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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더 스페이스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더 스페이스 서울 강남구 학동로77길 34(청담동 31-22번지) Tel. Tel. +82.(0)2.514.2226 www.gallerythespace.co.kr
Flash Garden : 분열된 정신의 조각들 ● 1. 일찍이 매체와 정신은 모형을 공유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근대철학은 거울매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근대의 탄생을 선언하는 이 테제는 사실상 이중적 정신을 암암리에 내포한다. '생각하는 자아'와 '생각되는 자아'가 분열돼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시각모형으로 옮겨보면,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서, 역사적으로 거울이 대중에게 보급된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 이때부터 철학의 패러다임은 주체의 능력을 중심으로 회전하는데, 반성reflection이 핵심적 개념으로 떠오른다. 반성이란 스스로 자아를 되돌아 '보는 것', 결국 반영(反影)하는 것이다. 이 같은 패러다임은 당연히 철학에만 한정될 리 만무하다. 철학에서 불었던 바람은 조금씩 인접 학문으로 번져갔고, 사회와 정치와 경제 등등 주변 체계에 불씨를 뿌려 놓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발화는 예술에서 나타났다. 당연한 일이다. 예술은 시대의 바람을 역사의 폭풍으로 바꿔주는 극적인 변압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가야말로 가장 먼저 등장한 근대주체의 전형이다. 혼자서 세상을 보면서 화면에 자신이 상상한 질서를 부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무렵에 등장한 자화상만큼 근대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형식은 없는 것이다. 이때부터 신화와 성상은 화면에서 조금씩 후퇴했던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결국 주목할 것은 화면과 정신의 관계다. 이 짝패는 멀찍이 떨어져 뜨악하게 보는 것 같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그들만큼 은밀하게 손 맞잡는 관계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구도는 고전주의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대의 모더니즘에도 적용되며, 그리돼야 마땅하다. 흔히 모더니즘을 설명할 때, 평면의식을 앞세워 가며, 내재적 질서를 언급하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앞서 지적한 화면과 정신의 대응관계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큐비스트의 '동시적 시각'의 원리라는 것도…보다 직접적으로는 20세기초 독점단계에 이른 자본주의의 '관리된 세계' 속에서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의 분열증에 다름 아니다."(황지우) 한상진의 작업에서 눈여겨볼 것도, 짝패 둘의 대응관계일 것이다.
2. 한상진의 『Flash Garden』(2006)은 『숨쉬는 시간과 공간의 채집』(2005)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작을 살펴보면, 대략 몇 가지 경향을 끌어낼 수 있다. 먼저, 정연한 격자구도를 활용하여 커다란 화면을 낱개로 쪼개고, 낱개 하나에 여러 다른 형상이 웅크리고 있다. 낱개가 아예 독립해 책장인지 선반인지 이름모를 공간에 누워도 있고 세워도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흥미로운 것은 전체와 부분이 때로는 어울리며 때로는 부딪힌다는 것이다. 화면과 낱개가 서로를 의식하며 팽팽히 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식으로서의 형태』 연작과 『문명의 침실』 연작을 살펴보자. 둘 다 조각에 깃든 형상은 일상의 사물이 부드럽게 번역된 듯한 기하학적 도형이지만, 전자가 하얀 화면에 하얀 형상이 균일하게 배치돼 있다면, 후자는 하강에 비례해 검은 빛깔이 하얗게 바래는 형태로 되어있다. 그는 여전히 전체 화면을 포기하진 않았던 것이다. 화면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전시에서 전작과 근작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Flash Garden』에서 그런 긴장관계는 상당히 약해진다. 부분이 전체에 의존하지 않고서,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연히 낱개들이 공간에 맞춰서 이렇게 저렇게 일정한 구조를 형성할 수밖에. 어떤 것은 종으로 쌓아가고, 어떤 것은 횡으로 늘어가며, 그도 저도 아닌 경우도 있다. 빛깔도 이러한 구성방식에 한몫 단단히 한다. 전작들이 무채색을 활용하여 화면자체에 힘을 싣는 방식이라면, 근작들은 자유롭게 빛깔을 사용하여 조각들이 저마다 올곧이 서는 방식이다. 언뜻 비슷하게 반복하는 듯했지만, 구성도 색채도 살며시 대립하는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립하는 정도일까. 사실, 가장 흥미로운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전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사진 한 장, 『Flash Garden』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이다. 어느 책장 한켠에 낱개로 분열된 형상들이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책장과 어울려 숨겨져 있는 모습, 그것은 아예 벽자체가 되고 만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전시장에 배치된 『Flash Garden』이 『안식으로서의 형태』와 단지 마주보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3. 앞서, 화면과 정신은 일정한 모형을 공유하며, 현대의 모더니즘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보통 모더니즘을 예술과 정신의 고유한 영토를 외롭게 수호하려 했던 의지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양식보다 한곳으로 응축하려는 욕망이 거세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의 양상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점차 분열하는 운동이 몰아치기 때문에, 더욱 응축하려 몸부림쳤던 것이 아닐까. 한상진의 작업은 이러한 양상들을 담담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살며시 속삭인다. 이제 정신은 무엇인가 담아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있는 경험조차 쪼개지고 갈라져서 온전히 하나로 묶을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경험은 애초부터 정신에 남는 게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나 일정한 장소에 지박령처럼 남아서, 어느 날 문득 나와 너의 옛기억을 일깨울지 모르기 때문이다(이것이 베르그송의 진정한 공로다). 사유가 불가능해진 현대에서, 사유가 어떤 것인지조차 잃어버린 현대에서, 그래도 조각난 작은 기억을 보듬고 살아갈 사람의 작은 드라마를, 그렇게 『Flash Garden』은 보여주는 것이다. ■ 김상우
Vol.20060713e | 한상진展 / HANSANGJIN / 韓相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