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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12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신관 1층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이경아의 Kay's cross over ● "아이들에게 사실(fact)만을 가르치세요. 삶에서 사실만이 필요합니다."(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 한창 예민하고 열정에 달뜬 고등학교 시절, 송장처럼 한기가 흐르는 학교체계는 흡사 감옥에 견줄만했으리라. 당시, 대학입학이라는 인류지상의 목표는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시기의 학교교육체계와 그리 다르지 않음이었다. 창의적 발상은 그저 시간낭비이며 어리석은 짓일 뿐이라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속에 등장하는 그래드 그라인드의 대사처럼 말이다. 규정된 사실(fact)만을 따라야했던 그 당시 학교체계는 그에 역행하는 모든 행위에 관해 엄혹한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체계에 상당히 순응적이었던, 즉 'fact 신봉자'였던 나는 무리 없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비교적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에게도 아직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한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모습이 숨어 있다.
"창의적인 세포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서늘한 냉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기운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점점 심해졌으며, 급기야 고등학교 때에는 고약한 냄새를 동반한 음울한 송장(送葬)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물게 되었다." 그리고 ... "어느덧 충실한 사회인의 모양새를 갖춘 듯하다."
촘촘하게 짜여진 규율과 규칙은 오랜 기간 동안 사회를 용이하게 통제하기위한 수단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때로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나 한 순간의 궤도 이탈을 감행하면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최단거리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더 교묘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러한 교묘한 체계는 현재 더욱 더 공공하고 첨예하게 우리의 삶에 침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구조에 비하여 미약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즉 체계의 일탈을 꿈꾸고 있는 많은 소박한 인간들 역시 이제 점점 체계내의 생존규칙을 습득하고자 발버둥 친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 이경아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사회체계를 거미줄과 같은 탄탄한 망들의 연결 형태인 격자형식과 바코드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 전반에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그리드(grid)는 이 사회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의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수없이 지나가는 수직선들은 도시의 거리위로, 건물위로, 그리고 오랜 시간 인습과 관습에 휘둘린 인간위로 무차별하게 지나간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체계의 하나의 부품과 같은 모든 인간 삶의 사물들은 자유와 반란을 꿈꾸지만 그녀의 작품 속 사물들은 그 속에서 다시 안식을 찾고 싶어 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A는 B다.'라고 명쾌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즉 교차로 한가운데서 항상 조바심을 내고 주춤거리고 있는 서글픈 현대인들의 자화상과 맞닿아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기존의 고정관념, 즉 탄탄히 짜여진 구조에서 만들어진 형식에 대한 냉소다. 프로젝트 작업에서 그녀는 '사과'라는 단어를 던져 넣는다. 그 순간 관객들은 아마도 그에 합당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부서져 내리는 선들 뿐이다. 즉 우리가 습관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으레 상상하는 정형화된 사과가 아닌 그 사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실체 즉 그 구조체계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을 감행한다. 이러한 저돌적인 고발형태는 체계와 규칙 속에서의 현기증에 대한 급작스런 일침으로 보여 주면서 작가는 조심스럽게 교차로에서 선택의 한 걸음을 떼고 있다. ■ 김미령
Vol.20060712d | 이경아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