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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14_금요일_06:00pm
오픈행사_작가와의 대화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02_3141_1377 www.galleryloop.com
거울 속의 거울 Mirrored Mirror, "이상과 데 슈틸의 테오 반되스부르크" ● 이상의 시 세계를 시각적으로 번역, 재구성하는 시도를 한 작업 중에 데 슈틸 운동의 대표적 작가이자 이론가인 테오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가 일종의 기하학적인 시각의 관계 항에 서 있을 수 있음이 작가의 눈에 띄게 되었다. ● 데 슈틸 운동은 바우하우스에 큰 영향을 주기도하면서 1917년부터 1931년까지 존속했던 미술사조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반 되스부르크 외에도 피엣 몬드리안(Piet Mondrian)이 있다. 이러한 작가들은 자연주의적인 재현을 거부했으며 생략된 형태를 사용했고, 수직과 수평의 기본적 조형 요소를 강조했다. 색을 사용 할 때 역시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 외에는 검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회색만으로 제한하였다. ● 특히 반 되스부르크는 구조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띄고 있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과 실내장식 등에도 관심을 보이며 직접 그것의 현실화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1918년 한 시골 저택의 바닥을 디자인한 것이 좋은 예 이다. 그는 세 가지 색상의 타일을 조합시켜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의 타일은 전체적인 바닥 패턴을 구성하는 최소의 요소 즉 모듈(Module)로 작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모듈의 색깔과 형태에 따른 조립의 다양성에 따라 전체적인 패턴이 만들어 진 것이다. ● 작가가 이상의 대중적인 시 '거울'을 조형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반 되스부르크의 모자이크를 닮은 타일 패턴을 연결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눈지 같이 규격화된 면적에 적용해 기하학적인 형태를 얻어낸 다음, 이 기하학적인 형태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상의 시 '거울'을 다시 쓰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시 '거울'에는 자음 ㄱ이 44번 ㄴ이 68번, ㄷ이 11번, 47개 ㅁ이 20번... 모음 ㅏ가 53 번, ㅓ가 25번... 등등 사용되었음을 분석한 후 기학적으로 변형된 자음과 모음을 다시 재 조형 했습니다. ● 즉 반 되스부르크의 조형 원칙과 유사함이 보이기는 하지만,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만을 강조하는 그의 패턴과는 달리, 작가의 시도의 경우 시 '거울'의 내용이 그 패턴 안에 들어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시가 거울이라는 물질로 혹은 반사라는 현상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겠다. ● 이 작업을 조형화하기 위하여 규칙적으로 잘라진 거울 타일이 바닥에 놓인다. 하지만 자음과 모음들이 한 면적 안에 자리를 잡을 때 어느 정도 느슨한 조형적 원칙에 의해 놓여 짐으로 인해 시' 거울'은 더 이상 해독 불가능해지고, 결국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거울 타일과 여백이 만들어내는 추상적 기하학 모양의 패턴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음과 모음이 해체 될 뿐만 아니라 시의 단어, 행과 연이 모두 해체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해체되었다가 다시 모인 자음과 모음 뿐 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자음과 모음도 서로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면서 정확한 개체의 확인이 불가능해진다. 시는 자음과 모음으로 산산이 분해되어 거울 판으로 다시 그 몸뚱어리를 찾지만, 이해 가능한 형체는 사라지고 이미 다른 것으로거나 보여지거나 이해되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작업이 보여주는 상이한 사물과 현상의 개연적 접점, 가로지기와 만남 ● 페이드인(Fade-In)은 영화 기술 용어에서 따왔지만 작가는 그 단어 고유의 의미보다 넓고 추상적 의미를 사진 작업에 부여 했다. Fade-In은 Fade-Out되는 상황이나 그 두 가지가 모두 배재되는 장면을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여긴다. 기술 용어로서의 Fade-In은 다수의 이미지 대상을 전제하고 이 사진 연작에는 다양한 대립적 혹은 유사한 이미지와 물질성의 가로 지르기와 만남이 표현 되었다. 추상과 구체, 깨어지는 것과 접혀지는 것,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 빛과 어둠, 원과 직선, 입체와 평면, 반사와 흡수, 색깔과 빛, 면적과 길이 ... 이 사진들은 상이한 사물과 현상의 개연적 접점이라는 관심사의 커다란 틀 안에서, 거울과 빛을 이용한 조형적 설치작업과는 달리, 그 중심에 회화적, 심미적으로 접근한다.
세 개의 비디오 작업 ● "과일 먹기(Eating Fruits)", "뷰스(Views)", "빛을 발하는(Illuminated)" ● 형식적으로 보았을 때 다양해보이기도 하는 이 세 비디오들은 깨지기 쉬운 현재 상태나 단명 하는 것, 하루살이적인 것들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상을 통해 관찰 중심에 서있는 것은 섬세하게 그 차이점들을 명시하는 주변적이거나 일상적인 사물들이다. ● "과일 먹기(Eating Fruits)"는 근접 촬영된 먹다 남긴 풀밭 위의 과일을 보여준다. 이 과일이 놓인 풍경은 바로크 시대의 바니타스(Vanitas)정물화의 전통에 끈을 대고 있기도 하다. 탐스럽고 싱싱한 생의 찬가는 지고 시들거나 사라지는 생의 덧없음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지된듯한 회화의 느낌을 깨고, 베어 물은 멜론, 딸기, 체리 등이 풀밭 위로 던져지며 동시에 요란히 먹는 소리가 들린다. ● "뷰스(Views)"는 한국 신문에 흔히 실리는 건물 임대를 위한 전면광고들을 보여준다. 가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상상의 도시전경은 서양적 전형에 따른 미래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림들은 세부적으로 묘사되었으며 다양한 척도가 뒤섞여 그려진 듯 중간 중간 행복을 약속해주는듯한 여성의 얼굴이 크게 묘사되어있기도 하다. 신문지는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데 종이의 물질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부서지기 쉬운, 즉 이런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도시풍경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 "빛을 발하는(Illuminated)" 에서는 길가에 세워놓은 폐기물 더미들이 짧게 손전등 불빛에 비추어졌다가 다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한다. 독일문화를 대상적으로 잘 보여주는 듯한 폐기물 더미는 쌓여진 문명의 잔여물로 세운 초현실적인 배열처럼 보이고, 그것을 향한 고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선이 흑백 영화의 형식과 조화가 된다. 생소한 것에 대해 호기심의 눈길은 한 시각에 대한 상징이 되는데, 이러한 시각은 일상생활을 알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그 자신 동일성의 윤곽도 명확하게 짓고 있는, 문화적 다름을 발견하는 시각이다.
전시제목 '긴 것 짧은 것' ● 전시 제목 "긴 것 짧은 것"은 이상의 시 한 구절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한자 이(二)를 언어유희로 돌려 표현한 것이라고 해독된다. 이상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에 건축교육을 받았으며 그 전에는 화가를 지망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가 상당히 회화적, 조형적인 면모를 나타낸다거나 숫자와 기하학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시에 적극적으로 표현된 것은 그러한 사실과도 관계가 깊을 것이다. 그의 시는 해독이 불가능하거나 해석이 여러 갈래로 분분한 경우가 많다. 또한 극단적으로 얘기해 그는 개인사의 한계를 넘는 시를 쓴 적이 없다고들 한다. 그의 이러한 식민지하의 비정치성이나, 친서구성, 모더니티에 대한 갈망 등은 오히려 그 당시의 지식인들이 세계와 맺고 있던 모순관계를 다시 반사시키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상에게 있어서 모더니티, 서구주의는 이식된 특질이라기보다는 자생한 관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의 모더니티의 언어는 식민시대와 불행한 가족사, 개인사라는 환경을 통해 무국자적인 이중성의 유희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 조형적 원칙의 엄격한 고수를 통해 이상적 형태를 추구하였던 데 슈틸의 예술가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말레비치(Malevich)같은 절대주의의 영향 아래에 서 있다. 그들에게 기하학적 형태는 물질을 지배하는 정신의 우월성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표현주의의 반대 축에 서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기본 세계관은 인위적으로 경계가 정해진 자의적 문화를 초래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인생과 예술의 통합, 보편적 조화의 세계에 대한 신조형주의의 이상은 이렇게 1930년대 초 허물어지게 된다. ● 본 전시에서 "긴 것 짧은 것" 즉 "둘"이라는 숫자는 추상이기도 하고 구체이기도 하다. 설치 작업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두 예술가들이 만날 수도 있는 개연적 접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긴 것 짧은 것" 즉 "이(二)"는 대조와 비교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만나지 않는 평행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제목은 이상, 데 슈틸과 관련된 작업뿐만 아니라 지상 층에 보여 질 다양한 주제를 다룬 비디오 작업들을 포괄하는 제목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또한 지상 층의 비디오 작업과 지하층의 설치 작업의 연결고리를 설명해주는 틀이 될 수도 있다. 긴 것과 짧은 것은 시간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으며 우리 머리 속의 관념일 수도 있다. ■ 대안공간 루프
Vol.20060715d | 최선아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