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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6_0701_토요일_05:00pm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종로구 부암동 254-5번지 Tel. 019_273_2370 www.curiosity.co.kr
미술작품의 추상성, 혹은 비어있는 중심에 관하여 ● 박경리의 토지의 줄거리를 소설의3요소를 사용해서 써주세요 소설의3 요소 인물 사건 배경 을 사용해서 줄거리좀써주세요 , ㅠ 지식걸어요 ~ (야후 지식검색 중에서) 박경리의 토지의 줄거리를 되도록이면 자세히 설명해줬음 합니다.^^ 내공50 드리께요 (네이버 지식IN 중에서) ● 나는 박경리의 토지를 전부 읽지 않았다. 그러나 토지의 분위기나 내용은 대충 알고 있다. 아니, 내용은 몰라도 좋다. '토지=박경리'라는 장학퀴즈나 영화퀴즈식의 다이제스트문화가 요즈음의 트렌드다. 김수영도, 라캉도, 쉔베르크도, 맘만 먹으면 그들 세계의 가장 효율적인 요약본과 각종 비평적 전망, 한계점까지 나는 알수 있다. 물론 원전을 다 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겠지.. 논술요령에서 시작하여, 호감가는 이력서작성법, 입사면접요령, 출세비법, 그(그녀)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 심지어는 로또 맞추는 법에 관해서도 알려준다. 인생, 역사, 신화, 예술 등등, 아무리 골치아픈 주제라 할지라도 애니메이션과 패러디를 동원하여 알기쉽게 보여준다. 아니면 그것도 귀찮은 사람들을 위하여 솔깃하게 몇가지로 요약해서 제시하는 친절한 책들이 주변에 즐비하다. 친절하다 못해 아예 해법과 힌트까지 알려주곤 한다. 게다가 읽어주는 사람조차 있다던가... 이른바 지식도 정수차원(整數次元)에서 검색되고 거래되는(지식=정보의 형태) 세상인 셈이다. 사실 이제는 그림조차도 '읽어주는'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고호의 해바라기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직접 본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생인 만큼 고호의 해바라기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잘 알고 있다. 나아가 이중섭과 세잔느, 폰타나 등을 등수매겨 일렬로 세워놓을 수도 있다(그래야 옥션에서 거래될수 있을테니까). 낸시랭의 작품은 한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지만, 나는 그녀의 가능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점칠수 있다. 예술의 내용이 정보의 형태가 되어버린 이 쿨한 세상에서 그녀는 일종의 '예견된 존재' 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그녀가 "연예계 유혹 많아요" 라고 했다는데, 내가 느끼는 일말의 거부 반응은 바로 내게 남겨진 끈끈한 본질론적 유혹의 잔재일 것이다. 그러니까 낸시랭의 한계 또한 바로 그녀자신의 본질론적 유혹(자기실현)에 넘어 가는 순간일 게다. 거의 매주 들르는 인사동이나 강남의 화랑가는 이제 습관이 되어서인지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다. 2~30분 정도의 갤러리탐방, 2~3시간의 뒷풀이로 이어지는 전시라는 이름의 미술이벤트.. 하객들과의 인사치레와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과연 작품관람에 할당되는 시간은 얼마쯤인지. 뒷풀이에서도 별로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서 다들 궁금해하지도 않는듯하다. 나름대로 다 알고 있는건가? 하긴 전시를 보지 않고 뒷풀이만 오는 사람도 있더군.. 그러면서도 작가의 유명도에 비례해서 미술적 담론은 꿋꿋하게 생산되고 있다. 얼마전 직접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고 글을 썼다가 공식사과문까지 써야했던 평론가가 있었다는데, 왜 그런 쿨한 찬스를 구태의연하게 스스로 망쳐놓는지 모르겠다.
작품의 제작시에는 어떠한가. 만약 캔버스나 판넬을 짜고, 물감을 발라대고, 액자를 맞추고, 벽에 못을 박는 물리적인 노동을 비본질적, 비예술적인 것으로 본다면 사실상 예술에 할당되는 구체적인 시간은 정확히 '제로'에 가깝다. 작품구상에 바쳐지는 고뇌의 시간이 실제의 작품제작에 흔적으로 남겨질 보장이 제로에 가깝다면, 작품의 물리적인 감상시간 또한 제로여야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을 것도 같다. 이런 역설이 가능할까? ― 작품은 그것이 보여지지 않는 동안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작품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중심이 비어있다면 아마도 거기에 보이는 것은 투명한 뒷면(=앞면)일 것이다. ■ 이영진
Vol.20060704b | 이영진展 / mixed media