서는 여러 가지 대상이 화면 위에 사그라질 듯 하면서도 강렬하게 떠오른다. 이른바 표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색과 선으로, 하지만 그것은 표현을 위한 표현이기 보다 그 자체가 놓여있는 사물 들로써 화면위에 자존한다. 그 사물들의 이름은 의미가 단절된 단어, 이미지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무엇을 상징하여 무엇을 느끼게 하기보다 어딘가로 통하는 하나의 문, 맥으로써 한없는 상념으로 안내한다. ● 이러한 이미지들이 다가왔다 멀어지는 동안 그것들의 종합은 기이하게 형성된다. 그리고 하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잃어버린, 보다 정확하게는 잊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잠들기 전에 혹은 멍하게 의식이 풀어지는 시점에서 떠오르는 것들, 자신의 비밀스럽고 감추고 싶었던 기억들, 무엇을 본다기보다 떠오른 영상이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때, 지각하기보다 감각했던 그 때, 그 순간을, 작품을 보는 순간 향수하게 된다.
그의 작품의 이러한 경향, 특히 부러 조잡한 듯하게 표현하려는 제스처와 논리적이거나 정돈되지 않은 구성, 풀어진 의식과 잊혀진 욕구의 표현은 언뜻 아웃사이더 아트(Art Brut)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주로 정규적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의 어눌함과 자유스러움을 표방하려는 듯한 아웃사이더 아트의 특성은 본능과 직관에 기반을 둔 그의 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다시 말해 자신의 통념아래 억눌린 것을 해소하려는 몸짓, 풀어내려는 욕구에 있어 아웃사이더 아트의 양식은 유사하게 다가오나, 그의 작품을 단순히 아웃사이더 아트를 지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 대상을 향한 상념은 더욱 자유롭고, 단순하고 더욱 직설적으로 다가가지만, 그것이 재료와 기술을 다루는 손에서는 더욱 세밀하고 단계적이고 민감하게 터득되어, 종합된 그것이 은유로써 화할 수 있게 한다. 나이브를 가장한 웰 메이드, 이것이 가식적이지 않게 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김선휘의 작품에서 그것은 회화적 가능성의 개발-질료와 형식에 대한 꾸준한 연구라 답한다. 그것의 바탕에 깔린 것은 물성으로부터 포착되는, 감성이 잊혀지고 잠재워진 감성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믿음이다. ● 기실 본능이나 감수성이란 객관적으로 집어내기 힘든 부분이고, 그것의 표현이란 더욱 잡아내기 힘든 영역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모호하게 감춰진 그것을 잡기 위해 방법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택한다. 마치 하나의 음을 고르고 짚어내기 위한 조율사와 같이 세밀하게 그 느낌을 잡아내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된다.
앞서 말했던 천국의 언어는-바벨탑 이전의 언어는 결국 은폐되었다. 언어와 물자체가 일치되는 것, 그것은 언어가 곧 실재가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실재라는 것은 기실 인간이 감당하기에 무척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 아닐까. 따라서 그것은 은폐되고, 알려고 하는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과정이 주어진다. 소설에서 그것은 탈의의 과정으로 나온다. 자신의 위치와 모든 통념에 대한 탈의,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태초의 어둠 같은 곳에서, 그 푸르스름하고 검은 공간에서 나직이 하나하나 단어를 떠올리고 흘려보낸다. 그곳에서 보내온 수기(note)가 우리가 마주한 이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 김진희
Vol.20060720b | 김선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