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풍경Scenery in the City

박능생 수묵展   2006_0713 ▶ 2006_0719

박능생_관악산_한지에 수묵_210×74cm×7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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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오픈_2006_0713_목요일_06:00pm

롯데갤러리 초대

롯데갤러리 안양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88-1번지 롯데백화점 7층 Tel. 031_463_2716

사물의 속도 승경勝景이 되다. ● 자연과 도시의 이분법적 구분 속에서 삶의 현장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모더니티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풍경이 포착하지 못한 "영원한 것"은 유령처럼 그대의 신체를 서성이고 있다. 따라서 도시적 감수성과 기계적 인공미는 영원의 죽음을 사유하지 못한다. 곧 일시적인 피상적 감각작용만이 드러난다. 사물의 속도가 그대 마음의 속도 속으로 포획만 되었지 융합은 되지 못하였다. 그 삶의 현장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사물의 속도는 파국으로 인도 되고 마는 것이다. ● 후퇴가 아닌 "숨바꼭질"의 놀이를 호출하는 것, 영원한 것을 드러내는 것, 자연의 풍경으로 근접하는 것, 이것이 삶의 현장 곧 도시적 감수성을 대하는 박능생의 방식이다.

박능생_car_한지에 수묵_195×200cm_2006
박능생_bus_한지에 수묵_145×210cm×2_2006

도시적 감수성은 순간순간의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하기에 역설적으로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한다. 순간의 죽음은 영원의 죽음을 사유하지 못하고 그것은 표피적인 영속적인 것으로 인도될 뿐이다. 도시의 죽음을 사유하는 것 이것이 또한 박능생의 마음의 속도이다. ● 도시의 죽음에서 영원성을 구출하고자 하는 이러한 작가의 역능의지는 목적론적 사유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박능생의 역능의지의 탁월함은 문제설정 방식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도시의 속도, 사물의 속도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곧 그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재현적 사유 안에서의 주사위 놀이지만 사물의 속도를 "배치"함으로서 드러난다. 박능생의 그러한 지도는 시각적 견자의 설계도가 아니라 융합의 배치-지도 곧 "죽음"을 사유하는 배치이다. ● 그 배치의 선단과 선미는 사물의 속도이다. 박능생에게 속도의 선단先端은 견자의 시각으로 보호된다. 그 보호의 의지가 증가하고 감소되는 정도가 영원과 죽음의 상호배치이다. 박능생에게 시각적 견자의 영원성은 계속 확보된다. 그에게 재현적 의지는 버릴 수 없는 고전적 가치,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애증이다. 이러한 견자의 재현의지 속에서 그의 사물배치는 죽음의 장으로 인도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그 죽음의 장, 도道의 장 속에서 사물의 속도는 표면에서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박능생_car_한지에 수묵_106×98.5cm_2006
박능생_car_한지에 수묵_106×98.5cm_2006

그는 유령의 환영을 수묵의 영혼의지 곧 선線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사물에 담겨있는 열외존재는 수묵의 신체성으로 나타낸다. 또한 박능생의 속도는 면으로 형상을 처리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면속에 융합된 다면형상 속에서 속도는 증폭된다. 이러한 속도의 계열 속에 한줄기 빛 곧 변동의 시간적 장이 들어와서 속도를 감싸는데 그것이 그의 우발적인 점적 처리방식이다. 열외존재의 우발적 놀이를 우발적 점으로 쫒아가는 수동적 종합의 아름다운 시간 여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박능생의 사물의 속도는 선線의 죽음을 확보함으로서 시작하며 영원성의 유령을 퇴격할 수묵의 죽음에의 의지, 그 속에서 선과 면은 다중감각을 부여받고 순수 자유의지를 동반한다. ● 그러나 그의 사물의 속도는 결국 인간의 영역으로 포섭된다. 그의 배치가 펼쳐지는 사물의 열외존재는 사유의 속도 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견자와의 불안한 동거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곧 '파破'할 것 같으면서도 '파'하지 못하는 견자와의 동거, 그것은 박능생으로 하여금 삶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엇갈린 사랑만이 계속 펼쳐진다.

박능생_car_한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06×78cm_2006
박능생_car_한지에 수묵_106×78cm_2006

그 운명과 반항의 사랑이 특정한 색(여기서는 붉은색)을 수반하여 사유의 속도를 증폭시키고 있다. 죽음을 수용하지 못하는 그의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의 서사가 붉은 색을 수반하여 사유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사물은 속도가 증폭됨과 동시에 그 욕망의 속도로 바람 부는 들판에 서게 된다. 그렇지만 동등하게 박능생의 사물은 비로소 승경勝景이 된다, 아름다움이 된다. ● 왜냐하면 자연과 도시의 이분법은 페기 되었고 그러한 융합의 파국 속에서도 인간의속도가 열외존재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견자의 환영과 융합의 파국 그리고 그것들의 시각적 풍경이 삶의 개방성으로 인도하는 것 그 전체가 박능생이 부여하는 사물의 속도이다. ● 그 속도는 이제 우리에게 이미 승경勝景이다. ■ 安九

Vol.20060713a | 박능생 수묵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